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청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상하다
보전처분에 대한 두 개의 사례를 보았는데, 그 필요하고 편리한 제도가 때로 상대방에게는 생벼락 맞는 것과 같은 타격을 주는 것이다. 가압류결정은 일반적으로 심문(審問)을 거치지 않고 약간의 소명만으로 그것도 담보공탁에 의하여 소명을 대신하는 형식(민사집행법 제280조 제2항)으로 발령된다.
중요한 경우 미리 채무자를 심문(민사소송법 제124조 제2항)하는 수도 있으나, 피압류채권이 예금과 같은 경우 채무자가 예금을 빼돌려 버리면 가압류는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심문절차 없이 바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래도 이 사건의 경우처럼 그 신청원인을 자세히 살펴보기만 해도 전혀 근거 없는 내용임을 알 수 있을 때에는 법원이 좀 더 신중하게 처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보전처분 중에서도 금전채권 이외의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처분, 멸실 등을 동결시키는 가처분의 경우도 가압류와 마찬가지로 심리방법에 관하여 법원에 재량을 주고 있다. 그러나 가처분의 종류에 따라서는 본안소송의 심리와 비슷하게 공격 방어방법이 제출되고 심리가 장기화되는 것이 있다. 임시(臨時)의 지위(地位)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제304조)과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면 앞의 가압류채무자는 그 손해에 대하여 어떤 정도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기로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별로 시원치 않다. 가압류가 집행된 후에 그것이 이유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불법행위가 성립되고, 그 고의‧과실은 추정된다. 즉, 「가압류나 가처분 등 보전처분은 법원의 재판에 의하여 집행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실체 상 청구권이 있는지 여부는 본안소송에 맡기고, 단지 소명에 의하여 채권자의 책임 아래 하는 것이므로, 그 집행 후에 집행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패소 확정되었다면 그 보전처분의 집행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하여는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집행채권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추정되고, 따라서 그 부당한 집행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대법원 1995. 4. 14. 선고 94다6529 판결, 2002. 9. 24. 선고 2000다46184 판결)이다.
이 점은 가압류 채무자에게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손해액이 문제다.
앞의 예금채권 가압류의 경우 가압류채무자는 30억 원의 해방공탁금을 찾기까지 법정이자 상당을 기준으로 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판례(대법원 1995. 12. 12. 선고 95다34095, 34101 판결)는 「가압류채무자가 가압류 청구금액을 공탁하고 그 집행취소 결정을 받았다면, 가압류채무자는 적어도 위 가압류 집행으로 인하여 위 공탁금에 대한 민사 법정이율인 연 5푼 상당의 이자와 공탁금의 이율 상당의 이자와 차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손해는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이므로 가압류채권자가 그러한 특별사정을 알았다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인용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대법원 1994. 9. 9. 선고 93다50116판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가압류의 기입등기가 된 부동산에 대하여 처분이 지연됨으로서 손해를 입었을 때는 어떤가.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사람은 등기를 확인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가압류가 되어 있으면 아무도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매수인은 적어도 대금지급 전에 그 말소를 요구할 것은 당연하다. 결국 가압류의 집행으로 인하여 처분의 지연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압류등기가 경료된 경우에도 채무자는 그 부동산의 이용이나 관리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아니한다(민사집행법 제83조 제2항). 뿐만 아니라 그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기타의 처분행위를 하는데도 지장이 없다. 다만 가압류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는 처분행위의 유효를 주장할 수 없으며, 매수자가 그 등기를 마치게 되면 가압류채권자 이외의 자에 대하여는 그 취득의 효과를 주장할 수 있다.
판례(대법원 2002. 9. 6. 선고 2000다71715 판결)에 의하면, 「가압류는 언제든지 해방공탁에 의하여 그 집행취소를 구할 수 있는 것이므로,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의 집행이 부당하게 유지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가압류는 부동산을 처분함에 있어서 법률상의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다만 가압류가 집행된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자로서는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완전하게 취득하지 못하게 될 위험을 고려하여 당해 부동산의 매수를 꺼리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압류가 집행된 부동산의 처분이 곤란하게 될 사실상의 개연성은 있을 수 있다고 할 것인데, 만일 어떤 부동산에 관한 가압류 집행이 있었고, 그 가압류 집행이 계속된 기간 동안 당해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하였으며, 나아가 주위 부동산들의 거래상황 등에 비추어 그와 같이 부동산을 처분하지 못한 것이 당해 가압류의 집행으로 인하였을 것이라는 점이 입증된다면, 달리 당해 부동산의 처분 지연이 가압류의 집행 이외의 사정 등 가압류채권자 측에 귀책사유 없는 다른 사정으로 인한 것임을 가압류채권자 측에서 주장‧입증하지 못하는 한, 그 가압류와 당해 부동산처분의 지연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가압류가 된 부동산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에 있어서의 법률상의 장애사유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처분금지가처분(處分禁止假處分)이 집행되니 부동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판례(대법원 2001. 11. 13. 선고 2001다26774 판결)는 「부동산에 대하여 처분금지가처분이 집행된 경우 그 처분금지의 효력이 상대적인 효력만을 가지기 때문에 그 부동산의 처분이 법률상 불가능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자로서는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게 될 수 있는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을 감수하여야 하므로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금지가처분의 집행으로 인하여 그 부동산의 처분은 대단히 어려워질 개연성이 있다」고 하면서, 앞의 판례와 마찬가지로 그 가처분과 당해 부동산처분의 지연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하고, 이로 인하여 부동산 소유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가처분 신청인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나아가 그 손해액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즉 「가처분 집행당시 부동산의 소유자가 그 부동산을 사용‧수익하는 경우에는 그 부동산의 처분이 지체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부동산의 환가가 지연됨으로 인한 손해는 그 부동산을 계속 사용‧수익함으로 인한 이익과 상쇄되어 결과적으로 부동산의 처분이 지체됨에 따른 손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그 부동산의 환가가 지연됨으로 인한 손해가 그 부동산을 계속 사용‧수익하는 이익을 초과한다면 이는 특별손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원고들은 분양할 목적으로 토지를 매입하여 연립주택 19세대 분을 신축하였으므로, 이 사건 처분금지가처분으로 인하여 그 중 8세대인 이 사건 부동산의 처분이 지연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기간 동안 이 사건 부동산을 사용‧수익함으로써 처분지연의 손해를 상쇄할 만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 가처분 집행과 원고들의 이 사건 부동산처분 지연과의 사이에 상당인과 관계가 인정되는 이상 원고들이 그 가처분 집행으로 처분이 지연된 기간 동안 입은 손해 중 적어도 이 사건 부동산의 처분대금에 대한 법정이율에 따른 이자 상당의 금액은 통상손해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동산처분의 지연으로 인한 손해는 처분대금에 대한 법정이율에 따른 이자 상당이라는 것인데, 그것마저 조건이 따른다.「부동산의 등기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한 처분금지가 처분이 부당하게 집행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처분금지가 처분은 처분금지에 대하여 상대적 효력만을 가지는 것이어서, 그 집행 후에도 채무자는 당해 부동산에 대한 사용‧수익을 계속하면서 여전히 이를 처분할 수 있으므로, 비록 그 가처분의 존재로 인하여 처분기회를 상실하였거나 그 대가를 제때 지급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당해 부동산을 보유하면서 얻는 점용이익을 초과하지 않는 한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설사 점용이익을 초과하는 불이익을 입어 손해가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는 특별한 사정에 의하여 발생한 손해로서 가처분 채권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을 진다」(대법원 1998. 9. 22. 선고 98다21366 판결, 2001. 1. 19. 선고 2000다58132 판결)는 것이다.
앞의 가압류를 당한 부동산 소유자는 나중에 그 가압류를 취소하는 재판에서 승소했다 하더라도 그 부동산의 처분지연으로 인한 손해는 그 부동산을 계속 사용‧수익하고 있었던 이상 손해배상청구는 어렵다는 결론이다. 부당한 보전처분은 집행채권자에게 고의‧과실이 추정되어 불법행위가 성립된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손해는 없으니 그 배상청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상하다. 물론 재산상의 손해를 인정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그것이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라고 해서 거부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라 하더라도 가압류채권자는 가압류 당시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따라서 타인의 부동산 위에 부당하게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했음이 판명되었다면 그것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는 이상 그로 인하여 부동산 소유자가 입는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는 집행 채권자가 이를 예견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