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9월 18일 김포공항, 서울발 프랑크푸르트행 대한항공 901편은 출발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이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예측 못한 사고라도 난 것일까? 하지만 승무원들은 별로 동요함이 없고 평상시 그대로의 모습이다.
출발 예정 시각보다 30분이 넘어서 짙은 선글라스를 낀 남자 한 사람이 타고 나서야 비로소 비행기가 천천히 활주로로 미끄러지기 시작하였다. 이윽고 소음과 함께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는 서울 상공을 날았다.
‘선더버드 9‧20 작전’
선더버드 작전이란 ’88년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극비 작전이었다. 기밀 특사 자격으로 프랑크푸르트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마지막으로 탑승을 한 사람은 바로 ’7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이후 공식적인 장소에 등장하지 않았던 박종규 전 대한사격협회 회장이었다.
선더버드 작전은 IOC 집행부를 겨냥한 것이라 보기보다는 유치 경쟁에 영향력을 주는 스포츠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가지고, 분위기를 서울 측으로 유도하기 위한 작전으로,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유치 작전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박종규 씨는 독일의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메이커 아디다스 사(社)의 다슬러 회장과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회(ANOC)의 멕시코 출신 라냐 회장 등과도 접촉하여 긴밀한 협력 관계를 다지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공식적으로 결정한 것은 1981년 6월 말경이었다. 한국은 제5공화국(전두환 정권)이 막 시작한 때였으며, 정국은 혼돈에 싸여 있었을 뿐 아니라 ’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비참한 결말을 알고 있는 전 세계는 한국의 앞날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던 때였다. 그러한 문제투성이의 위험한 국가,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미 일본의 나고야는 한국보다 한발 먼저 올림픽 유치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광주 사건으로 분열된 국민을 하루라도 빨리 단결시켜야만 한다는 정치적인 목적과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이라는 외교적인 이익을 고려해 올림픽 유치 운동의 깃발을 내 걸었던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 유치에 그다지 기대를 하거나 주목을 하지 못했다. 국민은 서울 유치가 결정된 순간까지도 너무 순간적이고 설마 했기에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고 역사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올림픽을 한국에서 개최한다고 하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으며, 왜 개최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왜 개최하는 것이 좋은 일인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그 당시의 현실이었다.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인 1978년이었다.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것은 1979년 봄, 국민체육심의회를 통해서였다.
나와 최규하 국무총리(두번째는 남덕우 총리), 김택수 IOC 위원, 정상천 서울시장, 박창현 문교부장관, 박종규 사격연맹 회장이 출석한 심의회에서 올림픽 개최의 여부에 대한 깊은 논의를 하였지만 박종규 씨를 빼고는 모두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결국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12‧12사태 등으로 올림픽 유치의 이야기는 일단 중단 상태에 놓이게 됐다. 계엄령이 내려지는 등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하에서 한국이 올림픽 유치를 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제5공화국에 들어 또다시 올림픽 유치가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국민의 단합과 국위선양, 대외적인 홍보 면에 있어서도 올림픽보다 좋은 범국민적인 이벤트는 없다고 판단하여 이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것 같다. 이때에도 노태우 장군을 통한 박종규 씨의 설득이 주효하였다.
사실 정치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올림픽 개최가 한국을 국제무대 속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유치는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상당히 좋은 점들이 많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덕분에 전쟁의 참화를 피해 간 인구 약 4만 명의 휴양지 바덴바덴은 천혜의 자연 조건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마도 이때까지 한국인이 이 도시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극히 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유치가 보도되자마자 이 도시는 한국인의 뇌리에 선명하게 남는 유명한 도시가 되었다.
유치 활동을 하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도착한 한국 대표단은 처음부터 난관의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88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기간 동안 한국 대표단이 숙박하기로 되어 있던 숙소는 바덴바덴 시내로부터 멀리 떨어진 교외에 있었다. 우리 유치 계획이 갑작스레 결정된 일이기에 사전에 시내에 있는 호텔을 예약할 수 없었다. 시내 호텔들은 이미 모든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황이었다.
교외의 호텔에서는 시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어려웠다. 그 때문에 나는 한국 대표단이라는 자격을 버리고 대신 국제경기연맹(GAISF) 회장이라고 하는 직책으로 논의가 한창이던 바덴바덴 시내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제경기연맹 회장은 본부 숙소에 머물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IOC는 브레셔스 파크(Breshers Park), 국제연맹은 벨바에(Bellvae), NOC는 유로피셔(Europisher)와 배디셔 호텔(Badisher Hotel)에 배정되었다.
나는 다른 국가의 대표들과 같은 호텔에서 24시간 움직이면서 논의가 한국에 유리하게 진행되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면서 정황분석을 할 수 있었다.
시내로부터 격리된 호텔 안에서 머물고 있는 한국 대표단과 함께 고립되어 김치를 먹으면서 밤샘을 하고 전략 회의를 하는 것보다는 커다란 흐름 속에 몸을 두고, 다른 나라의 대표들을 접촉하는 편이 효과적이라 생각한 나의 전술은 적중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