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성희롱(性戲弄)재판에 대한 반발과 인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관해서 생각해본다.
2001. 3. 15.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6개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영모(李永模) 헌법재판관의 정년퇴임에 따른 신임 재판관으로 박용상(朴容相) 헌재 사무처장이 거론되고 있으나 박 처장은 과거 반여성적, 반민주적 판결을 내린 인사라는 점에서 헌법재판관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박 처장에 대하여 반여성적이라고 비난한 것은 판사 재직 시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에서 여성인 원고에게 불리한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농 비슷하게 이 정권에서 여성과 사회단체에 찍혔다가는 절대로 출세 못 한다고 한 말이 상기되었다. 과연 새 헌법재판관에는 현직 검사가 임명되었고, 헌법재판소 내부에서 발탁되기를 바라던 박 처장은 탈락되고 말았다.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은 원고가 임기 1년의 유급조교로 피용되어 근무하던 도중 학과 소속 교수인 피고로부터 일정기간동안 여러 형태의 성적 괴롭힘을 받았으며, 그 성적접근에 응하지 아니하자 원고를 재임용하지 아니하고 해고함으로써 원고는 이로 인하여 프라이버시와 성적 자유 및 일할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하여 교수와 국가를 상대로 5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제1심(서울민사지방법원 1994. 4. 18. 선고 93가합77840 판결)은 3천만 원을 인용했으나 제2심(서울고등법원 1995. 7. 25. 선고 94나15358 판결)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박 처장은 항소심판결의 재판장이었다. 그 판결은 참여연대와 여성특별위원회에 의하여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인 인식을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으로서 남녀를 떠나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시대역행적인 부당한 판결」이라고 매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시민단체 및 여성단체들과 힘을 합쳐 대법원장에 대한 항의서한 발송, 항의집회 개최 등을 전개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대법원(1998. 2. 18. 선고 95다39533 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여성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상고심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여성계에서는 그 주심대법관에게 극진한 찬사를 보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반대로 제2심판결의 재판장은 마치 전 여성의 적처럼 비난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나아가 인격적으로도 수모를 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승진의 문턱에서도 끌어내려진 것이다.
지성인에 의한 성희롱을 단죄함으로써 남성들의 고약한 버릇을 고치기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제1심과는 달리 항소심의 결과가 패배로 나타났으니 여성 측에서 흥분하지 않게 되었는가.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이 있은 후 나는 항소심판결을 찬찬히 읽어보게 되었다. 무려 2백 자 원고지로 쳐서 140매 정도의 방대한 판결문이었다.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지 못하여 빛을 발하지 못한 판결이 되고 말았지만 성적 괴롭힘의 행위 유형에 관한 새로운 이론적 시도는 학술적인 면에서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 직장 내의 성희롱, 성적 괴롭힘의 한계란 미묘한 것이므로, 불법행위의 성립에 관하여 그 개념을 정립하고 가해자적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를 염두에 둔 판결이라 할 수 있고, 그 보다도 사회적 관심사임에 따라 매우 신중한 검토와 연구를 거쳐 결론을 내린 고뇌 어린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판결주문(判決主文)이 바로 판결의 결론이고 판결의 이유는 주문을 이끌어 낸 판단과정을 설명한 것이므로 이유가 빛난다는 것은 주문이 정당해야 성립되는 말이다. 그러므로 항소심판결은 냉혹하게 평하자면 헛수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급심재판이란 것은 이와 같이 최종심에서 유지되지 못하면 비참한 지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틀린 결론을 내린 것으로 귀착되었다 하여 항소심 담당판사들이 굴욕을 감수하면서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고 생각된다.
대법원도 상고한지 2년 7개월이란 장기간의 검토 끝에 항소심판결을 파기한 것이며, 「이른바 성희롱의 위법성의 문제는 종전에는 법적문제로 노출되지 아니한 채 묵인되거나 당사자 간에 해결되었던 것이나 앞으로는 빈번히 문제될 수지가 많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불법행위이기는 하나, 이를 논함에 있어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를 일반 불법행위의 한 유형으로 파악하여 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따라 불법행위의 성부를 가리면 족한 것이지, 원심이 설시하는 바와 같은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성희롱을 고용관계에 한정하여, 조건적 성희롱과 환경적 성희롱으로 구분하고, 그 성희롱의 태양이 중대하고 철저한 정도에 이르러야 하며, 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가해자의 성적언동 자체가 피해자의 업무수행을 부당히 간섭하고 적대적 굴욕적 근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실제상 피해자가 업무능력을 저해 당하였다거나 정신적인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입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것이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피해자로서는 가해자의 성희롱으로 말미암아 단순한 분노, 슬픔, 울화, 놀람을 초과하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는 점을 주장, 입증하여야 한다는 견해는 이를 채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항소심과는 견해를 달리한다는 것뿐이다.
여성의 질주(疾走)에 대하여 탄복하면서도 때로는 제동장치가 탈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겁을 느낄 때가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확대되면서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남성에 비해 덜 부패하다는 것이다. 여성 공직자(公職者)의 경우 남성에 비해 훨씬 청렴하다는 인상을 풍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여성이 많이 진출한 분야일수록 부정부패가 줄고 따라서 경쟁력을 높이게 된다는 말이 된다. 이런 공식이 인정된다면 여성의 참여가 가장 적은 정치분야에서 여성에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의 혼탁한 정계를 깨끗하고 거짓말이 난무할 수 없는 정치풍토로 탈바꿈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온갖 부정과 비리, 그리고 악독하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거의 남자다. 여성이 나쁜 짓을 한다고 해도 그 양이나 질에서 남자의 행패에 비교할 수 없다. 그 머리 좋고 행실 바른 여성들은, 억척스러운 어머니들은 다 어디 있는가.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 재능 있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결혼을 하면 집안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직장여성이라 할지라도 육아와 가사 때문에 일터를 포기하고 마는 것도 다반사다. 여자라는 성별의 특성에서 남성과 같은 대열에서의 사회생활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은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자라나는 아이에게 어머니의 지혜를 가르치고 알게 모르게 수많은 교훈을 주입한다.
더불어 편안하고 아늑한 가정을 이룩하기 위해 남편을 대신하여 온갖 걱정을 다하면서 궂은 일 자잘한 일까지 도맡아 처리한다. 우리는 아내와 엄마의 이러한 정신적 육체적 역할을 이해하여야 하고 존중하여야 하고 감사하여야 한다. 또한 사회의 여성전체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여성들은 이웃과의 평화롭고 효율적인 관계에서부터 출발하여 남성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여러 분야에서 사회의 안전과 발전에 지대하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 엄마들 특히 학벌 좋고 부유한 주부들이 지나치게 아이들 진학에 안달함으로써 아이를 경쟁적‧물질적‧소비적으로 키우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 윤택림 교수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 건 재산과 학력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가치,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 나가는 지혜」(중앙일보 2002. 9. 14.)라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부류의 주부들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없이 사회적으로 유익하지 않은데 힘과 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지난날의 우리 할머니들이 하여 오신 바를 현대여성이 본 딸 필요가 있는 것도 많다. 허례허식과 사치에 관하여서는 여성은 남성보다 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자원낭비에 관하여서도 여성들 개개인이 사소한 것부터 솔선수범하여 가정에서부터 사회전반으로 그 폐해를 막아야 한다.
앞에서 여성의 힘찬 질주를 말했지만 간혹 질주하는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때에는 여성 스스로가 강도 높게 그런 여성부류를 질타하고 지혜로운 방향으로 교정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리만 내세워 여성의 잘못을 지적하는 남성을 야유하고 적대시하는 풍조가 되어서는 나중에 결국 비만증(肥滿症)에 걸린 여성상을 보게 될 뿐이고, 여성이 여성을 서로 업신여기고 외면하는 현상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시험을 통한 독자적 개별적 성공률은 큰데 각종 투표에 의한 여성의 진출은 왜 답보상태인지, 여성이 여성을 존경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성은 지금부터라도 슬기롭게 분발하여야 하며,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