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도의 WTF 상황을 보자. WTF는 ’73년 5월 국기원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 직후에 창설되었지만 아직 어떤 국제기구에서도 승인 받지 못한 임의단체에 불과했다. 또 WTF보다 먼저 창립된 ITF가 캐나다에 있었다. 먼저 국제 체육기구로부터 인정받는 게 급선무였다.
일단은 국제경기연맹이 모두 가입되어 있는 GAISF(국제경기단체 총연합회)를 겨냥했다. ’75년 10월에 몬트리올에서 GAISF총회가 있었다. 마침 ’75년 제2회 세계 태권도선수권대회에 오스카 스테이트(Oscar State) GAISF 사무총장을 초청했다. 그는 WTF총회와 제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참관했다. 여기에는 크럼(Krumm) 미국 NOC위원장 내외도 왔다. 오스카 스테이트 사무총장에게 GAISF의 태권도 가입에 대해 조언을 듣고 가입신청서를 냈다. 몬트리올 GAISF총회는 4일간 열렸는데 거기에 초청을 받았다. WTF의 예산도 없고 해서 사비로 이종우 WTF 사무총장만을 대동하고 몬트리올로 갔다. 그 다음 해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대비하여 GAISF 총회가 그곳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쉽게 이뤄질 줄 알았는데 가입논의가 시작되자 만만치 않았다. 예상치 않은 복병들이 등장했다. 국제유도연맹회장인 찰스 파머(Charles Palmer)가 태권도는 가라테의 한 종류(Style)이며 유사종목이어서 안 된다고 들고 나왔다. 헤닝(Henning) 국제수영연맹회장도 가라테를 지지하고 태권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또 ITF라는 유사단체가 있는데 여기도 가입신청을 내고 있다고 했다. 결국 켈러(Keller) GAISF 회장은 가입 문제를 마지막 날 다루기로 하고 보류시켰다.
4일 있는 동안 반대파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그 때 경기장 시찰 가는 길에 버스의 파머 옆 좌석에 같이 타고 갔다. 파머가 계속해서 태권도는 가라테의 한 일파라고 강변을 하기에 태권도와 가라테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품새, 기술, 경기방법, 호구에 대해 내 설명을 들은 파머는 태권도는 ITF라는 또 다른 국제연맹이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마침 근처에 2층짜리 벽돌집이 하나 보이기에 ITF는 저 정도에서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서울올림픽 때도(당시 영국NOC위원장) 절친한 협력자가 되었고 태권도 지지자가 되었다.
숙소로 들어와 잠을 청했지만 만감이 교차돼 입맛도 없고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 2시경인가 이종우 총장이 방문을 두드렸다. 자기도 잠이 안 와서 왔다면서 “총재님, 지금까지 안 되시는 일이 없으셨고 운도 좋으신 분이시죠. 그렇기에 이번에도 잘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고 믿음을 줬다. 이종우 사무총장은 지도관 관장으로서 WTF 창설의 1등 공신이다.
3일 동안 오스카 스테이트 총장, 로이 에반스(Roy Evans) 국제탁구연맹회장, 안토니오 가르시아 델라푸엔테(Antonio Delafoente) 국제유도연맹 사무총장, 초드리(Chowdrhy) 국제복싱연맹 사무총장, 돈 포터(Don Porter) 국제소프트볼연맹 회장 등 닥치는 대로 만나 당위성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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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몬트리올 GAISF총회에 참석해서 (몬트리올 올림픽 조정 경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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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후 회의가 끝나기 직전 가입문제가 상정됐다. 스페인 태권도를 관장하는 안토니오 가르시아 델라푸엔테 국제유도사무총장은 “태권도는 태권도, 가라테는 가라테가 다 특징이 있고 다른 종목이다.”라고 했고 초드리, 에반스 등이 태권도를 지지했으며 오스카 스테이트 사무총장도 도움을 줬다. 당시 오스카 사무총장은 파머 국제유도연맹회장에게 사무총장 선거에서 패배하여 힘을 못 쓰는 처지였다.
그래도 오스카 스테이트 총장은 “WTF는 모든 질의서에 재정을 포함해서 답변을 매우 성실히 하여 총회까지 오게 됐으며 1975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직접 가서 보았는데 대회도 훌륭하게 치렀다. 거기에 비해 ITF는 신청서만 내고 재정보고 등 답변서도 내지 않았으며 총재가 임의로 연맹 본부를 서울에서 캐나다로 옮겼다. 총재 마음대로 연맹 본부를 호주머니에 넣은 것처럼 이리저리 옮긴다는 것은 공식연맹이라 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2시간의 격론 끝에 마침내 WTF는 GAISF의 정식 회원이 되면서 공인 된 국제연맹이 되었고 세계화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이 당시는 GAISF 가입에 대해 한 연맹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가입이 안 될 때였다.
1975년 출발한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이라는 거대한 꿈이 ’94년 파리 총회에서 이루어지기까지 19년 역정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떤 일이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탕 한 건은 없다는 것이다.
태권도가 국제기구의 인정을 받게 되면서 권리와 위상을 인정받았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술, 룰, 재정 등을 정립해야 하는 의무도 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태권도는 세계화와 발전에 가속이 붙게 되었다. 이전에는 서양에서 스포츠를 동양으로 수출했는데 이제 동양에서 서양으로 스포츠를 수출하게 되었다. 유도가 첫 번째고 태권도가 두 번째로 성공한 예라 한다.
또 모든 종목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갔는데 태권도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국제적 우산부터 쓰고 밑에서 발전하여 다른 종목이 100년 걸려도 못 한 것을 20년 만에 이룩해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태권도가 GAISF에 가맹한 후에 가라테도 1976년에 WTF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맹하게 되었다.
공인단체가 된 WTF는 ’76년 국제군인체육회(CISM)의 몰렛(Raol Mollet) 사무총장(벨기에 NOC위원장)이 CISM 이사회를 위해 방한했는데 그때 국기원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여주고 협의해서 CISM의 정식 종목에 채택시켰다. 후에 몰렛(Mollet) 총장, 메로드(Merode) IOC 집행위원, 밴덴 이데(Vanden Eede) 벨기에NOC 사무총장은 ’81년 바덴바덴 IOC 총회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