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기본법은 일찍부터 여성에 대하여 화려하게 배려하고 있었고, 법률 역시 최근에 들어 철저히 그 뒷받침을 하고 있다. 가족법 분야에 있어서도 1990. 1. 13.의 민법개정으로 가부장적 요소와 남녀불평등적 요소는 많이 제거되었다.
친족(親族)의 범위가 종전에는 부계혈족은 8촌까지로 하면서 모계혈족은 4촌까지로 하고, 처가 쪽으로는 장인‧장모만이 친족에 포함되게 되어 있어 차별이 심했으나, 지금은 부계‧모계 똑같이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로 하고 있다(777조).
친권(親權)에 관하여 부모가 혼인 중인 때에는 부모가 공동으로 행사하되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종전에는 부가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가정법원이 정하도록 했다(909조). 상속(相續)에 있어서도 상속분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혼인을 했건 하지 않았건 균등하게 했고, 호주상속인에게 5할을 가산해 주던 제도도 없앴다.
부(夫)가 처(妻)의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와 처가 부의 재산을 상속하는 경우 상속순위와 상속분에서 차별을 했던 것을 완전히 부부평등으로 고쳐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의 상속분에 5할을 가산하도록 했다(1009조).
다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호주제도(戶主制度)가 폐지되지 않고 수정되는데 그쳤으며, 동성동본불혼제도도 폐지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러나 후자에 대하여는 헌법재판소 1997. 7. 16. 결정에서 「민법 제 809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법률조항은 입법자가 1998. 12. 31.까지 개정하지 아니하면 1999. 1. 1. 그 효력을 상실한다.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는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결정을 내려 사실상 죽은 법률로 만들어 버렸다.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된 것은 「동성동본인 혈족사이에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민법 제809조 제1항의 조항이고, 제2항의 「남계혈족의 배우자, 부의 혈족 및 기타 8촌 이내에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살아 있다.
학자들은 「남계혈족(男系血族)의 배우자」를 4촌 이내의 남계혈족(여계를 제외)의 배우자(777조)로, 「부(夫)의 혈족」은 부의 4촌 이내의 혈족(부‧모계 포함)으로(769조, 777조, 815조 3호), 그리고 「기타 8촌 이내의 인척(姻戚)」은 문리대로 해석할 때 혼인이 금지되는 범위가 매우 넓은데, 인척관계로 인한 법률상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4촌 이내의 인척에 미치므로(777조), 4촌 이내의 여계 혈족의 배우자, 직계인척(처의 모), 처의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인 여자(처제 등), 처의 4촌 이내의 혈족인 남자의 배우자이었던 여자, 부의 4촌 이내의 혈족인 여자의 배우자이었던 남자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종전에는 민법 제809조 제2항의 혼인금지규정과 제815조 제2호의 혼인무효규정 때문에 처제(妻弟)와 형부(兄夫)사이의 혼인이 금지되느냐, 금지된다면 혼인의 효력이 무효인가, 최소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논의가 있었는데, 1990년의 민법 일부개정으로 인척의 범위가 4촌 이내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형부와 처제간의 혼인은 금지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구 관습법상의 혼인이 금지되지 않았던 관계가 이와 같이 법적으로 혼인이 금지된다는 것은 입법론상 문제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호주제도는 이제 호주의 가족에 대한 통솔권과 부양의무 등이 없어져서 상징적인 것으로 남아있고 호적편제의 기준으로의 의미만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계에서는 호주제에 대하여 그 존재만으로도 비민주적이며 반여성적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면서 그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호주제는 통상 아버지를 정점으로 가족 구성원을 서열화해 가족 내의 권력관계를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제도로서, 이혼, 재혼가족, 홀부모, 미혼부모가족, 동성애가족 등 다양해진 현대의 가족형태를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송이 된 사례로서는 이혼여성의 친자녀 입적문제가 있다.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혼하여 자녀를 양육하더라도 어머니 자신의 호적에 올릴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 조항은 법원에 의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의 제청이 되어 있다. 또한 호주승계에 있어서도 민법 제984조는 피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처, 가족인 직계존속여자,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 순으로 다시 말하자면 호주가 사망한 경우 아들, 손자, 미혼인 딸, 배우자,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는 주민등록상 동거인에 불과하며, 재혼하지 않더라도 승계순위에 밀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호적에 오른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여 하루 평균 135쌍의 부부가 이혼소송을 내고 있는데다가 이혼 후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한 집에 살면서 자녀가 아버지의 가(家)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한 먼 훗날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있는 것이 여러모로 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호주제의 전면적 폐지를 주장하는 많은 학자와 여성 측의 의견에 맞서 호주제가 폐지됨으로서 민족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케 하여 온 우리의 전통 가족제도의 기초인 「가(家)」의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호주승계에 있어서의 아들 선순위에 대해서도 사회관행으로 혼인하면 여자는 남편의 가에 입적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것과 제사의 주재를 호주가 수행하여 온 관행에서 유래된 것이고, 혼인하지 않은 딸에 의한 가의 승계도 나중에 혼인하게 되면 결국 남편 또는 시아버지가 호주로 되어 있는 가에 가족구성원으로 입적하게 되어 호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인 만큼 아들 선순위라고 해서 여권(女權)이 박탈된다고만 볼 수 없다고 한다.
호주제도에 대한 극단적인 반론은 성씨(姓氏)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 자녀가 반드시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일부 여성들은 부모의 성을 모두 따서 김박누구 이정누구 등으로 쓰고 있다. 현재의 성씨는 원칙적으로 부계혈통(父系血統)을 표시하며 옛날부터 성불변(姓不變)의 원칙에 따라 성은 바꿀 수 없도록 되어 있다(민법 제781조). 그리하여 부부는 각자의 본래의 성을 그대로 칭하게 된다.
요즘 일본에서는 부부별성제(夫婦別姓制)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일본은 여자가 결혼해 남편호적에 오르면 남편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데 최근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라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결혼하면서 남편 성으로 바꿨다가 이혼을 하여 원래의 성으로 되돌아가면 주변에선 이름만 봐도 이혼사실을 금방 알게 되는데, 이에 비하여 우리의 성불변제는 여권신장에 있어서 훨씬 앞선 제도가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