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강희철, 29세. 국가보안법 위반, 제주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 광주고등법원에서 항소 기각,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그는 1958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7세 때 부모가 일본으로 건너가 조모와 삼촌 밑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1974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오사카(大阪)의 부모 슬하에서 조선고등학교를 다녔다. 1981년 일본 경찰에 밀입국자로 피검되어 한국으로 강제출국 당했다. 그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나흘 동안 전기고문 등으로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군대를 마치고 결혼하여 호텔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1986년 4월 어느 날, 제주경찰의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105일 간의 불법감금 속에서 몇 명의 형사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간첩(間諜)으로 조작되기에 이르렀다. 혐의내용은 고등학교 동기생인 전성광에게 포섭되어 북한에 들어가 간첩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왔고, 그 후 강제출국 당한 것처럼 위장하여 한국에 잠입한 후 국가기밀을 탐지하여 전성광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간첩혐의라는 것도 제주도의 도청, 경찰국 등 관공서와 학교 등의 위치를 보고했다는 따위의 상식적인 수준의 정보를 기밀이라고 하여 그러한 범죄사실로 기소되고, 사선 변호사의 선임조차 방해를 받아 속수무책으로 무기징역(無期懲役)이 확정되었다. 최병모(崔炳模) 변호사 등이 포함된 조사단이 일본 현지에서 전성광을 면담하였던 바, 그 사람은 고등학교 재학시절이나 그 후로도 강희철과는 개인적 친분관계도 없는 전혀 무관한 사람임을 확인했다.
이는 천주교 조작간첩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1994. 11. 1.에 펴낸 「분단조국의 희생양, 조작간첩」이란 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는 네 개의 사례 중 강희철에 대한 부분을 기술한 내용 일부이다. 거기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시절 공권력과 사회제도에 의하여 어떻게 한 인간의 존엄성과 가정이 무참히 파괴될 수 있는가를 뼈아프게 확인할 수 있었으며, 공권력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외면하는 것은 우리 자신 또한 공범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민족분단이라는 상황과 국가보안법 그리고 정통성 없는 독재권력이 특진과 포상을 미끼로 빚어낸 구조적인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위 사건에 대한 최종심의 주심대법원판사(主審大法院判事)였다. 말하자면 그 사건의 유죄 및 극형 다음 가는 중형을 확정한 장본인이다.
나는 1993년 10월 대법원에서 퇴직하고 1년쯤 지난 뒤 회고(回顧)에세이 「판사실에서 법정까지」(한국사법행정학회)를 출간한 바 있다. 그 책에서 「달갑지 않은 공안사건의 주심」이란 항목으로 대법원시절의 공안사건 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강희철 간첩사건에 대하여 「주심이었던 나로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건 하나가 있다」고 서두를 꺼낸 바 있다.
|
|
| ▲ 강희철 간첩사건에 대햐어 소회를 밝힌 회고 에세이 '판사t실에서 법정까지' |
|
22세 때 평양에 들어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한국에 드나들면서 북한을 찬양하고 기밀탐지를 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되어 제1심의 재판에서 수사기관에서처럼 죄를 모조리 자백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범죄사실을 부인했으나 항소가 기각되고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피고인과 국선 변호사가 쓴 상고이유서의 법률적인 호소력은 별것 없었지만, 기록을 통하여 감지되는 조작(造作)의 분위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수 없었다. 합의(合議)의 자리에서 나는 사건에 대하여 고등법원이 다시 한 번 심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1심 법원에서의 자백 때문에 사실오인의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는 한 분 대법원판사의 강한 반대의견에 봉착되었다. 결국 구속기간의 촉박으로 부(部)의 전원일치 의견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상고기각 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간첩과 같은 사건은 물증이 별로 없고 범인의 자백도 받아내기 어렵다. 수사기관에서 자백진술을 했다 하더라도 법정에서는 쉽게 뒤엎는다. 그런 류의 사건인데 제1심법원에 이르기까지 자백이 연결되었으니 무죄로 구제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물며 법률심에서야 더욱 그렇다. 국선변호사의 상고이유서라는 것도 성의가 보이지 아니했고, 피고인 본인의 상고이유서도 억울하다는 결론만 강조했지 설득력 있는 논리적 전개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다시 재판해야 옳겠다고 생각한 것은 공소사실 자체에서 내다보이는 조작성 때문이었다.」
그 책에서 나는 기억을 더듬어 더 자세한 내용을 쓰고 싶은 걸 참고, 「그 사건은 상고기각이 되어 법률상 틀림없는 재판으로 확정되고 말았지만 두고두고 꺼림칙해서 잘 잊히지 않는다」고 끝맺었다.
부(部)의 관여 법관 세 분을 잘 설득했으면 사건을 파기환송(破棄還送)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법조인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대법원 구성으로는 불가능이었다. 검찰 출신 대법원판사의 고집을 도저히 꺾을 수 없었고 다른 분들도 거의 방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주심의 기를 돋우어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구속기간은 좁혀오고 해서 합의를 연기해 나갈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기징역으로 낙착되고 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