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함안은 나의 자랑스러운 고향이다. 선대들이 평생을 살아오신 고을이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젊은 시절을 보내신 고장인데다 나에게는 철부지 아이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나의 이력서에는 물론 첫 간행물에도 경남 함안 출생이라고 써 왔다.
1995. 1. 8. 동아일보에는 「내일의 내 고향」에 함안을 소개한 나의 글이 실려 있다. 그 해 7월의 민선지방자치시대의 출범을 앞두고 여러 도시에 관하여 그 출신인사의 고향자랑 비슷한 시리즈를 게재하고 있었는데, 어찌되어 그랬는지 내가 「경남 함안」을 맡는 사람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나는 널리 고향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군청 공보담당에게 전화로 홍보물을 보내주도록 부탁하여 그것을 자료삼아 몇 장의 원고지를 메웠다.
「함안은 다른 지명에 비하여 널리 알려진 고장은 아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고향이 함안이라고 하면 마산과 진주 사이의 위치를 대어야만 정확히 알아듣는 이가 많았다. 함안역이 애당초부터 가야면에 있었고 함안군청조차 함안면에서 오래 전에 가야로 옮겨버려 함안의 핵심부가 바로 군의 유일한 읍인 가야에 있게 됨으로서 함안은 그 이름이 함안이되, 가야라는 실질이 포장을 뚫고 있는 형상으로 되어 있다.
지도에 따라서는 철도역을 가야로 표시하고 남해고속국도에는 함안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이처럼 이름이 광의‧협의 두 개처럼 되어 함안이 가야이고 가야가 함안인 것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 함안은 가야이고, 가야는 아라가야(阿羅伽倻」이다. 이름만 들어 보아도 아득히 옛터 선인들의 숨결이 다가오지 않는가!
아라가야 함안은 그래서 고분군이나 산성 등 유적이 많다. 그 중에서도 도항리와 마산리의 고분군과 성산산성은 사적으로 지적되어 있다. 그 밖에 보물로 지정된 대산리 석불, 방어산 마애불을 비롯한 석불, 석탑, 사지가 여러 곳에 있고, 비각, 향교, 서원, 사당 등이 곳곳에 있다.
반드시 관광자원이 되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고장의 자랑인 문화유산을 스스로 보존하고 정비하는 자세가 한데 모아져야 한다. 함안의 내일은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신에서 출발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아라가야에서부터 내려온 빛나는 유산을 잘 다듬어 현대인의 정취에 조명시킬 가치가 넉넉하다. 또한 현대사에 빛을 낸 여러 분야의 고장사람들의 업적도 발굴해 무슨 표적을 남기도록 해야 한다.
드디어 지방자치의 시대를 여는 해가 왔다. 지방자치란 바로 주민자치에 다름없고, 지방적 이해에 관한 일을 주민의 의사와 책임 아래 결정하고 집행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권리가 주어지는 대신 책임도 무거워진다. 우리 고장의 살림을 맡게 될 군수는 함안을 지극히 사랑하는 역량 있는 인물일 것이 틀림없다.
할 일은 많다. 알게 모르게 이웃 고을과 견주게 되고 비슷한 지역과의 경쟁이 유발될 것이다. 고장의 발전에 이바지할 일은 무엇인가. 함안인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한번 뭉칠만하다. 입곡군립공원이나 여항별천계곡 같은 경치를 곱게 개발하고 작은 규모일망정 각종 민속자료나 문화재의 보존관리에도 정성을 들여야 한다. 지역자립의 발돋움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고서야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칠서공단의 조성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가야읍과 법수면 일대의 공단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함안은 임야가 53#, 경지가 32%, 기타 15%의 분포로 되어 있는 농촌이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특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군북, 대산, 법수의 수박도 유명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파수의 곶감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씨가 적고 육질이 연한 것이 타지의 곶감을 단연 능가한다. 이러한 명물을 더욱 개량, 확산시켜 함안의 인상을 곶감처럼 달콤하게 했으면 한다.
김성우(金聖佑) 명예시인은 「돌아가는 배」 (1999)에서 「고향을 가졌으면 그보다 더 귀한 소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다」라고 외치면서 바다에 둘러싸인 고향의 섬을 자랑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을 그리워하게 된다. 고향이 있다는 것, 언제나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다만 가까운 일가가 고향을 떠나버리거나 고향을 지키면서 반갑게 맞아주던 친척들이 하나 둘 작고하게 되면 고향은 점점 허전해진다.
그래도 고향의 산천이 있는 한 그 냄새는 할머니의 품안처럼 언제나 구수하고 다정하다. 내가 방학을 맞아 홀로 마을 언저리에 모습이 드러나면 할머니는 “내 손주야아.”, “내 강생이” 집에서 훠이훠이 뛰어 나오셨다. 할아버지는 가끔 나의 귀를 만지고 대견해 하시면서 “아버지의 사촌 형제는 종숙이라고 하고 당숙이라고도 부르느니라.” 촌수를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는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는데 어찌나 혹독하게 외우도록 하시는지 회초리로 맞기도 했다. 잠들기 전 어머니는 옛날이야기 해 달라고 칭얼대는 나에게 콩쥐팥쥐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해 들려주셨다. 몇 살 때의 일인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시골에서 행복하게 자랐다. 일가친척들의 풍요로운 마음들이 한데 뭉친 마을은 큰 시름이 없었다. 나는 그 속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