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커다란 대립은 헌법재판소의 변형결정(變形決定)의 일종인 한정위헌(限定違憲)결정이 발단이었다. 1997년 연말, IMF 한파로 모두 우울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세상에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다니 그런 일도 있나. 재판에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놀랐을 것이다.
대법원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은 헌법재판소의 일방적인 게임으로 끝났지만, 이번 일은 쌍방이 치고받는 형상이어서 간단히 막을 내릴 싸움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언론은 일제히 그 사실을 보도하고, 「헌재와 대법원의 갈등」(중앙일보), 「헌재와 대법원의 영역다툼」(동아일보), 「헌재와 대법원의 정면충돌」(한겨레) 등의 제목으로 사설을 썼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 이런 놀라운 사태가 벌어졌는가, 앞으로 돌아가 한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사건은, 양도소득세(讓渡所得稅)의 양도가액에 관한 구 소득세법 제23조 제4항 본문 및 취득가액에 관한 제45조 제1항 제1호 본문에 각각 규정된 기준시가(基準時價)에 의하지 아니하고 위 조항의 단서에 규정된 실지거래가액(實地去來價額)에 의하여 양도차익을 산정함으로써 이루어진 양도소득세부과처분의 적법 여부가 문제되었다.
헌법재판소는 1995. 11. 30. 선고 94헌바30, 95헌바13 결정에서, 위 소득세법 제23조 제4항 단서, 제45조 제1항 제1호 단서는 「실지거래가액에 의할 경우를 그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세액이 그 본문의 기준시가에 의한 세액을 초과하는 경우까지를 포함하여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위 각 조항 단서 및 그 위임에 따라 실지거래가액에 의하여 양도차익을 산정할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구 소득세법시행령 제170조 제4항 제2호가 위 헌법재판소 결정의 선고로 인하여 효력이 상실되는지 여부도 문제되었는데, 위 결정은 위 시행령의 규정내용이 위임취지에 합치되는 규정도 있지만 그 위임취지를 잘못 해석하여 위임조항이 설정한 위임의 한계를 벗어나 기준시가에 의한 것보다 납세의무자에게 불리할 경우에도 실지거래가액에 의하여 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하면서, 「만약 그와 같은 해석을 용인하면 이 사건 위임조항은 재산권이나 납세의무와 같은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 및 기본의무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 내지 본질적인 내용에 관한 사항인 양도소득세에 과세표준산정방법을 대통령령에 아무런 범위를 정하지 않고 백지 위임한 것이 되어 헌법상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반되고, 행정부가 그때 그때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대통령령의 개정으로 양도소득세 과세표준의 산정방법을 바꾸어 납세의무자의 조세부담을 마음대로 증가시킬 수도 없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현저히 저해하게 되므로 조세법률주의에도 위반되는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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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1997년 말 헌법재판소가 대법워너 판결을 취소하는 사건으로 촉발된 갈등에 대한 동아일보의 사설 (1997. 12.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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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형식의 변형결정은 주로 독일 헌법재판소의 예에 따른 것인데, 여기에는 한정위헌결정(限定違憲決定), 한정합헌결정(限定合憲決定), 또는 헌법불합치결정(憲法不合致決定) 등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제정된 법률의 합헌 또는 위헌만을 선언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것과 법률생활의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의도로 위헌결정을 하지 않고 일정기간 그 법률의 효력을 지속시키거나 개정을 촉구하거나 한정적으로 합헌임을 선언하는 등의 변형결정을 하여야 할 경우가 생긴다. 실정법의 근거는 없지만 헌법 현실적인 필요의 산물(産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형결정을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반대의 견해에 의하면, 헌법재판소법 제45조 제1항의 문언에 비추어 볼 때 헌법재판소는 제정된 법률이 위헌인지, 합헌인지를 분명히 결정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위헌이라고 결정하면 그에 대한 효력은 법 제47조 제2항에서 정해진 대로 그 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효력을 상실하고, 다만 형벌에 관한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상실하는 것이지, 헌법재판소가 그 효력을 변경하거나 그 효력발생을 유보시킬 수 없는 것이며, 위 법 제47조 제1항의 문언에 따르면 위헌결정에만 기속력(羈束力)을 부여했고, 독일 등에서 채택되는 형식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법제와 맞지 않는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고 있다(1989. 9. 8. 선고 88헌가6 결정의 변정수(卞禎洙), 김진우(金鎭佑) 재판관의 반대의견 참조).
문제의 사태는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 한정위헌결정에 반기(半旗)를 든 것에서부터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대법원 1996. 4. 9. 선고 95누11405판결은 한정위헌결정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결연히 전개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의 그 결정에 불구하고 법률이나 법률 조항은 그 문언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그냥 존속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결정은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의미, 내용과 그 적용범위를 정하는 법률해석이라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당해 법률 또는 법률조항의 의미‧내용과 적용범위가 어떠한 것인지를 정하는 권한 곧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바로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이루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하는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우리 헌법에 규정된 국가권력분립구조의 기본원리와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규정한 헌법의 정신으로부터 당연히 도출되는 이치로서, 만일 법원의 이러한 권한이 훼손된다면 이는 위에서 본 헌법 제101조는 물론이요, 어떤 국가기관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사법권 독립을 보장한 헌법 제103조에도 위반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정위헌결정에 표현되어 있는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에 관한 견해는 법률의 의미‧내용과 그 적용범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견해를 일응 표명한데 불과하여 이와 같이 법원에 전속되어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에 대하여 어떠한 영향을 미치거나 기속력도 가질 수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구 소득세법 제23조 제4항 단서 및 제45조 제1항 제1호 단서가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사항의 범위를 명시적으로 특정하지는 아니했다 하더라도 위 조항에 있어서의 내재적인 위임의 범위나 한계는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구 소득세법상 종전의 실지거래가액 과세원칙으로부터 기준시가 과세원칙으로 개정된 입법동기와 연혁, 그리고 다시 기준시가 과세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실지거래가액에 따라 과세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게 된 입법목적을 두루 고려하여 보더라도, 위 각 조항 단서가 기준시가에 의한 과세보다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과세가 납세자에게 유리한 경우만을 한정하여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이라는 해석에는 도저히 이를 수 없다고 하고, 구 소득세법시행령 제170조 제4항 제2호도 헌법상의 조세법률주의(租稅法律主義)와 포괄위임금지원칙(包括委任禁止原則)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유효한 규정이라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