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지금 여성파워가 거세다. 여태까지 너무 남성들의 기세에 눌려 있었기 때문이지 남한의 총인구 4,764만 명 가운데 여성이 49.7%인 2365만 6천 명이라니까 인구비례로 보면 여성은 보다 더 남성의 영역을 침범해도 좋을 것이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들어서서 여권신장정책은 특히 괄목할 만했다. 1998년 2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생기고, 2001년 1월에는 여성정책실, 차별개선국, 권익증진국, 대외협력국 외에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산하기구로 둔 여성부(女性部)가 신설되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단연 돋보이는 영역은 뭐니 뭐니 해도 법조계(法曹界)라 할 수 있다. 내가 판사로 임관된 1960년 당시 여자판사는 단 1명이었다. 그런데 사법시험 여성합격자가 198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늘어 1998년 98명(13.3%), 1999년 122명(17.2%), 2000년 151명(18.9%), 2001년 173명(17.5%)으로 2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더니, 2002년에는 239명으로서 드디어 23.9%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2002년 8월 현재 판사, 검사, 변호사, 군법무관, 법무사, 법학교수 등 전체 법률가는 모두 15,920명이고, 이 가운데 여성은 673명으로서 4.2%를 차지한다. 전국적으로 1,844명의 판사 가운데 여성은 175명(9.5%)으로서 10%에 육박하고 있고, 검사 1,352명 가운데 여성은 67명(4.9%), 변호사 5,586명 가운데 여성은 237명(4.2%)이다.
사법시험(司法試驗)뿐만 아니다. 여성은 시험에 강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이 2001년에 36.7%이던 것이 2002년에는 45.7%로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재학생의 여학생 비율이 2000년 29%, 2001년 31.5%이던 것이 2002년에는 33.5%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서 여성의 진출이 비교적 더딘 분야는 대학교수인데, 2002년 서울대학교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임강사 이상의 1,474명의 교원 중 여성은 107명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법대의 경우 여학생 비율은 24%(356명)인데 전임교원 33명 중에는 여성이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학생회는 균형적인 법 해석을 위해 여성의 관점에서 법을 소개해 줄 여교수가 필요하다고 학교 측에 건의서를 내었다고 한다.
여성의 정치(政治)분야에 대한 진출은 더욱 어렵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의 총선결과 전체 당선자 273명 중 여성은 16명(5.9%)으로서 그나마 15대의 3.7%를 약간 넘어섰다. 그러나 지역구 국회의원 227명 중 여성은 5명(2.1%)뿐이고 전국구 국회의원 46명 중 여성이 11명(24%)이었다. 아마 국회의원을 고시(考試)로 뽑는 제도였다면 여성의 진출은 몇 배로 늘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최근 미국에서도 로스쿨 여성 입학생의 비율이 전체의 50%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여성들이 법조계 및 정‧재계를 주도해 나갈 날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변호사는 전체의 41%나 되지만 유명 로펌의 여성간부는 14%에 지나지 않으며, 남성중심의 의료계와 마찬가지로 남녀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함으로 인해 쉽사리 여성천하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한다.
법조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날이 갈수록 증대하는 것은 여성에게 법조계에서의 활동 역시 체질에 맞다는 뜻과 연결될 것이다. 물론 법조계뿐만 아니라 종래 남성의 독무대라고 할 수 있었던 공학계나 기업경영계에도 여성들은 맹렬한 기세로 뛰어들고 있고, 탁월한 어학실력과 꼼꼼한 업무스타일 때문에 그 사회적 인식과 평가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법조계에서의 여성들은 주로 판‧검사와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여판사 가운데는 법원장으로 진출하기 직전의 고등법원 부장급 판사가 4명이나 된다.
230명이 넘는 여성변호사의 경우 특히 대형 로펌에서 「우먼파워」를 앞장서서 이끌고 있다. 종전에는 여성 변호사들에게 「가사사건」이 발판이자 족쇄로 통해 왔으나 이제는 통상, 지적재산권, 인수합병, 파이낸스, 기업분쟁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법무법인 광장(廣場)만 해도 여성 변호사가 22명(16.8%)이나 되는데,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희망 전문직종을 조사한 결과 남성 변호사들과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