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그 임기 종료가 다가오는 2002년 마지막 날, 고위공직자‧기업인 등 주요인사 122명에 대한 특별사면(特別赦免)을 단행했다. 여론은 발칵 들고 일어났다. 국가경축일도 아닌 세모에 대규모 사면‧복권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서 정권 말에 봐줘야 할 사람들을 「떨이사면」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신문은 사설마다 사면권이 너무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고, 특히 법조계의 반발은 전례 없이 컸다. 상고심이나 항소심에 계류 중인 피고인들 일부는 사면 직전에 상소를 취하하여 형을 확정시킴으로서 사면 받을 자격을 확보해 두는 전략을 구사하여 「물밑흥정」의 의혹까지 있다고 했다.
이번 사면조치에 대한 격한 비난은, 이전의 대통령들이 시행한 사면에 대하여 그동안 줄기차게 비판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제하는 기미가 없었고, 이 정부 들어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1998. 3. 13. 대통령 취임기념으로 특별사면 30만 2739명, 거기다가 운전면허 벌점 등 감면 532만 5850명, 같은 해 8. 15. 건국 50주년이라 하여 특별사면 3424명, 1999. 2. 25. 대통령 취임 1주년이라 하여 특별사면 6208명, 같은 해 8. 15. 광복절 기념으로 특별사면 828명에다가 징계사면 16만 6334명, 그리고 2000. 8. 15. 광복절 기념으로 특별사면 2만 7029명을 시행했는가 하면, 이번 사면 있기 전인 2002. 7. 10. 에는 월드컵 축구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4강 신화를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음주운전, 속도위반, 신호위반 등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벌점을 받았거나 운전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되니 운전자 481만여 명에 대하여 행정조치와 벌점을 없애주는 혜택을 주었다.
교통법 위반자에 대한 사면조치는 김영삼(金永三) 대통령 시절이었던 1995년 광복 50주년에 건국 이래 최대인원인 594만 명이 사면되어 경찰서마다 후속조치로 난리법석을 치른 일이 있었다. 이와 같은 교통대사면의 후유증으로 운전자 사이에 「교통법규는 지키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음주 운전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범칙금을 안내고 버티는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통령의 혼전만전 사면이 남발되니까 드디어 현직 법관들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서울지방법원 정진경(鄭鎭京) 판사는 법원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의 자의적인 사면권 행사로 인하여 사법부의 본질적인 기능이 훼손되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심 끝에 선고된 판결들이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릴 때 일선 판사들이 느끼는 참담함에 대하여 사면권자는 과연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구는 싫은 소리 들어가며 집행여부도 불투명한 의미 없는 재판을 계속하고, 누구는 선심 쓰듯이 생색나는 사면권의 행사를 반복하는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더 지속되어야 합니까」라고 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이충상(李忠相) 부장판사는 역대 대통령들의 사면권 남용에 대하여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하면서 법관으로서 울분과 무력감을 느꼈던 일이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1948. 8. 30. 법률 제2호로 공포된 사면법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된 일이 없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사면법개정안(赦免法改正案)을 제시하고 있다(법률신문 2003. 1. 6.).
그 요지는 첫째, 원칙적으로 판결 확정일로부터 판결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하기 전에는 사면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인데, 거액의 뇌물 내지 커미션을 수수하여 장기형을 받은 사람들을 조기에 사면하여 준 사례가 많기 때문에, 대형사건 내지 권력형 사건에 대하여는 양형권이 판사에게 없고 대통령에게 있다고까지 말하여지고 있고, 이런 비정상적인 현실을 정상화하고 판결확정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는 사면,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하는 사면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 둘째,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지명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면위원회가 수형자 본인의 기간단축신청에 의하여 사면기간을 다시 3분의 1까지 단축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장판사는 현저한 사면권 남용의 사례로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피고인의 경우를 들고 있다. 1999년 여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서 김 피고인의 재상고사건 기록을 읽고 있는데, 일간지에 「김현철 광복절에 사면될 듯」이라는 기사가 보도되더니 곧 상고취하서가 제출되어 대법원 재상고심판결은 선고될 것도 없이 원심판결이 확정되고, 그 직후 김현철은 광복절 사면을 받음으로써 징역 2년의 확정판결이 단 하루도 집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은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석방된 후 단 하루도 구금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비롯한 드림팀이 구성되어 수사를 하고, 제1심과 항소심 법관들이 조세포탈죄의 성립여부 등에 관하여 외국의 판례, 학설을 수집하며 고심했고, 대법원은 일부 무죄취지로 파기환송을 하여 재항소심을 거쳐 재상고된 사건이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의 여러 검사와 법관의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김현철은 즉시사면의 약속 내지 언질을 받고 상고취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현철 피고인에 대한 사면의 당부를 놓고 사면 전후의 신문보도를 보면 그 반대의 목소리가 엄청났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대 김일수(金日秀) 교수는 「사면권은 사법권의 실현에 의한 법적 안정성을 행정작용에 의해 수정하는 것이므로 예외적인 최후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사법권이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해야 시대의 요청에 맞을 여건에서도 스스로를 거부할 수 없는 자기논리의 곤궁에 빠져 있을 때 사면은 사법의 진정한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겸손히 투입되는 것이다. 시대의 요청을 결정하는 힘은 국민의 법감정이다. 국민의 공감대 없이 정치적 계산 때문에 사면권을 남용하면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을 손상시키고 법의 권위도 훼손시킨다. 김현철의 사면은 아직 때가 이르다」(동아일보 1999. 7. 30)고 했다.
서울대 한인섭(韓寅燮) 교수는 「김현철의 사면을 앞두고 유전무죄 유권무죄를 강변할 범죄자 집단에게, 그래도 이 나라 법질서는 정의와 형평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승복할까」(중앙일보 1999. 8. 7) 라고 했다.
법은 필요에 의해서 제정되고 개정된다. 대통령에게 절대적인 권한으로 군림하던 사면권도 이를 남용하는 대통령이 있는 바람에 이제는 그 권한의 지속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임광규(林炚圭) 변호사는 대통령의 사면권남용을 비판하면서 「대한민국은 사법권 독립의 법치국가가 아니라 대법원 위에 청와대라는 사법기관이 군림하는 형사 4심제도이며, 법 적용 위에 정치적 고려가 재심하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하고, 이 상태에서 「법의 존엄성을 찾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낚으려는 것과 같다」고 했다.(월간조선 2003.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