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할 일은 민사소송이다.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민사사건으로 내가 관여한 첫 사건은 병남의 처 이름으로 원고가 되어 갑 할머니를 상대로 이 사건 건물에 대하여 명의신탁(名義信託) 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의 이행을 구하는 소송의 상고사건이다. 여기서부터 민사소송사건의 처리를 위한 긴 여정(旅程)에 들어간다.
병남에 대하여 건축법위반사건으로 수사기관에서 입건‧조사하는 과정에서 갑 할머니와의 사이에 대지의 임대차기간에 대한 분쟁이 생기자, 병남은 피고를 상대로 건물에 대한 처분금지가처분(處分禁止假處分) 신청을 하여 그 가처분결정을 받아 1990. 3. 26. 이를 근거로 피고를 대위하여 건물에 관한 피고명의의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그리고 위 건물을 신축하여 소유권을 원시취득했는데 건축할 때 행정절차의 편의상 피고에게 건축허가명의 및 등기명의를 신탁해 둔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피고는 그런 사정이 아니라 대지임대차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인 원고가 지상건물을 철거하거나 건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건물의 소유권을 임대인인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약정하고 그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미리 건축허가 명의나 공부상의 소유자 명의를 피고로 하여 두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남이 이와 같이 피고를 상대로 건물에 관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보다 앞서 피고가 병남을 비롯하여 몇 사람의 점유자를 상대로 한 건물명도청구소송에서 병남이 승소한 데 힘을 얻은 것이었다. 위 소송의 제1심에서는 갑의 등기가 병남의 명의신탁에 의한 것으로써 갑 할머니에게 등기명의를 신탁해 둔 것이므로 갑 할머니에게 소유권이 없다는 것과 점유자들이 건물 일부를 점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항소가 기각되어 그 판결은 확정되었던 것이다. 우리 쪽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나머지 변호사도 없이 소송을 했던 것인데 나중에 이 확정판결 때문에 상대방에게 기판력(旣判力)의 구실을 제공하게 되어 쟁송에 장애가 되는 일이 생긴다.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사건은 서울민사지방법원이 1991. 7. 16. 원고 승소의 판결(90가합19898)을,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역시 1994. 4. 29.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91나42472)을 선고하여 우리 쪽의 패소로서 최종심(最終審)의 처리만을 앞두게 되었다. 위 항소심판결 직전인 1994. 2. 2. 갑 할머니는 형사사건의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이 선고되어 매우 상심(傷心)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위 민사사건의 상고이유서(上告理由書)를 작성하면서 역시 이 사건도 뒤집지 아니하면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위 민사사건에서의 원심판결처럼 등기명의자인 피고가 원고가 요구할 때 언제든지 원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어야 하는 법률관계라면 매우 불합리하고 형평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 우선 지상권자인 은행이 다른 사람 명의의 신축 건물로 말미암아 담보가치가 하락되어 큰 손해를 입게 되므로 애당초 건축허가에 동의할 리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민법 제622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임차인이 그 지상건물을 등기한 경우이므로 제3자에 대하여 임대차의 대항력(對抗力)이 생기며, 대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짐에 따라 피고가 예정하고 있던 고층건물의 신축을 할 수 없게 되고 대지의 가치가 현저히 하락하여 형태만 남는 꼴이 된다. 또한 등기명의자인 원고가 타인에게 임대 부양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경우 대지 소유자와의 사이에 복잡한 법률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2년의 시간이 지난 후 선고기일통지서가 날아 왔다. 대법원은 1996. 4. 26.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94다28840)한다고 선고했다. 형사사건에서의 성공과 더불어 갑 할머니 일가의 빼앗긴 재산을 찾는데 있어 이 판결도 선도(先導)역할을 하게 될 것이므로 매우 기뻤다.
위 판결의 이유는 「위에 살펴 본 증거들과 기록에 나타난 이 사건 대지임대차계약의 조건, 체결경위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원심이 인정한 것처럼 원고가 건축시의 행정절차상의 편의를 위하여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건축허가명의나 등기명의를 피고에게 명의신탁한 것이 아니라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대지임대차계약이 종료되면 임차인인 원고가 지상건물을 철거하거나 건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건물의 소유권을 임대인인 피고에게 귀속시키기로 약정하고 그 약정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미리 이 사건 건물의 건축허가명의나 공부상의 소유자 명의를 피고로 하여 두기로 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더 많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관계가 위와 같다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묵시적으로 이 사건 대지임대차기간 만료 전후를 막론하고 이 사건 건물의 소유자 명의를 피고 명의로 하여 두기로 하는 양해가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했다. 다만 임대차계약서의 위조 여부에 관하여서는 「이 사건 건물의 임대차기간이 최초 약정대로 3년인가 아니면 10년으로 연장된 것인가 등의 문제를 놓고 원고와 피고 사이에 민‧형사 분쟁이 일어나서 그것이 오래 계속되어 온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정도로 넘어갔다.
사건을 환송받은 서울고등법원은 다시 심리한 끝에 1996. 11. 29.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병남 측의 청구를 배척하는 판결(96나19996)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하여 원고가 상고를 제기했으나 대법원이 1997. 8. 26. 상고를 기각(97다898)함으로서 건물에 대하여 병남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소송을 꺾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부터 상고심 이외의 사실심(事實審) 법정 공방은 임성우(林成雨) 변호사와 공동으로 처리하게 된다.
민사소송의 제2라운드는 갑 할머니가 원고가 되어 병남 부부를 상대로 하는 건물명도 및 부당이득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송이다. 부부를 함께 피고로 삼은 것은 임대차계약은 물론 건축에 있어서도 전면에 처 정 여인이 명의자로 나서고 뒤에서 병남이 주도한 것이 자료에 의하여 분명하기 때문에 그들을 공동 간접 점유자(占有者)로 처리한 것이다. 대지에 관하여 소유권이 있겠다, 건물에 관하여서도 저쪽의 소유권 회복의 시도를 좌절시켰겠다, 임료의 체납 기타 이행지체 사항도 명백하겠다, 임대계약서의 위조부분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여 계약기간의 만료를 주장하지 아니하더라도 원고가 패소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졌다.
서울지방법원은 1997. 11. 26. 부당이득금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95가합62132)을 선고한 것이다. 제19민사합의부의 판결 이유는 역시 삐딱했다. 우선 건물명도(建物明渡)청구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 「원고는 위 임대차계약 당시 3년의 임대차기간이 종료하면 피고 정은 이 사건 건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건물의 소유권을 원고에게 귀속시키기로 약정하였으므로 3년의 임대차기간이 종료한 1991. 2. 28.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원고에게 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들이 위 건물의 1‧2층 전부를 김에게, 지하층 전부를 곽에게 각 임대함으로서 위 건물을 간접 점유하고 있으므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로서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건물의 명도를 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소유물에 대한 불법점유를 이유로 하여 소유권에 기하여 그 명도를 청구하려면 현실적으로 그 목적물을 직접 점유하고 있는 자를 상대로 하여야 할 것인 바(대법원 1983. 5. 10. 선고 81다187판결 등 참조), 원고의 위 주장 자체에 의하더라도 피고들은 이 사건 건물을 소외인들에게 임대하여 이를 현실적으로 점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므로 간접점유자인 피고들을 상대로 한 원고의 소유권에 기한 건물명도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것 없이 이유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