처음으로 아내를 보았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도 나는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현모양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과 애들을 위해서 전부를 희생하면서도 자신의 인격과 품위를 손상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오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거기에 만족하고 자기 자신의 인격적인 성장에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아내는 그렇지가 않다.
처음에는 외교관의 아내로서, 세계 스포츠계 지도자의 아내로서 완벽한 내조를 해주었다. 피아노 연주자로서도 충분히 세계에 뛰어들 능력을 갖고 있던 아내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고, 남편인 나를 밀어 주고 따라 준 것에 대해 많은 감사를 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IOC위원들이나 남편의 친구들, 그리고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자연스런 대화를 하기 위하여 외국어 공부에 힘을 쓴 결과, 지금은 영어와 프랑스어는 어느 정도 구사가 가능하다. 어떠한 자리에서 어떤 사람들과 만나도 나와 같이 아무런 불편 없이 대화가 가능해 만나는 외국인들로부터는 동양적인 현모양처로서 나무랄 데가 없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다.
"당신의 아내는 정말로 우아한 숙녀(Graceful lady)입니다"라는 칭찬은 IOC 내부에서도 자주 듣는 편이다. 아내는 나의 가장 믿음직한 서포터, 우수한 홍보요원, 아울러 나의 기분을 이해해 주는 훌륭한 파트너로서 커다란 공헌을 해오고 있다.
국제회의와 여러 가지의 행사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서 해외에 출장에 부부가 동행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부부만의 단란한 시간을 갖기보다는 비행기에 타는 순간부터 회의 준비나 회의 참석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기에 동반행사를 제외하고 아내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 대통령 접견이나 수상의 리셉션 등의 행사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내와 나는 별도로 행동하고 늦은 밤이 돼서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고, 다음날 아침이면 또 다시 바쁜 일정으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 나의 출장지에서의 일과다.
다행히 IOC 위원들의 모임에는 부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아내는 문화 행사와 여성 단체가 주최하는 세미나 등에 참가해 각국 여성들과 폭넓은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또한 나의 막내딸 김혜정의 피아노 연주회 일정이 맞으면 아내는 언제나 딸에게 달려가 그녀를 돌보아 주었다.
내가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아내는 혼자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나는 1961년부터 약 1년간 어느 여자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여자 대학생들과 접촉하면서 여성들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적절히 보장되지 않아서 여성의 지위는 주로 남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남편의 지위는 아내가 쌓아올린 것이 아니므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점이다.
남편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아내도 거기에 어울리는 자기 발전을 통해 성숙해져야 균형과 조화가 유지되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남편과 자식들만을 시야에 넣고서 좁은 인생관으로 자기를 묶어 놓고 있지는 않는지? 물론 한국 사회가 그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여성들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외에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자기 개발의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사회에 진출해 명성을 얻는다든가, 기량을 발휘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꼭 그것만이 사회 참여가 아니다. 남편 그리고 자식들의 성장과 함께 보조를 맞춰 아내,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개척해 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아내에 대해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