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는 문화예술 면 「저자와 함께」에서 6단이나 할애해 주었다. 「전 대법관 박우동 씨(61). 그가 대법관, 법원행정처장 등에 임명될 때만다 따라다녔던 일간지 인물평에는 ‘학구파’, ‘선비형’ 등의 표현이 단골로 등장했다. 실제로 광화문 교보빌딩 17층에 마련된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 변호사의 인상은 판사로만 33년을 살아온 법관의 전형적인 표정과 말투가 담담한 태도 속에 강고하게 드러난다. 췌언(贅言)이나 허사(虛辭를 용납하지 않고 극히 언어를 절제하며 가장 정확한 표현을 찾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질문 한마디에 답도 한마디다.」
이렇게 시작한 기사는 「에세이 형식을 표방했음에도 판결문을 쓰듯 논리적인 글에다 지나 온 시절을 ‘지방법원판사시절’, ‘고등법원판사시절’, ‘대법원판사시절’, ‘대법관시절’ 등으로 일견 고지식할 정도로 도식적으로 나눠 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 내용은 항목 하나하나마다 단순한 회고담 차원을 떠나 판사의 실제 업무와 그 고뇌, 우리나라 사법부의 실상 등을 객관적인 자료와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던 그의 메모 등을 통해 풍부하게 담아냈다. “법조역사 1백 년 운운하면서도 선배들이 제대로 남겨놓은 게 없고, 지나온 얘기들이 에피소드 차원으로만 돌아다니는 게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지나온 판사생활을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일반 독자들은 염두에 두지 않고 법조초보자나 후배판사들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 보니 일반 독자들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쉽게 나간 거지요”」라고 하면서, 「지난 세월 우리 사회 어느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사회정의를 책임지는 법관들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였다는 시각이다. “요즘 변호사들이 상당히 흥분하고 있어요. 1%에 불과한 몇몇 변호사들 때문에 전체가 매도당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극소수라 하더라도 그 1%를 변협차원에서 자체정화를 못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다시 사법부개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언젠가 한번은 개혁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제도를 그대로 둔 채 사법시험합격자를 늘려 변호사수를 한꺼번에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제도의 개혁만이 능사가 아니고 사고방식 개혁과 운용이 더 중요해요.” 그는 흔히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라는 말로 쉽게 이야기하지만 이는 법을 규제위주의 불편한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법은 사회생활을 규제한다기 보다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최소도구라는 것. 존경하는 후배법조인들이 많다는 한마디에 “에이, 나는 그런 감이 못 됩니다‘로 일축하는 그의 표정에 가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말을 ’절약하는‘ 그의 입을 통해 간신히 들어본 그의 소박한 신조는 ’흐르는 물은 언젠가는 바다에 도달한다‘는 믿음이었다.」
법관생활 중 어느 때가 제일 어려웠습니까 이런 질문도 빠지지 않는다. “판사생활 모두가 어려웠지요, 초임판사시절에는 몰라서 어려웠고 고참판사가 되고서는 알아서 어려웠고‥‥‥”, “알아서 어렵다니요.”, “알게 되니까 더 모르는 게 많더군요.” 이런 대화가 오간 것 같다.
그리고 라디오 인터뷰 때인가 책 내용 중에 군사혁명 직후 판검사특별교육(判檢事特別敎育)이라 하여 며칠씩 합숙하면서 혁명공약도 외우고 조석점호도 하고 여러 가지 정세강의도 받았으며 이런 교육이 두 번이나 있었다고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게 신기했던지 판사, 검사도 혁명구호를 외치고 조석점호도 받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군사혁명으로 비상상태 하에 있던 그 당시의 분위기가 눈에 선했다. 3‧40대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합숙반의 반장은 김치걸(金致傑) 대구고등법원장이었는데, 취침점호 때 차려, 경례, 열중쉬어, 총원 몇 명, 이상 무하는 구호를 더듬거리시는 바람에 그때마다 웃음을 자아낸 것으로 기억된다. 차려엇 외쳐놓고 다리는 열중쉬어로 벌리고 있다가 현역장교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언론의 관심을 끈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한 간첩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해 원심판결을 파기하지 못한 일을 두고두고 꺼림칙하게 여긴다는 술회부분이었다. 여러 기자가 그 부분에 대하여 묻고 또 묻고 했지만 그때마다 거기에 쓴 것 이상의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관심이 큰 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합의제의 재판에서는 판사 개인의 소신(所信)을 관철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인데 왜 그리 주목을 하는가 하고 물었더니 판사 스스로 자기가 한 재판을 잘못한 것이라고 고백하는 그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하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의 다른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끝으로 이 책에 대한 한승헌(韓勝憲) 변호사의 서평(인권과 정의, 1995년 4월호)을 일부 소개하기로 한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법관의 침묵제일주의를 부추기는 쪽으로 오해되고 있다. 나는 그 말이 법관은 판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와 아울러 판결문 밖에서의 변명이나 췌사를 경계하는 데 참뜻이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법관들은 판결문 이외의 글―아니면 논문 이외의 글―을 쓰는 것을 무슨 금기나 외도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사법의 모습은 화신(化身)아닌 화석(化石)으로 굳어간다. 특히 법관의 인간다운 심성, 고뇌, 회한 그리고 사법부와 재판의 꾸밈없는 내면 등에 관해서 기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필자가 박우동 변호사의 회고록 ‘판사실에서 법정까지’의 발간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생각에 독자 여러분도 공감해 주리라고 믿는다」고 하면서, 이어 「작년 가을에는 박 변호사의 회갑기념논문집 간행 축하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는 축사를 하는 가운데, 그분의 절제(節制)된 언동과 처신을 칭송하였다. 매사에 지나침이 없는 그분다운 자기억제, 중용(中庸)의 지신(持身)에 많은 사람들이 경외심을 갖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절제’는 확인되고 있으니, 과장이나 장황한 서술이 없다.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과시하려는 흔적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 회고록 첫머리에 독자는 먼저 ‘고민하는 법관상’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하는 재판의 숙명적인 한계’를 고백하고 있다. 진실발견을 위한 고민을 되풀이하고, 자기가 한 재판에 한 점 오류가 없었노라고 자신을 가질 수 없음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이런 겸허한 자성(自省)은 과녁을 향해 던지는 돌팔매에 재판을 비유한 고 김홍섭 판사님(전 서울고등법원장)의 말씀을 생각게 했다. 그러나 법관의 그런 고민은 재판 그 자체의 속성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서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법관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바는, 한국적 정치풍토 아래서 겪어야 했던 한국적 사법의 특이한 체질과 고뇌에 대해서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끝에 가서 「필자는 박 변호사와 생년월이 똑같고 생일만 하루가 앞선다. 이런 태생적 밀접성(?)과 후천적 친분 때문에 칭송은 되도록 억제하였다. 그분 역시 정실(情實)에 의한 글은 원치 않을 터이니까」라는 사족(蛇足) 한마디를 첨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