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무주와 용평이 겨우 스키장 시설을 갖추었을 뿐 기타 종목 시설은 전무했다. 경기력도 쇼트트랙을 빼고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고 국제대회를 개최한 경험도 없을뿐더러 대회 운영능력이 있는 경기요원과 임원도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동계올림픽 유치는 오늘, 내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편으로는 경기개최 경험, 다른 한편으로는 선수육성, 시설, 건설 등이 동시에 균형을 이루면서 추진되어야 하고 많은 IOC와 국제경기연맹 요원들이 와서 보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전북 무주가 동계 국제대회 유치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앞서 나갔다.
이의철 쌍방울 부회장이 앞장서서 국내 최초로 점프 타워를 짓고 티롤(Tirol)이라는 고급호텔도 유치하고 역시 국내 최초의 동계국제대회인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95년 버팔로 유니버시아드대회 기간 중 FISU 총회에서 유치했다. 여기에는 네비올로(Nebiolo) FISU 회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미국태권도협회(USTU)도 현지에 온 한국대표단으로 위해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이같이 초창기에는 현지태권도사범들이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주었다.
’97년 무주-전주 유니버시아드대회는 기본적인 눈 경기, 즉 스키와 바이애슬론 등의 설상종목은 무주에서, 빙상과 쇼트트랙, 아이스하키는 전주에서 급조한 경기장서 치렀다. 상상 밖으로 성공적인 대회라 평가를 받아 자신감이 생긴 전라북도는 유종근 지사와 쌍방울이 동계올림픽 유치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적극적인 유치를 추진했다. 그때 대전 엑스포를 도와주기 위해 IOC관을 세웠는데 IOC관을 시찰하는 길에 간청해서 사마란치 IOC위원장을 헬리콥터를 타고 무주 스키장으로 안내했다. 스키장을 보고 인상을 잘 받을 것 같았다.
무주는 이한동 국무총리의 유치 승인서까지 받아 놓았다. 불행히 ’98년 IMF 사태는 무주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정부가 재정적으로 무주를 지원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반면 후발 주자인 강원도는 운이 따랐다. ’99년 강원 동계아시안 게임을 유치했을 때 태릉빙상경기장을 새로 짓기 때문에 있는 시설을 뜯어 춘천 야외스케이트장으로 주었고 게다가 용평 쇼트트랙용 실내 스케이트장 건립에도 공사비가 없어서 건설을 중단하고 있는 것을 김종필 총리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저리 융자를 받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김진선 강원지사가 면회를 못해 내가 주선해 대동하고 갔다. 원래 점프타워가 없어 점프는 빼고 했다. 강원 아시안게임은 ’96년 하얼빈 대회에 이어 2000년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OCA에 건의해서 ’99년으로 앞당겨 점프경기도 없이 몇 종목 안 되는 종목으로 내가 대회 조직위원장이 되어 대회를 치렀다. 한 가지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강원도가 욕심을 냈다. 전북의 동계스포츠를 주도하고 있던 쌍방울이 재정난으로 휘청하자 동계올림픽 개최의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그 바람에 무주에는 태권원이 정부 투자로 지워지게 되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2003년 프라하(Prague) IOC 총회에서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KOC는 정부의 승인과 보증을 받아 필요한 신청 절차를 IOC에 제출하고 본격적인 유치활동에 들어갔다. 유치 활동이라 해봐야 내가 혼자서 하는 식이었다. 모든 경쟁에는 상대가 있는 법인데 용평의 경쟁자는 밴쿠버(Vancouver)와 잘츠부르크(Zalzburg)였다.
용평은 행정 구역이 아니어서 평창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밴쿠버와 잘츠부르크는 이미 지명도에 있어서 평창과는 상대가 안 되는 월등히 우세한 도시였다. 환경이나 도시시설, 동계스포츠 인프라 및 도시 인프라가 세게 최정상급의 도시였던 것이다. IOC 평가단장으로 온 하이베르크(Heiberg)가 강원도 측 인사의 환대에 놀라서 너무 부풀려 얘기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게 되었다. 그가 도착했을 때 환영 관중들이 길을 메웠다.
IOC는 통상 유치 과정에서 유치 후보도시들에게 나와라, 나와라 해서 들러리를 세우고 좋다, 훌륭하다 하면서 부풀리는 경향이 심하다. 결국은 매 2년마다 7, 8개의 도시가 엄청난 예산을 쓰고 나가떨어지게 된다. 그중에는 의회나 시민의 반대로 유치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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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년 돋계아시아 경기대회 개막식에서 강택민(江澤民) 주석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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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IOC 총회가 가까워지면서 득표보다는 국내 홍보에 너무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만약 실패할 경우 다음 도전에 대비하는 여론을 형성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듯했다. 홍보보다는 준비와 득표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제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게 정치인지도 모른다.
나는 GAISF 총회, IOC의 모임 등 각종 국제스포츠기구의 모임에 유치위원회 사람들을 계속 초대해 소개시켜 주었고 서울에 오는 IOC나 국제경기연맹 인사들을 김진선 지사 등에게 계속 연결시켜 주었으나 제대로 내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에서 있는 GAISF 총회에는 한국 대표한 여비도 내가 대주었다. 쿠웨이트 OCA 총회 때도 그랬다.
국회에서도 지원위원회가 3당 합의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첫모임에서 내가 연장자로서 회의를 주재했는데 일부에서 나를 지원위원장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다른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3당 합의로 자민련의 김학원 의원을 지명, 통과시켰다. 그 위원회가 나를 유치 방해, 소극적 운동 운운하면서 정치적으로 공격하는 데 있어 정치에 악용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진실과 진심이 안 통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프라하 총회전에 내가 IOC 부위원장으로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문화관광부 오지철 차관이 찾아와서 만약 평창이 유치에 실패할 경우 큰 부담이 될 거라는 내용을 전했다. IOC나 국제적 견해와는 전혀 다른 상상이 안 되는 발상이었다. 또 나는 이미 IOC부위원장을 4년이나 해서 필요치 않았다. 다른 나라는 최선을 다해서도 실패하면 더 준비를 해서 4년 후, 8년 후를 준비하는 것이 통례이며 한 번에 유치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프라하 총회 한참 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뵈었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들 프라하에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이번에는 다른 도시보다 상황이 안 좋고 여력도 없어 가능성이 적다. 다른 나라는 시라크(Chirac), 만델라(Mandela), 메닌(Menen) 대통령, 스웨덴 국왕들이 와서 직접 IOC와 로비식 교섭을 한다고 전제하면서 ”우리나라는 이번에는 어렵고 이 다음에 재신청해야 할 것 같은데 오시면 정치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고 충언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언이 오히려 오해를 샀으니 가라고 하는 게 오히려 나았을 뻔 했다. 사실 평창을 평양이라고 부르는 IOC위원도 있었다. 평창에 와본 IOC위원은 내가 동계체전에 초대한 4명 정도였다.
프라하 현지에 갔더니 사마란치(Samaranch) IOC 종신 명예위원장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방으로 찾아갔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몇 가지 조언이라면서 “이번에 김 위원이 아무리 힘이 있어 유치를 위해 노력해도 평창이 밴쿠버나 잘츠부르크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 꼭 2등을 해라, 그것도 1등과 큰 차이가 안 나는 2등을 해야 하고 3등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번 유치 도시 선정 다음날 있는 IOC 부위원장 선거에 당선되어 4년 후 과테말라 총회 때 제1부 위원장으로 있으면 그동안 준비 잘 해서 평창이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을 아끼는 분의 진정 어린 조언이었다.
프라하 숙소로 김진선 지사가 나를 만나러 왔다. 부위원장 출마를 포기할 터이니 평창을 지지해 달라고 IOC 위원들에게 호소해 달라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IOC 위원들의 생각이나 IOC의 성격을 전혀 모르고 효과 없는 얘기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다고 IOC들이 투표할 일은 없었다. 지사가 설득이 안 되니 이번에는 고건 총리가 조찬에 초청해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IOC 위원의 생각은 사마란치의 의견이 옳다는 것이었다. 즉, IOC 내에 힘을 가지고 있어야 이길 수 있다는 실리론이 맞다는 의견이었다. 우리의 유치한 전략이 통할 리 없다. 그후 사마란치 명예위원장이 마드리드 총회에서 마드리드 유치를 호소했지만 마드리드는 2003년 평창처럼 선전은 했지만 낙선했다. 힘도 없고 노력도 안 하고 무엇이 잘 되면 자기 공이 안 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우리나라 수준이 걱정이다.
마침 고 건 총리와 사마란치 위원장의 회동이 있어 사마란치 위원장이 그런 내용을 한 시간에 걸쳐 설명해 주었는데 고건 총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상황이야 어쨌든 난 최선을 다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미 IOC 위원 등 만날 수 있는 IOC 위원은 모두 만나 정신 없이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그래서 53 표 중에 49표는 나의 표라는 것이 외국 언론의 분석이었다. IOC 호텔에는 IOC위원만 묵고 외부 인사 출입이 통제되어 IOC위원 만나기는 불가능할 때였다. 수백명이 여비를 쓰고 와서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대충의 윤곽이 나왔다. 올림픽의 발상지가 유럽이어서 유럽 국가들의 표는 다른 대륙보다 훨씬 많다. 그들이 최종 결선 투표에서 뭉친다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조언처럼 IOC 내에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면 유럽표의 분산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인위적으로 유럽표의 몰표를 막을 방법은 간단치가 않다. 아니 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