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요찬 장군은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풍운아로 살아온 분이다. 나는 송요찬 장군이 1군사령관을 역임해 참모총장, 4․19 학생혁명의 비상계엄사령관을 거쳐서 내각수반이 될 때까지 그의 수석전속부관과 의전 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내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송요찬 장군의 업적에 대해서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송 장군은 6․25 전쟁이 발발할 당시 헌병 사령관이었다. 수도 서울을 지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북한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당하는 위기를 맞자 송 장군은 곧바로 한국은행으로 달려갔다. 불리한 전쟁 중에 한국군이 수도를 포기할 경우를 예상하고, 혼자서라도 최소한 정부의 재산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장군은 한국은행에 보관 중이던 금괴를 트럭에 채워 넣고 부산까지 안전하게 운반했던 것이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에 최전선을 시찰하기 위해 1952년 12월 수도사단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 송 장군은 수도 사단장으로서 재직 중이었다. 송 장군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브리핑을 했다. 그런데 브리핑 도중에 당시 소강상태였긴 했지만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대변이라도 하듯, 송 장군은 갑자기 "go, go, go"라고 소리치며 북진을 강하게 주장했다. 6․25 전쟁 당시의 굉장히 유명한 일화였다. '타이거(Tiger) 송'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 브리핑 사건은 당시 미국의 '타임'지에 기사가 날 정도였다.
송 장군은 용장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군을 격퇴한 그의 혁혁한 전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송 장군은 완고했지만 진정한 군인이었다.
1957년 제1군사령관을 거쳐서 ’59년부터 4․19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송 장군은 육구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육군참모총장 재임 중의 일이었다. 송 장군은 엉망으로 부패한 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하여 대대적인 숙군 작업을 실시했다. 국방의 의무에 충실해야 할 것을 망각하고, 수뢰와 군수품 횡령 등 사적으로 부패하고 얼룩진 타락을 군인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그뿐만이 아니고 송 장군은 군 안에 기획 관리 제도를 도입했다. 주먹구구식으로 편성된 예산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군의 신뢰를 쌓고 한국군의 새 출발을 기할 수 있다고 보고, 선진적인 서양의 체제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장으로서 송 장군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일들을 추진하는 중에 4․19가 일어났다.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최고 책임자인 송 장군은 비상계엄 사령관이 되었다. 학생과 시민들에 의한 민주화 투쟁이 격렬해지고 내각이 총 사퇴를 하였다.
당시 계엄군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 있는 수상한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굳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층 더 높아가고 있었다. 군의 일각에서는 쿠데타 논의가 있을 정도였다. 사실 비상계엄사령관의 결심에 따라서 쿠데타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송 장군은 군인의 본분을 지켜냈다. 자유당은 사태 수습을 위해서 경찰의 무력 사용을 계획해 송 장군에게 칼빈총 탄환 10만 발을 빌려 줄 것을 요청했지만 송 장군은 이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반대로 파렴치범과 형사범을 제외하고 민주화 투쟁에 가담해 구속된 학생들을 전부 석방하라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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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1년 송요찬 내각수반과 미 국무성 Dean Rusk장관과 함께한 김운용 의전비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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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대학교수들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을 메우고 시위 행동을 펼치고 있던 때였다. 나는 이 사태를 신원식 국회 연락장교로부터 보고 받고 바로 송 장군에게 보고했다. 송 장군은 야전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긴급 사태였다. 그래서 깨워서 보고했다. 그러나 송 장군은 참모차장에 보고하라고 말하고 난 후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낮잠을 잤다. 그는 이미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계엄사령관으로서 송 장군은 치안 유지는 하지만 시민과 학생들에게 발포하지는 말라고 지시를 내렸으며,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을 보위하며, 명예를 간직하면서 퇴진할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민들도 학생들 측에 서서 민주화를 성취했다. 그 반대로 군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최고 통수권자를 지켜낸 것을 보면 송 장군의 지와 덕을 확실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 정부도 송 장군의 행동을 높게 평가하였다. 4.19 후에 막코나기 미국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극찬을 듣는 것을 보았다.
송 장군은 체구도 큰 편이었지만 성취한 업적도 정말 거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송 장군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의 불같은 성격을 비판하며, '석두'라고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내가 본 송 장군은 항상 노력하고 공부를 계속하는 진정한 군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부와 시민 양쪽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던 송 장군은 허 정 과도정부가 수립되자 예비역에 편입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에 유학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국내 정세가 급변했다. 5․16 정변이 일어나 군사 정부가 수립되었던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군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도 신뢰를 받고, 당시 국민적인 인기가 높고 존경받던 송 장군을 불러들여 국방장관 겸 총리(내각수반)로 임명했다. 후에 총리와 외무장관 그리고 경제기획원장을 겸하기도 했다.
송 장군은 국가의 운영에 대해서도 커다란 흔적을 남기셨다. 내각 수반으로서 군사정권의 대외적인 위신 향상을 위해 선두에 서서 경제개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라고 강조했다. 행정부에 기획관리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오늘의 기획예산처의 기초를 만들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개획도 그가 경제기획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군사정부는 민정 이양을 원하는 국민과의 처음 약속을 깨고, 공화당을 만들어 집권을 노렸다. 송 장군은 이른바 4대 의혹사건에 의해 군사혁명 주체와 충돌한 후 내각 수반직을 1년 만에 사임했다. 투명하고 청렴한 정치를 실현하려고 한 송 장군과 군사정부의 사고방식이 달랐고 맞지 않았던 것이다.
사임한 송 장군은 “군은 민정 이양을 하고 본래의 임무로 돌아가야만 한다”라는 내용의 “군사혁명 정부에 바란다”라는 성명문을 동아일보 2면에 1페이지에 걸쳐서 게재했다. 군사정부는 눈엣가시 같은 송 장군을 구속, 수감했다. 그 바람에 나 역시 비행장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모 기관에 연행되어 엄격한 조사를 받았다. 그때 나는 김현철 내각수반의 의전비서관이었다. 혐의도 없고 김 수반의 개입으로 풀려났다. 장군은 옥중에서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송 장군이 군인으로서 그리고 격변기에 국가를 이끌어 간 내각 수반(Prime Minister)으로서 역사에 남는 많은 일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의 업적은 과소평가되고 있다. 송 장군은 청년시대에 내가 가야 할 인생길의 이정표를 확실히 제시해 준 거인이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