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바덴바덴까지 날아와서 우리 대표단의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 중에서 박수남 사범은 한국 요리가 그리울 것이라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 한국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때마침 그 당시에 빈(Wien)에서는 OPEC과 관련해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고, 벨뷰 호텔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부군인 필립(Phillip) 공이 국제승마연맹회장으로서 숙박 중이어서 경비가 한층 더 엄격한 시기였다.
이와 같은 긴장 상태 중이었기에 김치가 들은 깡통을 들고 커다란 사내가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것 자체가 경비들에게는 경계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테러리스트로 오해를 받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박 사범은 갑자기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호텔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다음날 우리의 설명으로 그는 겨우 호텔에 들어올 수가 있게 됐다.
커다란 국제 대회에서 자주 보는 광경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모든 표를 확보해 두었으니 문제없다’고 큰소리치며 접근하여 오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또는 보도 기관에서는 절대로 나고야가 이길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우리는 일본의 쿄토통신 미야가와 기자와 LA 타임스의 겐 리치 기자도 만났지만, 그들은 한국이 20표 정도 나올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일본보다는 아주 뒤늦게 시작한 유치 활동이었지만, 나고야를 누르고 52대 27로 두 배 가까이 이겼다. 예상을 뒤엎은 완벽한 승리였다. 많은 한국인들도 그 당시의 감격과 환희를 떠올리면서 아직도 믿을 수가 없었다고들 말하곤 한다.
사마란치까지도 “이 결정은 어떠한 사정으로 잘못 집계된 것은 아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지막까지 어리둥절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기적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승리는 기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승리를 움켜 쥘 수 있는 필연적인 우리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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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올림픽 서울 개최를 알리는 동아일보의 호외기사(1981.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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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나고야가 탁상 위의 계획만으로 설명을 했던 것에 비해, 우리는 서울이 이미 경기장을 건설 중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제안이 있었다. 더구나 한국을 대표하는 인재를 총망라한 유치단의 활동이 일본의 한 지방 도시의 상공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겼다 할 수 있다. 서울 나고야가 아니라 한국과 나고야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쎄울 꼬레(서울 코리아)!”
사마란치 위원장의 프랑스어 한마디가 지금도 나의 귀에는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이 말은 동방의 작은 분단된 개발도상국을 세계 속의 한국으로 급부상시킴과 동시에 나의 어깨에 스포츠 외교라고 하는 극히 무겁고 중요한 임무를 실어 주었다.
이 승리 뒤에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기업, 체육계의 공식 비공식적인 유치단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최선을 다한 유치 활동이 빚어낸 값진 결실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국민적인 감격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포츠는 국민을 감동시킨다.
총회가 끝난 그날 밤, 크루트하우스(Kurt House)에서 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스포츠인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고 노력한 정주영 회장(고인)은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승리의 기쁨을 축하했다. 대한항공의 조중훈 회장(당시)도 서울로 개선하는 귀국 비행기를 점보기 747기로 준비해 주는 등 대단한 후원을 해 주었다. 당시 파리 항로에는 DC-10기가 운행되고 있었다.
바덴바덴(Baden baden)으로부터 돌아온 대표단은 바로 노태우 정무장관과 동행하여 전두환 대통령을 면담하기 위하여 청와대로 직행했다. 그 자리에서는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자신의 공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자랑할 뿐이었다. 제일 전문적으로 수고했다고 모두가 나에게로 말하라하고 전두환 대통령도 한 마디 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사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인은 자신만을 자랑하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이런 모습으로 서로를 칭찬하는 것을 보니 정말 일치단결하여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 정신으로 올림픽을 준비하고 임한다면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지금까지의 노고를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 올림픽 유치라고 하는 제1라운드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우리의 앞길에는 참가국들의 설득과 재정 문제, 경마장 건설, 대회 운영, 요원 훈련, 북한 그리고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권 공산국가와의 관계 등 수많은 난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