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에 관하여 그 기속력(羈束力)을 두고 대법원과의 사이에 갈등을 빚은 사건을 하나 더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최고재판기관끼리의 어려운 법리논쟁이지만 일반사람들에게는 기본권을 담보로 벌이는 위상경쟁(位相競爭)이 아닌가 하는 비판을 받는다.
1986. 11. 12. 육군중사 갑이 그의 오토바이에 같은 부대소속 육군중사 을을 태우고 다음날의 훈련에 대비하여 훈련지역 일대를 살피고 돌아오다가 민간인 병이 운전하는 승용차와 충돌하여 을로 하여금 전치 8주의 부상을 입게 했다. 사고는 갑과 병의 과실이 경합하여 일어난 것이고, 을이 병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6천여 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자, 원고보험회사는 병과의 보험계약에 따라 위의 배상금을 지급했다.
그 후 원고는 국가를 상대로 직무집행 중 갑의 과실이 경합하여 사고가 일어난 만큼 그 과실 비율에 따른 부담부분의 범위 내에서 구상권(求償權)이 있다하여 이를 행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94. 5. 27. 94다6741 판결로써,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에 의하면, 군인, 군무원 등이 직무집행과 관련하는 행위 등으로 인하여 전사‧순직 또는 공상을 입은 경우에 따른 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재해보상금, 유족연금, 상이연금 등의 보상을 지급받을 수 있을 때에는 국가배상법 또는 민법의 규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직접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음은 물론 국가와 공동불법행위책임이 있는 자가 그 배상채무를 이행하였음을 이유로 국가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달아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원심판결을 지지했다.
원고는 헌법소원심판의 구조를 요구했다. 원고는 사건이 항소심에 계속 중인 때에 그 사건에서 적용여부가 문제된 국가배상법의 위 규정에 대하여 위헌심판의 제청신청을 했다가 그 신청이 기각되자, 1993. 6. 9. 이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1994. 12. 29. 선고 93헌바21 결정으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한 부분은 일반 국민이 직무집행 중인 군인과의 공동불법행위로 직무집행 중인 다른 군인에게 공상을 입혀 그 피해자에게 공동의 불법행위로 직무집행 중인 다른 군인에게 공상을 입혀 그 피해자에게 공동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한 다음 공동불법행위자인 군인의 부담부분에 관하여 국가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원고는 대법원판결의 선고에 의하여 그 소송사건이 확정된 후 헌법재판소가 원고의 헌법소원을 인용하여 위와 같이 위헌결정을 선고했으므로 위의 대법원판결에 헌법재판소법 제75조 제7항에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재심(再審)의 소를 제기했다. 이렇게 되어 어쩌면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비위를 건드릴지도 모르는 판결을 내려야 하게 된 것이다.
이 재심사건이 계속되어 있는 동안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양도소득세 부과처분의 근거법률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결정(1995. 11. 30.).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1996. 4. 9.) 헌법재판소의 대법원판결 취소결정(1997. 12. 24.) 등 일련의 살벌하고 위태위태한 재판들이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을 하기가 거북했던지 5년이나 끌다가 2001. 4. 27. 선고 95재다14판결에 의하여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이 판결은 결론적으로 주문에서 법률조항의 해석기준을 제시함에 그치는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에 전속되어 있는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에 대하여 기속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재심사유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앞서의 대법원이 제시한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에 관한 견해를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판결이유는 「만일 한정위헌결정에 기속력을 부여한다면, 법원이 구체적 분쟁사건을 처리하는 사법권의 행사에 관하여 헌법재판소의 법률해석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되어 법원에 속하는 법률의 해석‧적용 권한이 침해되고, 또한 헌법재판소가 헌법 제101조에 규정된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이 아니면서 사실상 최고법원의 지위에 들어서는 결과가 됨으로써, 이는 사법권을 법원에 전속시킴과 아울러 사법권의 독립성과 대법원의 최고법원성을 선언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어 대법원판결을 취소한 앞서의 결정을 나무라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면서, 그 당연한 귀결로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할 경우의 심판내용 및 후속절차 등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바, 이 점에서도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재판을 취소하는 경우 사건을 법원에 환송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독일의 경우와는 제도상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참고로, 독일의 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법원과는 별도의 헌법기관이 아니라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중의 최고법원으로 되어 있어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하정위헌결정이라도 그에 기속력을 부여하거나 하급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여 법원의 사법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하지 아니한다. 반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고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서로 독립적이고 동등한 헌법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스트리아의 경우 그 헌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하여만 기속력을 부여하고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스스로 법률 또는 법률조항에 대하여 그 문언을 그대로 둔 채 합헌적 해석에 의하여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결정을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어 두 헌법기관의 대립양상은 재연(再燃)되었는데, 법조계에서는 한 번 더 대법원판결의 최소라는 극약처방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이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가 취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안도는 되지만 글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