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5‧16혁명을 성공시킨 후 1963. 12. 14. 대규모의 일반사면(一般赦免)을 단행한 바 있었다. 일반사면은 대통령령(사면법 제8조)을 으로 대상이 되는 죄의 종류를 정해 범죄인 개개인을 따지지 않고 일괄적으로 실시하는 것인데, 미결인가 기결인가를 묻지 않으며, 검거 여부도 불문한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고 국회의 동의(헌법 제79조 제2항)를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형평성의 논란과 국가형벌권의 권위 추락 등 부작용 때문에 잘 단행하지 않는다.
위의 일반사면령(각령 제1678호)은 1963. 11. 30. 이전에 범한 범죄에 대하여 사면한 것인데, 그 죄의 종류에는 뇌물죄를 비롯하여 위증죄, 무고죄, 사문서위조죄, 상해죄, 협박죄, 사기죄, 횡령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첫 일반사면은 1948. 9. 27. 정부수립을 기념하여 실시한 바 있었고, 1995. 12. 2. 에도 좀 큰 규모의 일반사면령을 발했으나 모두 경미한 범죄에 대한 것이었다.
역대 정권은 특별사면을 주로 활용하여 왔는데, 너무 자주 무분별하게 행사하여 그때마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가장 권력을 오래 잡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유신 이전에 19차례, 유신 이후에 6차례 등 모두 25차례나 사면‧복권을 했다.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정권출범과정이 비정상적이어서 강권정치가 수반되어 시국관련사범을 양산하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80년 9월부터 1988년 2월까지 모두 20차례나 사면을 했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1988년 3월부터 1993년 2월까지 7차례에 걸쳐 특별사면을 했다.
군 출신 대통령의 정부는 그렇다 치고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하여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경력을 자랑하던 대통령들도 사면권 행사에는 왕성한 욕심을 부렸다. 김영삼(金永三) 대통령은 1993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9차례에 걸쳐 4만 3천 8백 5명에 대하여 혜택을 베풀었다. 1995. 8. 15. 광복 50주년의 3,169명에 대한 특별사면 때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아래와 같은 비난성명까지 있었다.
「그 명분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국민대화합을 도모한다는 것이었으나, 우리는 그 대상자 중에 수서‧포철‧상무대‧슬롯머신 비리사건과 원전건설 수뢰사건, 국회돈봉투사건 등 각종 권력형 부패사범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과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가 수립된 후에 온 국민의 성원과 갈채를 받으며 척결했던 권력형 부패사범에 대해 구속영장이나 판결문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사면 복권을 감행한 것은 사법부를 무시한 처사로서 사면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권력의 남용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고위공직자로서 권력을 이용하여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부패 사범까지 용서한다면 2백만 원 내지 3백만 원의 뇌물을 받고 지금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하위공직자들에 대하여 앞으로 사법부가 어떻게 재판을 하고 처벌을 할 수 있겠는가. 또 각종 뇌물의 유혹을 받고 있는 공직자들을 어떻게 다스리며, 권력형 부패를 저지른 고위공직자들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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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면권 남용을 우려하는 1993. 2. 14. 동아일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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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판결이 확정된 전직 대통령 두 분에 대하여 사면을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도 대단했다.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는 「그렇게 요란을 떨던 ‘역사바로세우기’는 온데 간데 없고, 전‧노 사면이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흘러나오고 있다. 당황스러운 일이다. 안했다면 모르되 일단 재판까지 진행하여 장기형을 선고해 놓고 이제 와서 임기 중 사면이라니 그렇다면 전‧노 구속은 장난으로 해 본 것인가. 심지어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도 나온다. 왜 구속을 한 사람이 반드시 그 구속을 해제하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시민과 변호사 1997. 10월호)라고 했고, 박성귀(朴性貴) 변호사는 법조출신의 여당대표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 후보로서 이들의 사면을 요구한데 대하여 강력하게 비난했다.
나도 이 무렵 한몫 거들어 「대통령의 사면권」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글(고시연구 1998. 2월호)을 썼다.
「대통령이 국가원수(國家元首)의 지위에서 행사하는 권한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외국에의 선전포고(宣戰布告), 계엄포고(戒嚴布告), 긴급명령(緊急命令) 등 섬뜩한 권한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마어마한 권한은 재임중 한 번 있을까 말까, 아니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 없는 게 낫다. 그 밖에 영전수여권(榮典授與權), 대법원구성권 등이 있으나 사면권(赦免權)에 비하면 그 실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헌법 제79조).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법권행사에 개입하여 사법부의 판단을 변경하는 권한이다. 사법부가 행한 형사재판을 특별한 제한도 없이 대통령이 뒤집어엎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느 측면에서는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고, 다른 측면에서는 이만저만 허탈한 일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에게 사법부의 판단을 훼손케 하는 권한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의 권위가 추풍낙엽처럼 되고 마는 위험이 있는데도 대통령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너무 극단적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형벌의 집행이 부당하거나 정의에 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대통령에게 그것을 시정하기 위하여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형의 집행을 사실상 면제하는 권한을 준 것이다. 좋게 보면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에게 주는 권한이므로 그 이상의 힘을 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확정판결의 효력을 상실케 할 수 있는 길은 사법절차로서의 재심(再審) 외에 법률의 제정에 의하여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판례(대법원 1965. 3. 25. 선고 63수3 판결)이다. 그러므로 사법권행사를 제약하는 효과를 발생케 하는 수단은 법률의 제정과 사면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결국 사법권은 입법부와 행정부에 의하여 그 권한을 사실상 수정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입법에 의한 사면의 효과는 대통령의 사면권행사가 가능한 이상 실제 기대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