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상의 분쟁이 대부분인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당사자는 경우에 따라 큰 시련을 겪게 된다. 패소판결에 따라 재산상의 손해를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잘못하면 사기미수죄(詐欺未遂罪)로 걸려 곤혹을 치를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민사상의 불법행위가 성립되어 도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민사소송에 의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사인(私人)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나 법률관계를 둘러싼 분쟁이므로, 심리의 대상‧내용 같은 면에서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당사자주의(當事者主義)가 채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송절차는 원고가 소를 제기한 경우에 그 한도에서 행해지고(처분권주의), 자료는 당사자가 제출한 것에 한하도록(변론주의) 되어 있다. 그러므로 민사재판에서는 반드시 정의(正義(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도저히 패소해서 안 될 사건인데 원고의 청구가 배척될 수 있고, 거꾸로 피고의 방어가 무위로 돌아가고 마는 수가 있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으로 끝나도 분한 마당에 상대방의 역습이 개시되는 것이다.
먼저 소송의 제기가 위법성을 띠어 불법행위(不法行爲)가 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상대방으로부터 제소를 당하여 부당하게 응소하는 행위도 불법행위가 될 수 있고, 드물지만 그 사례(대법원 1994. 9. 9. 선고 93다50116판결)도 있다. 법이 보장한 이러한 소의 제기 또는 응소행위를 불법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자세히 언급한 대법원판례(1999. 4. 13. 선고 98다52513 판결, 2002. 5. 31. 선고 2001다64468 판결)를 보면 이렇다.
「법적 분쟁의 당사자가 법원에 대하여 당해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을 구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근간에 관계되는 중요한 일이므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제소행위나 응소행위가 불법행위가 되는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적어도 재판제도의 이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되지 아니하도록 신중하게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적 분쟁의 해결을 구하기 위하여 소를 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정당한 행위이고, 단지 제소자가 패소의 판결을 받아 확정되었다는 것만으로 바로 그 소의 제기가 불법행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면 소를 제기당한 사람 쪽에서 보면, 응소를 강요당하고 어쩔 수 없이 그를 위하여 변호사 비용을 지출하는 등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지게 되는 까닭에 응소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소의 제기는 위법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람이 패소판결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 그와 같은 소의 제기가 상대방에 대하여 위법한 행위가 되는 것은 당해 소송에 있어서 제소자가 주장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사실적‧법률적 근거가 없고, 제소자가 그와 같은 점을 알면서, 혹은 통상인이라면 그 점을 용이하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를 제기하는 등 소의 제기가 재판제도의 취지와 목적에 비추어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런데 부당한 보전처분(保全處分)에 대하여는 소송의 경우와 달리 그 책임의 인정요건을 크게 완화하고 있다. 판례(대법원 1995. 4. 14. 선고 94다6529 판결)는 「가압류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은 법원의 재판에 의하여 집행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실체상 청구권이 있는지 여부는 본안소송에 맡기고 단지 소명에 의하여 채권자의 책임 아래 하는 것이므로, 그 집행 후에 집행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패소 확정되었다면 그 보전처분의 집행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집행채권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추정되고 따라서 그 부당한 집행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했다.
가압류나 가처분은 채권자의 채권을 재빨리 확보하여 보전해 두려는 것으로서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기 때문에 그 요건 등에 관하여 법원은 약식으로 검토하고 경우에 따라 사전의 심문절차도 없이 발령하며 그 집행도 기습적으로 행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재판의 위험성이 높고 따라서 본안소송에 비해 보다 쉽게 손해배상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사재판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드문 일이지만 불법행위가 되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고, 보전소송이 취소되어 패소한 당사자도 상대방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진다는 법리를 보았지만, 실제 피해자가 받는 배상액은 그동안 시달린 고통에 비하면 대단찮다고 할 수 있다.
손해액배상의 범위에 주로 문제되는 것은 상대방이 지출한 변호사비용과 위자료인데, 전자에 관하여서 판례(대법원 1978. 12. 13. 선고 78다1542판결)는 「부당하게 제소를 당하여 부득이 변호사에게 위임하여 응소한 자는 그 소 제기가 목적 기타에 있어서 공서양속에 반하는 등 그 자체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응소를 위하여 위임한 변호사에게 지불한 상당범위의 보수금에 관하여 부당제소자에 대하여 민법의 불법행위의 규정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변호사보수가 상당한 범위 내의 것인가 여부는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산입에관한규칙에 의한 보수기준도 일응 참작이 되지만 종국적인 판단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소속 변호사회의 규약, 소송물가액, 사건의 난이도, 소송진행과정, 판결결과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합리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대법원 1986. 8. 19. 선고 86다카70 판결)이다.
위자료가 손해배상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좀 까다롭다. 판례(대법원 1994. 9. 9. 선고 93다50116 판결)는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재산권이 침해된 경우에는 이로 인한 통상적인 손해는 재산적인 것에 불과하므로 일반적으로 그 재산적 손해의 배상에 의하여 정신적 고통도 회복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재산적 손해의 배상만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손해가 있다면 위자료로서 이에 대한 손해도 배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이므로 그러한 특별사정의 존재와 함께 가해자가 그러한 특별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자료가 배상범위에서 빠진다면 재산적 손해란 그 입증도 쉽지 않고 그 수액도 대단찮으므로 승소한 당사자는 재판에 이긴 것으로 만족할 일이지 섣불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으로 반격을 가할 실익은 크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패소당사자가 승소당사자로부터 당하는 형사고소다. 반대로 승소당사자도 고소를 당할 수 있다. 이른바 소송사기(訴訟詐欺)라는 범죄다. 소송사기란 법원에 허위의 사실을 주장하거나 허의의 증거를 제출함으로써 법원을 기망(欺罔)하여 승소판결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기망당한 법원과 소송의 상대방인 피해자와는 일치하지 않지만 법원의 행위에 의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얻은 것이므로 사기죄를 구성한다. 법원을 기망해 보았지만 승소하지 못한 당사자는 사기미수죄가 된다.
민사재판이란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당사자주의 소송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원고나 피고는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이나 증거를 자기책임 아래 변론에 현출하여야 하고, 상대방에게 유리한 사실을 알고 있거나 증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위하여 그 사실을 진술하거나 증거를 내 놓아야 할 의무는 없다. 법원도 당사자에게 새로운 주장 같은 것을 하도록 시사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민사재판이 끝나고 나서 그 소송의 과정에서 어느 한쪽이 법원을 착오에 빠뜨렸다는 혐의를 문제 삼는 일이 더러 있게 되는 것이다. 법원을 기망했다는 말은 법원이 속아 넘어갔다는 뜻이 되지만 법원을 이용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민사소송에서는 소송절차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법원을 기망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원고로서 승소한 당사자가 사기죄의 기수(旣遂)로 처벌되는 예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 1991. 8. 27. 선고 91도1524 판결을 보면, 원고인 피고인과 피고 갑이 공모하여 민사소송에서 법원에 대하여 위조된 문서를 증거로 제출하면서 피고인이 동일한 전 소송에서 모두 패소 확정된 사실을 감춘 가운데, 피고인은 다른 피고인들에게 피고인이 승소하더라도 피고 갑에 대하여서만 권리행사를 하고 다른 피고인들에게는 집행을 하지 아니하겠다는 등으로 이들을 회유하여 이들의 적극적인 방어행위를 방해하고, 피고 갑은 원고인 피고인의 주장사실을 단순히 부인했을 뿐 동일한 전소에서의 피고인의 패소판결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주장‧입증하지 아니하는 등 불성실하게 소송을 진행하여 이러한 사정 등을 모르는 법원을 기망했다는 내용의 사건으로서 소송사기를 인정한 것이다.
한편 피고로서 법원을 기망하여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되는 경우도 있다. 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도2786 판결에 의하면, 「적극적 소송 당사자인 원고뿐만 아니라 방어적인 위치에 있는 피고라 하더라도, 허위내용의 서류를 작성하여 이를 증거로 제출하거나 위증을 시키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법원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지게 한 결과 승소확정판결을 받음으로써 자기의 재산상의 의무이행을 면하게 된 경우에는 그 재산가액 상당에 대하여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하고, 그와 같은 경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법원을 기망할 의사를 가지고 허위내용의 서류를 증거로 제출하거나 그에 따른 주장을 담은 답변서나 준비서면을 제출한 경우에 사기죄의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는 상대방이 권리행사를 게을리 한 탓일 수가 많을 것이고 형사사건으로 처벌될 만한 사례는 매우 드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