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렇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므로 여기서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憲法訴願)의 실상에 관하여 잠시 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헌법재판소가 발족한 1988. 9.부터 2001. 12.까지 불기소처분에 대한 소원은 모두 3,816건이었고, 그 가운데 134건이 인용(認容)되었다. 3.5%에 해당한다. 대법원의 형사사건 파기율에 비슷할 정도로 취소결정을 얻기가 어렵다. 혐의(嫌疑)없음의 불기소처분이 잘못 되었다고 하여 취소된 사건은 104건인데 검찰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하여 재처분하면서 공소를 제기한 사건은 45건이었다. 그러니까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져도 끝까지 소기의 목적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이 인용되었을 경우 그 결정의 효력이 검찰에 대하여 어떠한 의무를 부여하는가. 다시 말하자면 불기소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그 피의사실에 대하여 수사를 보강한 후 공소(公訴)를 제기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까지 이어지는가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이다.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1항은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은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羈束)한다고 되어 있고, 제3항은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경우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침해의 원인이 된 공권력의 행사를 취소하거나 그 불행사가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며, 제4항은 헌법재판소가 공권력의 불행사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용하는 결정을 한 때에는 피청구인은 결정취지에 따라 새로운 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의 견해(헌법논총 제4집 1993)를 보면, 위 제75조 제4항의 「새로운 처분」의 범위를 둘러싸고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의 인용결정에서는 이미 공권력의 불행사라는 소극적인 부작위처분에 대한 위헌판단이 있었다고 볼 것이므로 이러한 판단취지에 따른 새로운 처분은 동일한 형태의 불기소처분이 아닌 기소처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고 재수사(再搜査) 자체를 새로운 처분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1993. 11. 25. 선고 93헌마113 결정은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되니 불기소처분을 검찰이 같은 이유로 재차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하여 또다시 심판청구된 헌법소원사건을 인용하면서, 「종전의 불기소처분의 이유와 동일한 이유를 들어 만연히 피고소인들에 대하여 다시 불기소처분을 한 것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1항에서 명시된 헌법소원인용결정의 기속력을 간과하고 거듭 자의적인 증거판단을 한 것이거나 적어도 마땅히 조사하였어야 할 중요한 사항을 조사하지 아니한 무성의하고 자의적인 수사임을 면치 못한다」고 하고,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취소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는 때에는 그 결정에 따라 불기소한 사건을 재수사하는 검사로서는 헌법재판소가 그 결정의 주문 및 이유에 설시(說示)한 취지에 맞도록 성실히 수사하여 결정을 하여야 할 것」이라고 하였을 뿐 기소강제(起訴强制)의 취지를 명백히 하지는 아니했다.
여기서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맞서 끈질기게 법정투쟁을 하여 자신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엎고 만 어떤 공무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변의정(邊義正) 씨가 서울시 환경녹지국장으로 재직할 때 관광호텔 신축공사와 관련하여 1천만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1990. 5. 구속되면서 파란만장의 법정 공방이 시작된다. 서울형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어 항소,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 기각,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이렇게 해서 1992. 6. 26. 그 형이 확정되었다. 위와 같은 유죄판결은 뇌물을 주었다고 허위 진술한 피고소인 때문이라며 그 위증사실을 자백하는 취지의 진술을 녹취하여 1994. 12. 8. 서울지방검찰청에 위증죄(僞證罪)로 고소했다. 검사는 혐의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항고, 재항고를 했으나 모두 기각되자 1995. 7. 10. 위 부기소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1996. 3. 28. 위 불기소처분을 취소하는 결정(95헌마211)을 했다. 이 결정에서는 뇌물을 주었다는 피고소인은 뇌물사건의 수십 차례에 이르는 제1심 및 제2심의 공판과정 내내 거의 예외 없이 피고소인에 대한 직접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수사관들과 동행하여 법정에 출석하고 그 면전에서 진술을 했다는 사실, 피고소인이 변 씨 등 관계공무원에게 뇌물로 제공한 10만 원 권 자기앞수표 700매의 수표추적결과에 의하더라도 변 씨가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 단 1매도 없다는 사실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검사는 피고소인에 대한 위증사건을 재기하여 수사한 다음 다시 혐의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했고, 이에 불복하여 항고‧재항고를 했으나 모두 기각됨으로써 1997. 3. 26. 또 한 번 헌법소원심판에 이르렀다.
헌법재판소는 1997. 7. 16.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다시 취소한다는 결정(97헌마106)을 내렸다. 검사가 헌법소원인용결정의 취지에 따른 수사를 다하지 아니하여 새로운 사실을 밝히지도 아니한 채 피의자에 대하여 종전에 한 불기소처분의 이유와 거의 같은 이유를 들어 다시 불기소처분을 한 것은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1항에서 명시한 인용결정의 기속력을 간과하고 거듭 자의적인 증거판단을 한 것이거나 적어도 마땅히 조사했어야 할 중요한 사항을 조사하지 아니한 자의적(恣意的)인 공권력의 행사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승리의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다. 검찰은 재수사를 한 다음 또다시 혐의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했다. 물론 항고‧재항고의 순서를 밟았으나 모두 기각 그리고 세 번째의 헌법소원. 이것은 실패를 각오한 다분히 의도적인 도전이었다. 그동안 모해위증(謀害僞證)의 공소시효도 지나버렸던 것이다.
1998. 8.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심판청구를 각하했다. 이 결정은 형사소송법 제422조의 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이 되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재심개시의 결정을 거쳐 재심(再審)의 심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같은 이유로 재심청구인에 대하여 무죄(無罪)를 선고했다. 1999. 1. 1. 자 동아일보는 서울고법에서 무죄의 선고를 받은 변 씨가 가족을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나누면서 “저를 죄인으로 만든 검찰이나 법정에서 위증을 했던 사람을 모두 용서하겠습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진리를 다시 깨닫게 해준 재판부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사진과 함께 싣고 있다.
헌법소원사건 등 대리인이었던 이종순(李鍾舜) 변호사에게 그 후의 일을 들어보았다. 고등법원의 무죄판결은 바로 확정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검사가 불복해서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었던 것이지 그 사람들이 어디 체념하겠느냐고 응어리가 채 가시지 아니한 어조로 대꾸했다. 10년 가까이 법정투쟁을 한 끝에 모든 혐의를 벗은 변 씨는 그래도 정년이 약간 남아 복직하고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갑 할머니의 고소사건에 대한 두 번째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단념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알 수 없지만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