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할머니의 고소행위가 무고가 아니라면 그 고소를 응징한 것은 부당하다. 더불어 병남에 대하여 사문서위조 및 그 행사죄로서 고소한 데 대하여 검찰은 이를 재기수사하고 불기소처분을 돌이켜 놓아야 한다. 그러나 사문서위조죄의 공소시효(公訴時效)는 5년밖에 안 되어 그 죄로서는 이미 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병남의 위조 여부를 형사법정에서 가리기는 틀린 것이다.
그래서 병남을 무고로 단죄하여 빼앗긴 재산을 찾는 하나의 압력수단으로 삼기로 했다. 병남이 임대인 명의의 사문서 등을 위조하여 그 전차인 등에게 이를 제시하여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직접 자서‧무인을 했다고 허위사실을 신고하여 갑 할머니를 무고했다는 취지의 고소장(告訴狀)을 1995. 5. 18. 서울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그러나 같은 해 8. 29. 범죄의 혐의가 없다 하여 불기소처분(不起訴處分)이 내려졌다. 병남의 무고혐의에 대하여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된 것은 고소인의 무고혐의를 인정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일 뿐, 이것만으로 피의자의 위조사실까지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달리 위조사실을 인정할 뚜렷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다.
이에 대하여 고소인은 항고(抗告)를 했고, 항고가 기각되자 대검찰청에 재항고(再抗告)를 했다. 1996. 5. 8. 재항고기각의 결정을 통지 받고, 5. 20. 헌법재판소(憲法裁判所)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했다.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11. 28.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1995. 8. 29. 피의자 병남에 대하여 한 불기소처분은 청구인 갑 할머니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라는 결정(96헌마181)을 했다.
결정이유 가운데 대법원의 판단과 약간 차이가 나는 지적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헌재(헌법재판소:憲裁)는 먼저 이 사건 서류들을 작성하게 된 동기에 의문이 있다고 했다. 청구인과 피의자(被疑者)는 1987. 12. 22. 계약기간을 3년으로 하여 대지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는데 만약 피의자의 주장대로 그 문서들이 진정하게 작성되었다고 한다면 피의자는 1989. 6. 8. 청구인으로부터 당초 3년의 임대차계약기간을 10년으로 받은 것으로 된다.
그러나 청구인은 1989년 당시 68세로서 농약회사를 경영하면서 위 대지 상에 미국기업체와 공동으로 고층빌딩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서류들에 기재된 바와 같이 10년이나 피의자 병남에게 대지를 사용하도록 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그 점을 차치하고라도 위 서류가 진정하게 작성된 것이라면 청구인이 아무런 반대이익을 받지도 아니한 채 임대기간만을 3년에서 10년으로 대폭 연장하여 주었다는 결과가 되는데 이는 청구인에게 경제적으로 현저하게 불리하며, 반면 피의자는 이러한 계약기간 연장으로 위 대지 상의 건물을 쉽게 임대할 수 있게 되어 결국 도합 6억 5천만 원의 임대보증금을 받고 이를 임대하는 등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는 바, 이러한 계약변경은 경험칙상(經驗則上) 선뜻 믿기 어렵다고 했다.
따라서 이러한 기본적 의문(疑問)이 해소되지 않은 이상 그 서류상 나타난 의문들에 대하여 관련자료를 수집하고 청구인과 피의자를 대질조사 하는 등 세밀한 조사를 실시하여 위 서류들의 위조 가능성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의문점 몇 가지를 지적했는데 그 중 하나만 보기로 한다.
「피의자 병남은 1989. 6. 8. 갑 할머니가 이 사건 서류 중 대지사용임대차계약서, 대지사용ㅇ승낙서, 대지사용계약서를 작성하여 피의자에게 교부하여 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청구인 측은, 피의자가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건축법 위반의 점에 대하여 조사를 받을 때에는 위 건축허가 시에 이미 청구인으로부터 위 서류들을 받아 건축허가신청서의 첨부서류로 제출하였다고 진술한 바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수사기록 95쪽). 그렇다면 위 건축허가신청에 따라 건축허가가 난 것이 1988. 3. 19.의 일이므로 피의자는 적어도 위 1989. 6. 8.보다 훨씬 이전부터 위 문서들을 이미 소지하고 이를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이 되므로 이는 문서작성 경위에 관한 지금까지의 피의자의 주장이 허위라는 점을 뒷받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위 건축허가 당시의 구비서류를 확인하고 확인 결과 만약 청구인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의자를 다시 조사하여 위 서류가 1988. 3. 경에 이미 존재하는 이유 등을 추궁하는 등 이 점의 진위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여야 할 것이나, 피청구인이 이러한 수사를 전혀 한 바 없음이 기록상 명백하다.」
이와 같이 현재는 검찰이 이 사건 분쟁의 중요한 의문사항들에 대하여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하여 적극적인 수사(搜査)를 진행하지 아니한 채, 피의자의 일방적 변명이나 진술만을 가볍게 수용하면서 수사를 종결했고, 따라서 피의자에 대하여 행한 불기소처분은 검찰권(檢察權)의 행사에 있어서 청구인을 차별대우하여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자의적인 수사를 행한 결과이며, 이는 청구인의 평등권(平等權)과 재판절차진술권(裁判節次陳述權)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갑 할머니 측에게는 매우 고무적(鼓舞的)인 결정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법최고기관 두 곳에서 갑의 고소는 무고가 아니다 라는 판정을 내린 셈이니 이는 한편 피고소인 병남은 문서를 위조했다는 귀결과 다를 바 없지 않는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렷다.
그러나 고소인 측의 희망도 잠시, 검찰은 1997. 6. 25. 병남에 대한 무고사건에 대하여 또다시 불기소처분의 결정을 했다. 검사는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수사상의 미진한 사항들에 관하여 재수사했지만 피의자의 변명을 뒤집고 그가 문서들을 위조했다고 인정할 만한 결정적이고 뚜렷한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또 한 번 항고(抗告)를 제기했다.
「재기수사를 담당한 검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유를 쫓아 이 사건의 근본적인 의혹을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관련된 모든 의문사항에 대하여 한 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한 수사를 진행하였어야 마땅하고, 이 경우 수사의 초점은 당연히 피의자의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검증과 탄핵에 두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검사는 이 사건 문서들이 작성되었다는 1989. 6. 경의 이 사건 부동산의 시가와 위 문서들에 나타난 임대료의 적정성 여부, 이 사건 토지 이용에 관한 고소인의 계획, 당시 고소인과 피의자가 처해있던 객관적인 상황에 비추어 과연 누구의 진술이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및 피의자가 위 대지상에 건물을 지어 제3자에게 임대 혹은 분양한 시기와 그 계약내용 등에 대한 수사를 반드시 진행하였어야 마땅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해 10. 17. 항고는 기각되었다. 나선 김에 이에 대하여 재항고(再抗告)를 해 보았으나 12. 11. 간단히 기각되었다. 그러면 어찌되는가. 이 무고도 아니고 저 무고도 아니다. 문서위조도 아니다. 결국 원점(原點)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헌법소원을 할 것인지 여부를 궁리하다가 포기하기로 했다. 헌법재판소에 실효성 없는 결정의 두 번째 부담을 지우기만 하는 것 같고 더하여 권위에 상처를 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재는 게 편임을 실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겨우 전과자(前科者)임을 모면한 것과 정신적으로 위안을 얻은 것 그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