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개업이지 여기저기 정치권에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 있어 조용한 변호사 생활은 틀렸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고, 이 변호사 본인도 정계입문의 결심을 하기가 어려워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곤 하는 모양이었다. 이듬해 4월 초 이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훈장을 받고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 때의 대화 한 토막. “서울특별시장 출마 운운하고 신문에 나는 바람에 사건이 떨어지게 되었네.”, “그것 뿐만 아니지, 한중사건 3천억 원짜리 일 맡았다고 보도되었으니 큰 사건 아니면 수임 않는 것으로 알 것 아닌지 몰라.”, “그렇다면 광고라도 내야겠네.”, “어떻게 낸다.”, “서울시장 출마 운운 낭설, 변호사업무에 전념하겠다는 것하고, 사건의 경중을 막론하고 맡는다는 것을 강조해야지.”, “그래, 소액사건도 마다하지 않고 수임합니다.”
우리 법인은 일단 법원이 가까운 강남방면으로 사무실을 이전할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단독사무실을 내고 활발한 변호사 생활을 하고 있던 서정우(徐廷友) 변호사가 우리 법인에 합류할 의향을 비쳤다. 그는 이 변호사와 내가 대법원에 있을 때 수석 재판연구관으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법원에서 나의 배석도 한 인연이 있어 두 사람이 다 같이 끔찍이 아끼던 후배였다.
애당초 서 변호사의 생각은 세 사람이 중심이 되어 합동형식의 법률사무소를 재건한다는 것이었으나 남으로 옮겨갈 수 없는 이 변호사의 사정으로 그 꿈은 거두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변호사는 나와 함께 강남 쪽으로 옮겨 우리 법무법인의 구성원이 되기로 했고,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의욕으로 힘이 솟아나 우리 식구가 들어갈 법원근방의 빌딩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1995년 6월 우리 사무실은 서초동으로 이전했고, 명칭도 동서(東西) 법무법인으로 변경하여 송무(訟務) 중심의 법률사무소로 날개를 폈다. 2년 뒤에는 법무법인 광장(廣場)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내부의 공모를 거쳐 김동하(金東夏) 변호사의 작명을 채택한 것이었다. 1999년 3월 사무실을 테헤란로의 포스코센터로 이전했다.
그동안 여느 법률사무소와 마찬가지로 몇 사람의 변호사가 새로 가입되는가 하면 어느 날 몇 사람이 탈퇴하는 등 했는데, 그 무렵에는 또한 굵직한 인물들이 영입되기도 했다.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부장판사로 있던 송흥섭(宋興燮) 변호사,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끝으로 단독개업을 하고 있던 김병재(金炳宰) 변호사,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있던 김진규(金鎭奎) 변호사,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었던 공영규(孔永規) 변호사, 감사원장이었던 한승헌(韓勝憲) 변호사, 대법관으로서 임기를 마친 박준서(朴駿緖) 변호사,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던 곽현수(郭賢秀)‧김택수(金澤秀) 변호사, 사법연수원장이었던 권광중(權光重) 변호사 등이 그 면면들이다.
주간(週刊) 이코노미스트(1997. 10. 28)는 「로펌이야기」의 연재물 ‘다시 뛰는 원로들’란에 중앙일보 김진원(金鎭沅) 기자와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서두에 「법무법인 광장의 박우동 변호사는 대법관을 지냈으면서도 서울 서초동에 개업하지 않고 광장의 전신인 동서종합법률사무소에 합류, 원로들의 로펌행에 본격 시동을 건 인물로 꼽힌다. 그는 특히 지난 7월 1일 동서를 창업한 김찬진 변호사와 결별하고 광장의 단독 대표변호사로 변신, 외인부대로 들어와 로펌을 장악한 셈이 됐다」고 했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당초 서초동에서 개업하지 않고 로펌행을 선택한 이유는.
“변호사 간판이 다닥다닥 나붙은 서초동 법조타운이 싫었다. 또 대법관까지 지낸 입장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후배들을 지도하며 변호사 생활을 하는 게 보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로펌 중 동서를 선택한 이유는.
“동서의 대표인 김찬진 변호사가 여러 번 권유했다. 또 김 변호사의 부인인 이영애 부장판사는 내가 대법관으로 있을 때 재판연구관을 지낸 인연도 있다.”
―4년여 간 로펌에서 일해 본 소감은.
“세상은 바야흐로 국제화‧개방화시대다. 법률서비스의 국제화도 시급해 보인다. 이 점에서 로펌이야말로 우리 변호사업계가 지향해야 할 방향중 하나라고 본다.”
―동서의 김찬진 변호사와 결별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김 변호사가 ‘동서’ 간판으로 독립하고 나머지 변호사들이 광장으로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기로 한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김 변호사 등의 탈퇴로 광장의 섭외파트가 약해진 것은 사실 아닌가.
“외국에 유학 간 젊은 변호사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고 섭외전문 변호사 등의 영입 등 부족한 부분에 대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광장의 장점을 하나 든다면.
“로펌은 변호사간 결속과 유대가 중요하다. 광장은 이름이 뜻하는 대로 내부구성원간의 인화를 중시한다. 시보(試補)로 온 연수생들도 ‘이곳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하는 등 사무실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다수의 변호사를 둔 법률사무소를 운용하고 키워나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우수한 변호사를 확보하는 일이다. 로펌에서 유능한 변호사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그래서 대형 로펌들은 해마다 졸업을 앞둔 사법연수생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리쿠르트(recruit) 경쟁을 벌인다. 우선 성적이 좋아야 하고 나이가 많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요건 외에 출신 대학이 어디냐는 것도 따진다. 왜냐하면 다음 리쿠르트 때 후배를 끌어오는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로펌에 들어오는 신참 변호사들로서도 바라는 조건이 있다. 그들의 관심사는 급여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얼마 만에 유학을 보내 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펌의 발전을 위해서는 양질의 변호사를 확보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학이라는 미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외국의 법률을 공부하고 외국 로펌에서의 경험을 갖는다는 것은 바로 국제적인 법률관계를 취급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국내의 송무업무만 처리해 가지고서는 우수한 사법연수생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
우리의 법인도 물론 섭외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해 왔지만 다른 대형 로펌들에 비해서 담당 변호사의 수나 업무량이 매우 빈약했고 그것이 광장의 발전에 항상 걸림돌이었다. 그리하여 섭외 자문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파트너급 변호사를 물색하기도 하고 다른 로펌과의 합병 내지 제휴도 검토해 보는 등 여러모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