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벌로서의 사형이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현실에 미루어 보아 지금 곧 이를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아니하므로 아직은 우리의 현행 헌법질서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는 바이지만, 사형이란 형벌이 무엇보다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일종의 (制度殺人)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우리의 형사관계법령에 폭넓게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들 법률조항들(모두 89개 조항)이 과연 행위의 불법과의 간에 적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할 것임은 물론 나아가 비록 법정형으로서의 사형이 적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선고함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우리는 위헌‧합헌의 논의를 떠나 사형을 형벌로서 계속 존치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찬반의 논의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고, 한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위하(威嚇)에 의한 범죄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 사형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당연히 헌법에도 위반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하여 사형제도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두 재판관의 반대의견이 있는데, 한 재판관(裁判官)은 「헌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요청은 형사입법, 형사법의 적용과 집행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 원리로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형사법의 영역에서 입법자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악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 내지 제한하는 것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반한다. 이는 극악한 범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자라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고 있는 인간존재인 한, 그에 대하여도 피해자 내지 그 가족 또는 사회의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유사 범죄의 일반적 예방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비인간적인 형벌을 적용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형벌로서의 사형은 자유형과는 달리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아니하는 형벌제도로서 개인을 전적으로 국가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단순한 수단 내지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서 사형수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는 나아가 양심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 법관은 물론, 또 그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이기도 하다」고 했다.
다른 재판관(조승형:趙昇衡) 반대의견은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이외의 어떠한 권위로서도 박탈할 수 없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어떠한 사회과학적 평가나 법적인 평가도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생명권은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이를 박탈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생명권의 제한이므로 헌법 제38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고, 가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형벌의 목적은 응보‧범죄의 일반예방‧범죄인의 개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벌로서의 사형은 이와 같은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생명권을 제한하는 목적의 정당성, 그 수단으로서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등 제 원칙에 반한다고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지방법원 부장판사로서 형사합의부의 재판장을 맡은 때가 있었다. 검사가 사형을 구형한 어떤 사건에 대하여 심리를 마치고 합의(合議)를 하게 되었다. 사형 외에 도리가 없는 흉악범이었다. 그런데 배석판사 한 분이 사형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자기는 사형제도의 폐지에 찬동하며 양심상 사형이란 형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나는 말했다. 법관은 법률을 가지고 논해야지 제도에 반대한다고 해서 사형선고를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형에 반대하는 다른 이유를 대야 한다고 했다. 양형을 감할 다른 이유는 없지만 자기의 소신과 양심에 어긋나는 사형을 선택할 수는 없으니 다수결에 따라 합의를 마쳐주도록 바라는 눈치였다. 예상하지 아니한 배석판사의 의견과 그 성미에 좀 언짢은 기색을 표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자리에서 사형제도의 가부에 관한 논의는 없었다.
먼 훗날 법관의 양심의 자유와 관련한 글을 보면서 그때 그 배석판사의 소회가 결코 짓눌릴 정도로 무가치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상고심재판을 맡고 있으면서 사형이 선고된 상고사건에 대한 합의가 매우 괴로운 적이 있었는데, 주심대법관이 사형의 원심판결을 양형부당의 이유로 깨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가 그렇다.
앞에서 본 파기판결들의 합의가 순탄하게 넘어갔는지 모를 일이지만, 법리의 면을 떠나 살려주자고 하는 의견에 맞서 아니다, 죽여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한다는 것부터 인간적으로 심리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가령 원심의 사형판결에 상당성이 강하고 상고이유로 내세우는 것이 원심에서 이미 충분히 참작한 사유이며 실질적으로 사형반대의 신앙적 확신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일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최종심에서의 주심 대법관의 결심은 바로 주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죽음의 못에서 생명을 건지는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되어 있고,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형의 선고는 법관의 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법과 양심의 충돌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이 때 어느 것을 우선시킬 것인가의 결론에 따라 사형선고에 반대할 명분이 설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본 헌법재판소 결정의 반대의견 가운데 「양심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사형을 언도해야 하는 법관」이란 말도 이를 뜻하는 것이 틀림없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G.Radbruch)는 법의 우선을 주장하면서 「우리는 그의 확신에 반하여 설교하는 목사를 경명하지만, 법률에 충실함으로써 이에 반하는 법 감정에 의하여 동요되지 아니하는 법관을 존경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마이호퍼(W.Mailhofer)는 거꾸로 「우리는 그의 확신에 반하여 판결을 내리는 법관을 경멸하지만 그가 법 양심에 충실함으로써 나쁜 법률과 잘못된 법률, 부정당한 법률과 비도덕적인 법률에 의하여 동요되지 아니하는 법관을 존경한다」고 했다.
헌법학자들은 대부분 헌법 제103조의 양심이란 법관으로서의 양심, 즉 개인적‧주관적인 종교상‧윤리상 또는 정치상의 의견이나 신념이 아니라, 객관적인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공정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법 해석을 직무로 하는 자의 법조적 양심인 법리적 확신을 말하며, 인간으로서의 도덕적‧윤리적 확신(헌법 제19조)과 법관으로서의 법리적 확신이 충돌하는 경우에는 법관은 전자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1948(쇼와:昭和23년). 12. 15. 판결에서 「어떤 구체적인 경우에 법이 정하는 바가 자기의 뜻에 부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법령을 헌법위반이라고 하여 무효로 하는 것은 헌법이 법관에게 요구하는 바가 아님은 물론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법관은 법(유효한)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재판을 하면 그것은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에 따른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객관적 양심설을 지지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