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의 이점(利點)은 뭐니 뭐니 해도 인재가 많다는 점일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의 자산은 우수한 자질의 변호사이고 그러한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로펌의 랭킹이 매겨진다. 그래서 우수인력을 영입하기 위하여 로펌들은 신경을 많이 쓴다. 좋은 변호사가 많이 모여 있는 로펌은 당연히 좋은 고객을 맞게 된다. 그들의 입맛에 맞게 분쟁이 해결되는 확률도 많고 품질이 좋은 자문도 제공하게 된다.
소형 법률사무소의 가장 큰 애로사항의 하나는 리쿠르트였다. 탐나는 새내기 변호사를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여 본들 끝판에는 야속하게도 대형 로펌으로 방향을 돌리기 일쑤였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경험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다. 대형 로펌도 그 나름대로 리쿠르트 경쟁이 있지만 가만있어도 상당한 수준의 초년병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얼마나 큰 이점인가.
덩치 큰 로펌은 그만큼 살림살이 걱정도 크다. 사무실의 중요한 일은 파트너회의에서 결정하지만 그에 앞서 운영위원회에서 결정‧처리하는 사항이 대부분이다. 운영위원회를 맡고 있는 변호사들은 자기 사건을 처리하는 틈틈이 사무실의 여러 가지 문제를 처리하여야 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사무실의 살림을 맡아 걱정하는 사람들 덕분에 법원전쟁마당에서 싸우는 변호사들이나 후방에서 연구하는 변호사들은 긍지를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로펌소속의 일원임을 만끽하면서 자기 분야의 일에 전념한다.
로펌은 변호사의 수가 많은 점이 큰 이점이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면서 공유(共有)하게 되는 파생이점이 또한 자랑스럽다. 변호사들 컴퓨터에는 전자우편(e-mail)이 종종 뜨는데, 거기에는 수임사건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여부를 체크한다든지 문서양식 등의 자료문의도 있지만, 긴급성 법률문제의 질의도 더러 있다.
이런 이런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구합니다, 이런 이런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는 분을 찾습니다 등등의 에스오에스(SOS:구조요청)가 나가고, 하나 둘 응답이 나온 뒤 질의자의 인사와 함께 처리결과를 알려주는 양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로펌에서 이런 종류의 협동작전을 부지런히 이끄는 분은 권광중(權光重), 김병재(金炳宰), 송흥섭(宋興燮), 윤용석(尹鏞錫) 변호사를 들 수 있다. 성질이 조금 다르지만 재미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편지도 있다.
2003. 3. 14. 변호사들에게 띄운 김대희(金大熙) 변호사의 메일 같은 것이 이에 속한다.
「오늘 오전에 서울지방법원 민사 제12부 재판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비록 소송경험은 많지 않지만 다소 색다른 경험을 하여 이를 공유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메일을 돌립니다. 저는 빨리 끝내고 돌아오겠다는 생각에 09:50 경 법정에 도착하였습니다. 재판부가 입정하고 나서(오늘은 선고가 없었습니다) 약 20분가량 재판장께서 향후 12부의 재판 진행 방향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 요점은 새로운 민사소송방식(이른바 신모델)으로 진행을 하겠다는 것이었으며, 특히 강조한 것은 첫째 요약준비서면 또는 종합준비서면의 제출, 둘째 증거설명서의 제출, 셋째 조정의 활성화 등이었습니다.
또한 통상의 오전 재판 진행과는 달리 사건 당 약 15분 내지 20분가량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6번이나 7번째 순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사건은 겨우 12경에 시작하여 12시 20분 경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제 뒤에는 아직도 오전 재판의 순번을 기다리는 대리인 및 당사자가 방청석 가득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 재판부는 오늘 점심 식사를 틀림없이 못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사건에 따라 속행중인 사건을 다시 준비절차에 회부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많은 사건에서 조정을 권유하였습니다. 대리인들이 사건 파악을 잘 못하는 경우에는 재판장은 웃으면서(?) “어떻게 저보다 잘 모르시나요”라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느낀 인상은 신모델을 철저히 정착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사실 저는 신모델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의 통상적인 재판진행방식(예를 들어 당사자 적격 없음을 이유로 한 본 안전 항변, 조정에 승복하지 않고 반드시 면피를 위하여 판결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나타내었습니다. 어쨌든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앞으로 민사 12부의 재판을 가시는 경우에는 좀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며, 동시에 여러 건의 재판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 배려에도 각별히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외람된 말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2003. 5. 13. 파트너 변호사들에게 띄운 김상곤(金相坤) 변호사의 메일은 「사무실 소속 변호사들이 작성한 의견서를 보면 ‘본 건’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사용하는 변호사마다 그냥 붙여서 ‘본건’이라고 하거나 ‘번 건’이라고 띄어쓰기를 하는 등 제각각이며 볼 때마다 정리를 해서 통일되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본건’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 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런 연유에서 띄어쓰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향후 사무실 의견서에는 ‘본건’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법원처럼 ‘이 사건’이라고 통일된 표현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어떤 클라이언트는 광장 의견서는 ‘본건’도 제 각각으로 쓴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하여 의견교환을 유도하기도 한다.
나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은 과정으로 이제는 제법 덩치가 큰 변호사회사의 대표의 한 사람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합병회사이면서 아직은 남북의 사무소로 분리되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인적합류가 쉽지 않은 단계인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하기를 아마존 강도 품질이 다른 지류의 물은 5km나 더 흘러서야 융합이 된다고 해서 그것도 세월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