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1994. 6. 28. 피고인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파기(破棄)하고 사건을 서울형사지방법원 본원합의부에 환송(還送:94도651)한다고 선고했다. 선고 그 시간에 법정에 나가 있던 피고인의 전화 목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박 변호사니임 이겼어요오‥‥‥.”
대법원판결 가운데 피고인이 그 서류들을 작성한 것이라는 병남과 그 처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한 이유를 인용(引用)함으로써 이 사건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가름하고자 한다.
첫째, 피고인이 병남과의 사이에 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500평이 넘는 토지를 임대차기간을 3년으로 정하여 임대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는데, 을 여인이 피고인을 대리하여 피고인에게 매우 불리하게 임대차기간을 120개월로 하고 3년마다 차임을 쌍방의 합의 하에 올릴 수 있다는 취지의 제2조 단서도 기재되어 있지 아니한 대지사용임대차계약서(증 제2호)를 작성한다는 것은 원심이 판시한 바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경험칙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
둘째, 병남은 증 제1 내지 제4‧제7 각호의 서류들이 1989. 6. 8. 자신이 경영하는 진주회관에서 한꺼번에 작성되었는데, 증 제1호의 본문은 을 여인이, 그 나머지 서류들의 본문은 자신이 모두 기재하고 피고인 명의의 한글서명 및 날인은 을 여인이 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 원심이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직원에게 감정을 명함에 따라 위 감정인이 한 감정의 결과에 의하면, 증 제1‧제2‧제7 각호의 피고인 명의의 인영을 찍는데 사용된 인주는 유사하나 증 제3‧제4 각호의 본문과 한글서명의 기재에 사용된 필기구는 서로 다르고, 증 제1 내지 제3‧제7 각호의 피고인 명의의 인영을 찍는데 사용된 인주는 유사하나 증 제4호의 피고인 명의의 인영을 찍는데 사용된 인주와는 색상이나 자외선의 형광반응 등에 차이가 있어 서로 다르다는 것이므로, 같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작성‧날인되었다는 위 각 서류들이 작성에 사용된 필기구나 인주가 모두 같지 않고 일부가 다르다는 사실은, 위 각 서류들이 같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작성된 것이라는 등의 병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점.
셋째, 증 제2호에 관하여, 수사기록 제11면으로 편철되어 있는 사본은 피고인의 무인이 찍혀 있지 않는 점에서는 수사기록 제110면으로 편철되어 있는 사본과 같지만 제2조 단서가 기재되어 있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므로, 피고인의 무인이 찍혀 있고 제2조 단서도 기재되어 있는 원본 외에 두 가지의 사본이 있는 셈인데, 그 중에서 제2조 단서는 기재되어 있고 피고인의 무인은 찍혀 있지 아니한 사본의 존재에 대하여는 원본을 소지하고 있다는 병남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바(수사기록 제466면), 이와 같은 사정도 을 여인이 증 제2호를 작성한 것이라는 병의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유라고 볼 수 있는 점.
넷째, 병남이 1989. 6. 27. 피고인과 을 여인에게 보낸 최고에 대한 답변서에는 갑 할머니가 작성했다는 서류들이 명칭이 대지사용승낙서를 제외하고는 사실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고 가장 중요한 서류라고 볼 수 있는 대지사용임대차계약서(증 제2호)는 기재되어 있지도 아니한 점.
다섯째, 병남은 피고인이 1989. 8. 14. 병남의 처에게 보낸 최고서를 받은 일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병남이 피고인에게 연체된 차임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 위 최고서에서 연체된 차임을 지급하여야 할 기한으로 정한 8. 25.인 점으로 미루어 보면 병남이 피고인이 보낸 위 최고서를 받아 보고 연체된 차임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만일 그렇다면 병남이 위 최고서에 임대차기간이 3년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피고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볼 여지도 있으므로, 피고인이 위 최고서를 보내기 전인 1989. 6. 8. 에는 증 제2‧제7 각호의 서류에 기재된 대로 임대차기간을 10년으로 정하기로 하는 등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이 수긍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여섯째, 증 제7호에 관하여, 수사기록 제743면 내지 제746면으로 편철되어 있는 사본은 병남이 1990. 1. 31. 건축법위반 피의사건으로 저사를 받을 때 제출한 것으로서 4장이고, 수사기록 제471면 내지 제473면으로 편철되어 있는 사본은 병남이 1990. 10. 12. 피고인의 고소에 의하여 사문서위조 등 피의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때 제출한 것으로서 3장이며, 압수된 원본은 병남이 1990. 12. 19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으로서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원본에는 빠져 있는 셋째장의 사본에는 육안으로 보아 그 아래 부분에 찍혀 있는 피고인 명의의 인영보다 큰 피고인 명의의 인영이 찍혀 있는데, 이와 같이 같은 서류에 서로 다른 2개의 피고인의 인영이 찍혀 있는 이유나 병남이 증 제7호의 원본 중 셋째장을 빼고 제출한 이유에 대하여는 병남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이다.
드디어 첫 관문을 뚫는 데는 성공했다. 위의 판결이 지적한 여섯 가지 허점만 보아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처럼 좀 더 세심하게 보다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더라면 검사의 구속‧기소조치는 그렇다 하더라도 항소심판결과 같은 오판(誤判)은 없었을 것이다. 기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암수(暗數)가 곳곳에서 난무하고 보이지 않는 폭력과 사기가 어지러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기 환송이 이루어져 다행이지 상고기각으로 유죄가 확정되었더라면 어찌 될 뻔 했던가. 할머니와 그 일가는 평생 한(恨)이 되어 사법기관을 원망했을 것이다.
이리하여 피고인에 대한 무고사건은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다시 심리하게 되고 1994. 11. 30. 제1심의 무죄판결을 지지하여 항소기각의 판결(94노3318)이 선고되었으며, 검사의 상고로 또 한 번 대법원에 올라갔다. 답변서(答辯書)는 상고이유서와 달리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다. 「이와 같이 검사는 상고이유에서 제1심, 제2심(환송 전 및 환송 후)에서의 주장을 되풀이하여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록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병남 일당의 죄책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내다보이는데 수사기관에서 그런 사항을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죄를 호소한 피고인을 가해자로 몰아 죄지은 자를 두둔하는 처사를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시간을 끌수록 병의 재산편취 행위를 비호하는 양상이 됩니다. 대법원에서 한시 바삐 최종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대법원은 1995. 4. 15. 「원심이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무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제1심의 조치를 그대로 유지한 것은 대법원의 환송판결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고 하여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95도118) 피고인은 무죄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무죄(無罪)라고 해서 승리감을 느끼기는 하나 당장 무슨 소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서위조라고 고소를 제기했다가 거꾸로 무고로 말려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고 거의 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니 겨우 본전을 찾은 것뿐이다.
대구에 있는 언니 갑 할머니를 대리하여 모든 법률행위를 하면서 병남의 농간에 빠져 언니를 감옥에 보내는 등 말할 수 없는 마음고생을 한 을 여인은 나의 사무실에 수십 번도 더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때 사무실은 서울 세종로 네거리 교보빌딩 17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항소기각의 판결로 언니의 무죄가 거의 확정되는 단계에 이른 어느 날 을 여인은 나의 사무실에 와서 창 넘어 멀리 내다보면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와 경치가 좋다고 말했다. 그 동안 그렇게 드나들어도 변호사님 얼굴만 보이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