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법원의 2001년도 조정‧화해율은 합의 11.5%, 단독 11.9%, 항소 9.6%라고 하는데 적어도 그 비율에 미달하지 않는 조정을 성공시켜야 할 것 같지만 만만찮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제 조정을 성공으로 이끈 두 개의 사건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원고 갑은 13세로서 중학교 2학년이고, 다른 원고 두 사람은 그의 부모이다. 피고 을은 같은 학년의 친구이고, 다른 피고 두 사람은 그의 부모이다. 갑과 을은 1999. 3. 17. 학교에서 휴식시간에 사소한 일로 다투다가 그날은 일방적으로 덩치가 큰 갑이 을을 발길질했고, 그 다음 날 학교에서 두 사람은 다시 싸우기 시작하여 을이 갑의 얼굴을 한 대 쳐서 앞니에 피가 났고, 갑은 을을 때려 여러 군데 상처를 입혔다. 이런 아이싸움인데 문제는 갑이 이를 다쳐 상당기간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갑의 아버지가 사태를 처음부터 법적으로 처리하려는 것에 있었다.
갑의 아버지는 두 달 후 갑이 상악좌측중절치의 치수괴사 등으로 14일의 가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을을 걸어 검찰에 고소를 제기했는데, 형사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이 안 되니까 같은 해 8월에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치료비와 위자료로서 갑에게 4백만 원, 부모에게 각각 2백만 원을 배상할 것을 청구했다. 기록에 있는 담임선생의 진술서를 보면 갑의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난리를 친 광경을 생생하게 말하고 있었다. 학교에 대하여는 을을 당장 퇴학케 하거나 무기정학에 처하라는 주문이었고, 치료비를 부담하겠다는 을의 어머니 제의에 대하여는 막무가내로 법정에서 만나자고 겁을 주었다는 것이다.
제1심 법원은 2000. 5. 18.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피고들은 각자 갑에게 580,840원, 어머니에게 100.000원, 아버지에게 2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1999. 9. 1.부터 2000. 5. 18.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완제일까지는 연 25%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 중 80%는 원고들의, 나머지는 피고들의 각 부담으로 한다.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갑의 향후 상실될 가동능력에 대한 손해는 인정하지 아니했고, 갑의 과실 40%가 경합했다 하여 이를 참작한 것인데 소송비용의 부담에서 보듯이 법원이 원고 측을 예쁘게 보지 아니한 것은 분명하다.
원고들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이 없이 갑의 아버지가 직접 소송을 수행했는데 갑에 대한 신체감정(身體鑑定)을 신청하는 등 훼손치아의 치료비에 대한 입증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감정결과는 원고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아니했다. 치료는 종결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후유장해도 없다는 것이다. 원고들은 서울대학교병원장의 신체감정서에 쓰인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장문의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항소심법원은 사건을 조정에 돌린 것이다.
조정위원회에는 갑의 아버지와 을의 부모가 나왔는데 양쪽의 인상부터 판이했다. 한쪽은 외모도 신경질적으로 생긴데다가 어투도 고약했고, 다른 쪽 부부는 순박하게 생긴데다가 말이 없는 편이었다. 기록을 통하여 을의 아버지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남의 분식가게에서 월 50만 원을 받고 일을 해주고 있는 처지임을 알 수 있었다. 원고는 피고 측의 한 마디 대답에 대하여 열 마디로 응수하는 등 처음부터 타협하고는 먼 분위기였다.
조정위원들이 양보를 권유하는데도 원고의 신경을 거스를까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피고 부부의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것 알지 않는가. 백만 원만 더 받고 종결짓는 게 어떠냐고 원고에게 말을 꺼내보았다. 원고는 5백만 원 내지 6백만 원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했다. 4년간의 송사(訟事)로 치료비와 변호사비에 든 돈만 해도 그 두 배는 넘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제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데 언제까지 사건을 끌고 갈 참이냐, 자식들에게 너무 상처를 주는 것 아닌가 하고 나무랐더니,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항소한 것 아니다, 자식 핑계 삼아 돈 벌 생각 없다, 이런 투로 뭔가 조금씩 풀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원고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피고 부부에게 얼마 정도 더 부담하고 빨리 끝내는 게 어떠냐고 의향을 물었더니 부인이 주저하지 않고 2백만 원을 준비해 왔다고 하면서 손가방에 든 현찰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꿈에 볼까 무섭다면서 공탁(供託)한 돈 외에 이 돈 다 주고 잊어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1심판결대로 돈 278만 원을 공탁했노라고 말했다. 이상하다 싶어 판결주문을 다시 보았지만 합산하여 880,840원밖에 안 되어 그 공탁금의 계산은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인가 물었더니 법무사가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원고는 그 돈을 찾아갔다. 그러면 왜 이런 오해의 공탁이 일어났는가. 이 점에 대하여는 좀 뒤에 거론해 보기로 하겠다.
하여간 조정은 성립되었다. 원고에게는 피고 측의 공탁이 착오였고, 만일 제1심판결이 확정되는 날 원고는 부당이득이 되어 찾은 돈을 반환해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은연중에 피고 측을 두둔하는 분위기가 지배되어 공탁금 외에 원고들에게 150만 원을 더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그 돈은 원고가 을의 아버지 소유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를 푸는 것과 동시에 지급하는 것으로 했고, 쌍방 바로 법무사 사무실에 가서 절차를 취하라고 해 내보냈다. 피고측은 조정위원들의 동정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50만 원은 확실히 절약한 셈이었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게 되었든 결과적으로 원고들은 항소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이제 판결주문의 알쏭달쏭한 의미를 푸는 법률공부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제1심판결은 피고들은 각자 원고 갑1에게 580,840원, 갑2에게 100,000원, 원고 갑3에게 200,000원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피고들은 피고 세 사람이 따로따로 580,840원, 100,000원, 200,000원씩을 지급하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그 합산액 2,642,520원에 이자를 붙여 278만 원을 공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피고들은 이자를 제외하고 880,840을 주어야 할 것인데 176만 여 원을 더 준 것이다. 그것은 판결주문의 각자(各自)의 뜻을 오해한 탓이었다. 더욱이 그 판결은 소액사건에 대한 것으로서 이유의 기재가 생략되어(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2 제3항) 일반사람들로서는 그렇게 풀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 할 수 있다.
판결주문에서 피고가 여러 사람일 때 그 채무가 분할채무(민법 제408조)이거나 독립채무이어서 그 사이에 중첩관계가 없으면 피고별로 각각 얼마를 지급하라고 한다. 그러나 피고들 채무가 중첩관계에 있는 경우 예컨대 불가분채무(민법 제411조), 연대채무(민법 제413조), 부진정연대채무(민법 제760조) 등에 있어서는 피고들의 의무 사이에 중첩관계가 있음을 밝혀주어야 할 것이므로, 반드시 「연대하여」 또는 「각자」라는 표시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