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주문에 가집행(假執行)의 선고만 있으면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확정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리 집행력을 행사할 수 있다. 승소자로서는 판결의 확정 전에 미리 집행을 할 수 있어 신속한 권리실현을 할 수 있는데다가, 패소자가 강제집행의 지연만을 노려 상소하는 것을 억제한다. 뿐만 아니라 사건 당사자가 최초판결의 가집행선고를 예상하여 최종판결처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로서 심리의 제1심 집중화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문제는 패소자의 처지다. 집행을 당하여 상소로서 다툴 이익이 사라졌다고 할 때 피고로서는 심급제도를 활용할 권리를 잃게 되는 셈이어서 난감하다. 가집행의 선고에 대하여 승소자로 하여금 조속히 권리만족을 받도록 할 것인가, 패소자에게 상소로서 다툴 기회를 충분히 부여할 것인가, 사건에 따라 양 당사자의 이익을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번 가집행의 선고제도와 그 운영에 관한 변천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가 초임법관 시절에는 법원은 가집행의 선고를 매우 신중하게 처리했다. 피고가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금융기관일 때에는 물론이고, 사건의 진상이 모호해서 판결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에도 원칙적으로 가집행선고를 하지 아니하거나, 하더라도 담보부 가집행선고 또는 가집행면제선고(구 민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 현행법 제213조 제2항)를 할 만치 조심스럽게 운영할 때도 있었다.
그때의 민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은 「재산권의 청구에 관한 판결에는 법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때에는 직권 또는 당사자의 신청에 의하여 담보를 제공하게 하거나 제공하게 하지 아니하고 가집행할 수 있음을 선고할 수 있다. 단, 수표 또는 어음에 의한 금원의 청구에 관한 판결에는 담보를 제공하게 하지 아니하고 가집행을 할 수 있음을 선고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가집행을 선고하느냐 아니하느냐는 법원이 재량에 의하여 그 필요성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었다(대법원 1966. 4. 19. 선고 66다406 판결).
그런데 1961. 6. 21. 제정돈 민사소송에관한임시조치법 제3조 제1항은 「재산권상의 청구에 관한 각 심의 판결에는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당사자의 신청의 유무를 불문하고 가집행의 선고를 부하여야 한다」라고 했기 때문에, 이제는 가집행의 선고를 붙이지 아니하는 판결에 붙이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써야 했다. 군사혁명과 더불어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한다는 취지였지만 가집행의 선고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이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국가에 대하여 가집행선고를 붙이는 판결이 이어졌고, 철도역, 우체국 같이 현금을 취급하는 기관이 국고금의 압류 대상이 되어 집행관(執行官)과의 숨바꼭질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7. 3. 3. 위 임시조치법 제3조 제1항에 단서를 신설하여 「다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산권의 청구에 관하여는 제2심판결에 한하여 가집행의 선고를 부할 수 있다」고 개정했다. 이에 대하여 가집행선고를 붙이는 판결이 나갔으나, 대법원은 위 조항에 대하여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1970. 1. 29. 선고 68다1280 판결)했고, 1970. 8. 7. 위 임시조치법 제3조 단서는 「다만, 국가를 상대로 하는 재산권의 청구에 관하여는 가집행의 선고를 부할 수 없다」고 개정하여 아예 국가에 대해서는 판결 확정을 기다려 집행하도록 했다.
국가 또는 전 국민의 권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국고금을 특정채권자가 가집행하게 되어 행정집행상 막대한 혼란이 야기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할 국고금을 특정채권자가 가집행하게 되어 행정집행상 막대한 혼란이 야기될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하여 불특정다수의 국민이 해를 입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었는데, 변호사단체는 국가 내지 행정부의 편의주의적 개악이라고 비난하고, 오히려 국가가 당사자인 경우에 인지첩부(印紙貼付)를 면제하는 특전을 줌으로써 승소할 가망이 없는 사건에 관하여서도 국가가 상소권을 남용하고 있음에 비추어 국가가 당사자인 경우에도 사인(私人)과 동일하게 인지를 첩부케 하여 남소를 억제하는 방안을 강구함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국가 상대 판결의 가집행선고 금지조항은 위 임시조치법이 1981. 3. 1. 폐지된 이후, 동일한 내용으로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 제6조 제1항 단서에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1989. 1. 25. 헌법재판소의 결정(88헌가7)에 의하여 위헌으로 판정되었다.
「가집행의 선고는 불필요한 상소권의 남용을 억제하고 신속한 권리실현을 위하여 둔 제도이지 집행불능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제도가 아니므로, 국가에 대하여 집행이 불가능하게 될 염려가 없다고 해서 가집행 선고의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가집행으로 인한 국가회계질서 문란의 우려는 국가 스스로 얼마든지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으며, 가집행 후 상소심에서 판결이 번복되었을 경우 원상회복이 어렵게 될 경우를 예상할 수 있으나,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피고일 경우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가집행제도의 일반적이니 문제라 할 것이어서, 이러한 문제는 법원이 판결을 함에 있어 가집행을 붙이지 아니할 상당성의 유무를 신중히 판단하고 민사소송법 제199조 제1항에 의한 담보제공명령이나 같은 법조 제2항에 의한 가집행면제제도를 적절하게 운용하며 또, 국가로서도 민사소송법 제473조, 제474조에 의하여 법원에 신청하여 가집행 정지명령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국가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가집행선고를 금지할 이유가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위 특례법의 단서규정은 삭제됨과 동시에 1990. 1. 13.의 민사소송법 개정이 있었고, 2002. 7. 1.부터 시행된 민사소송법의 개정으로 제213조 제1항 본문은 「재산권의 청구에 관한 판결은 가집행의 선고를 붙이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직권으로 담보를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아니하고 가집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선고하여야 한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반드시 가집행 선고를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고려하면 종전의 관행대로 가집행선고 여부를 법원의 재량에 의하여 결정하던 것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법원이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가집행선고를 얼마든지 붙이지 아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실무에서는 제1심도 가집행선고를 마구잡이로 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재산권상의 청구에 관한 판결에 가집행의 선고가 없는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가집행선고를 붙이지 아니하면 판결에 자신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상소심의 심판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급심 판결에 무분별로 집행력을 부여해버린다는 것은 패소자의 처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 조치이다. 특히 쟁점이 복잡하고 예민하여 최종심까지 가서 결판을 낼 성질의 것이거나, 소송물 가액이 큰 재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무조건적인 가집행선고는 이런 경우 피고에게 너무 잔인한 짓이다. 원고가 무자력(無資力)이면 판결이 선고되기 바쁘게 가집행선고를 활용하여 권리를 실현해 버리려는 채비에 들어가는 것은 뻔하다.
채무자로서는 그냥 집행을 당해버린다면 상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상소심에서 판결이 번복되면 가집행선고는 즉시 효력을 잃지만(민사소송법 제215조 제1항), 기왕에 소급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 이전에 이미 집행이 끝난 것은 효력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아니한다. 본인판결을 바꾸는 경우에는 법원은 피고의 신청에 ᄄᆞ라 그 판결에서 가집행의 선고에 따라 지급한 물건을 돌려줄 것과, 가집행으로 말미암은 손해를 배상할 것을 원고에게 명하여야 하지만(민사소송법 제215조 제2항), 서둘러 강제집행을 한 원고가 가져간 금품을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다. 결국 상소를 하여 싸울 이익이 없게 되는 위험이 있으므로 피고는 부지런히 집행을 막는데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안군(鎭安郡)을 상대로 석재대금을 달라고 소를 제기했다. 제1심에서는 원고가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번복되어 피고는 금 708,942,000원과 판결선고 다음날부터 연 25%의 비율에 의한 금원의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받았다. 원고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영세업자인데 가집행의 선고가 붙은 판결에 의하여 피고의 예금채권에 대한 강제집행에 착수했다. 다행히 대법원에서 강제집행정지결정이 내려 아슬아슬하게 숨을 돌리긴 했다. 그리고 5개월 뒤 그 고등법원 판결은 파기되어 군은 피해를 모면했다.
항소심판결을 보면 1997년 3월경 피고가 원고에게 공사에 필요한 석재를 빌려줄 것을 부탁하면서 나중에 조정석으로 대체해 주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는데, 대법원은 「구 지방재정법 제63조에 의하여 준용되는 국가를당사자로하는계약에관한법률 제7조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일반경쟁에 부쳐야 하고 다만, 계약의 목적‧성질‧규모 등을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하거나 참가자를 지명하여 경쟁에 부치거나 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11조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계약담당공무원은 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계약의 목적‧계약금액‧이행기간‧계약보증금‧위험부담‧지체상금 기타 필요한 사항을 명백히 기재한 계약서를 작성하여야 하며, 이 경우 그 담당공무원과 계약상대자가 계약서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함으로써 계약이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위 각 규정의 취지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사경제의 주체로서 사인과 사법상의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는 위 법령에 따른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등 그 요건과 절차를 이행하여야 할 것이고, 설사 지방자치단체와 사인 간에 사법상의 계약 또는 예약이 체결되었다 하더라도 위 법령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계약 또는 예약은 그 효력이 없다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고가 피고와 사이에 체결하였다고 주장하는 이 사건 약정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임이 명백한데도, 원‧피고사이에 이 사건 약정에 관하여 위 법령에 따른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등 위 법령상의 요건과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이 사건 약정은 계약으로서의 효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 약정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에는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하는 이유를 들어 파기한 것이다.
항소심의 패소판결과 더불어 붙여진 가집행선고로 인하여 시골의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애간장을 태운 사연을 판사님들이야 알 리가 없을 것이지만, 파기이유의 법률판단을 보고는 무엇인가 느낌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군이 개인과 7억이 넘는 가액의 물건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는 원고의 주장사실을 인정하면서, 계약일자도 확실하지 않는데다가 그것도 구두로 했다는 것이니 상식으로 생각해도 이런 매매계약은 사인(私人) 사이에도 있기 힘든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정도의 흠을 지닌 판결은 아니었지만 시중은행이 피고가 되니 사건에서 항소심의 패소판결로 인하여 아무 자력이 없는 사람에 의하여 강제집행에 들어가기 직전 가까스로 집행정지를 받아, 위의 사례처럼 상고심에서 항소심판결을 시정하여 낭패를 모면한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급심판결이 가집행선고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개인의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승소판결에 가집행선고가 붙어도 피고가 자력만 있으면 다급하게 강제집행에 들어가는 일이 없고, 오히려 피고가 원고에게 돈을 받아 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어마어마한 이자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가집행선고가 무차별로 운영되는 한 자신감 넘치는 판결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자력인 원고일수록 가집행선고를 최대한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폐단은 여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