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교사에 관한 위 범죄사실 내용은 얼핏 뭔가 좀 헐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남편의 운전기사가 전화로 사모님에게 울면서 남편의 살인에 대한 결의를 일러바치고, 남편을 죽여 준다면 생활비를 주겠다는 피고인의 제의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전화상의 그 대답을 듣고 쇠파이프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쳤다는 것인데, 무슨 살인의 결행이 이런 단순한 구성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살인교사의 동기가 그런 정도의 충동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부터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만, 검사로서는 운전사가 피고인으로부터 살해의 교사를 받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판이니 피고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피고인을 살인교사죄로 기소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법관으로서는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로 진실을 캐내는 노력과 슬기를 발휘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한 범죄도 아닌 특정인을 살해하는 극악한 범죄를 자행함에 있어서는 절대로 동기(動機)가 있는 법이다. 이 사건에서는 도대체 살인의 동기라는 것이 너무도 박약하다.
피고인이 1994년 12월 초경 남편과의 불화로 집을 나와 친지의 집에 머물면서 이혼소송을 결심하고 있었던 처지였지만, 운전사 말대로 남편이 아내와 처가식구들을 죽이겠다고 했다 쳐도 남편이 당장 살인행위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피고인이 직접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죽인다, 죽여 버리겠다는 말은 일상적으로 화가 나서 내뱉는 흔한 말이기도 하지 않는가.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2000. 7. 28.(2000도1568)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형사재판에서 공소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대원칙을 전제했다.
그리고 나서,「살인교사의 점을 부인하고 있는 피고인의 진술과 매월 생활비로 5백만 원 내지 6백만 원씩을 주겠으니 남편을 죽여 달라는 피고인의 말을 듣고 남편을 살해하였다는 갑의 진술 가운데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임에 틀림없다」고 전제하고, 갑의 진술은 그 자체로 납득하기 어렵거나, 진술이 일관되지 아니하고, 기록상 드러나는 객관적 사실과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쉽사리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많은 분량의 판결이유 가운데 제일 먼저 든 것은 살인교사의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죽이라고 교사하는 범행이 전화통화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아내가 하수인을 시켜 남편을 살해하고자 한다면, 그 하수인에 대한 교사나 모의는 사전에 서로 만나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과정에서 범행비용을 미리 준다거나 범행의 대가에 대한 논의가 있고, 나아가 살해의 방법이나 사후 처리문제 등도 거론됨이 통상일 것」인데, 그 하수인이라는 갑은 남편이 집을 나가기 한 달 전쯤 새로 채용한 운전기사로서 피고인과는 거의 면식이 없는 처지임을 지적했다.
운전기사 갑이 공소사실과 같은 내용으로 자백하기까지의 경위에 대하여, 대법원은 「갑이 특수강간의 범죄사실로 1999. 2. 24. 19:00 경 긴급 체포되어 구속되어 있던 중 1999. 4. 19. 남편의 아들이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몇 년이 지나도록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집을 나갈 때 데리고 간 운전사 갑을 피진정인으로 한 진정서를 부산지방경찰청에 제출하여 그 조사과정에서 갑이 부산구치소에 구속 수감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나 1999. 5. 17.부터 조사를 받게 되었는 바, 처음에는 남편을 살해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면서 남편을 모시고 집을 나갔으나 1996년 1월경 헤어졌다거나, 필리핀을 거쳐 태국에서 만나 헤어진 뒤로 만난 적이 없다는 등으로 변소 하였으나, 출입국관리소에 대한 문의 결과 남편은 갑과 달리 그 사이 해외로 출국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지고 한편, 남편 명의로 개설한 예금통장에서 1억 8천만 원 이상의 거액이 인출되고 갑이 114일 동안이나 해외여행을 하였으며, 출금청구서의 필적이 갑의 필적임이 드러나자, 마침내 1999. 6. 8. 남편을 죽였다고 자백하면서 살해 일시는 설날 직후인 1995. 2. 1. 18:00 경, 장소는 부산 범어사 입구 여관 2층이라고 하고, 살해 동기에 관하여는 피고인이 생활비를 줄 터이니 남편을 죽여 달라고 하여 죽이게 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설시했다.
그리고 운전기사의 양형에 관한 상고이유에 대하여 「운전기사로서 자신의 고용주인 피해자를 쇠파이프로 때려 무자비하게 죽이고, 그 사체를 절단 손괴하여 은닉하는 등 그 범행 수법과 결과가 극히 중한데다가 위와 같이 피해자를 살해하고도 그 사실을 숨긴 채 그 처인 피고인으로부터 피해자의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내고 피해자 명의의 예금통장까지 넘겨받아 거액의 예금을 편취하였으며, 나아가 특수강간의 성폭력 범죄를 범하기까지 하였다」고 하면서 상고를 기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