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어떤 쟁점에 관하여 대법원의 해석이 있는데도, 헌법재판소가 같은 취지이면서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사건이 발생했고, 이에 대하여 두 기관의 입장을 대변하는 법관, 교수끼리 법률신문 지면(2002. 8. 26.부터 2002. 10. 21.까지)을 빌려 논쟁을 벌였다. 여기서도 한정위헌과 같은 유형의 결정이 헌법재판제도에 당연히 내재하는 필수적인 것인지의 여부가 문제되었다.
헌법재판소는 2002. 7. 18.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의 위헌여부에 관한 2002헌바57 헌법소원사건에서 위 조항은 퇴직 후의 사유를 적용하여 공무원연금법상의 급여를 제한하는 범위 내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즉,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급여제한의 사유가 퇴직 후에 범한 죄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의 적정성을 결하고, 공무원이었던 사람에게 입법목적에 비추어 과도한 피해를 주어 법익균형성을 잃는 것으로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재산권의 본질적 재용을 침해하는 것이고, 위 법률조항은 급여청구권을 제한 내지 박탈하는 부담적 성격을 갖고 있는 규정이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관하여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인데도, 법규정이 불명확하여 법집행당국의 자의적인 법해석과 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공무원직에서 퇴직 후 반국가적 범죄를 범한 사람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으로서 헌법상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하는 여러 가지 위헌적인 요소를 지적했다.
그런데 이에 앞서 대법원은 2002. 5. 31. 퇴직금여환수처분취소 사건(2000두4541)에서, 위 제64조 제3항은 공무원이 재직 중 그에 열거된 죄를 범하고 그로 인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 한하여 퇴직급여를 지급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으로서, 퇴직 후 그와 같은 죄를 범한 경우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확정된다 하더라도 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해석하여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퇴직급여 환수처분을 취소하는 원고승소판결을 선고했던 것인데, 헌법재판소가 위와 같이 뒤이어 헌법소원사건을 처리하면서 실질적으로 대법원의 해석과 같은 취지에서 한정위헌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소원심판 사건은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1993. 8. 1. 퇴직한 후 1998년 11월까지 퇴직급여로 연금과 수당을 지급받았는데, 청구인이 1997. 9. 10. 경 남파간첩과 회합했다는 범죄로 이듬해 징역 2년의 형을 선고받아 확정되자,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이미 지급된 퇴직급여를 반환하라는 처분을 했고, 청구인은 그 처분에 불복했으나 제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으나 기각되어 헌법소원을 청구했던 것이다. 본안사건도 항소기각의 판결이 선고되었으나 상고를 하지 아니하여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
이명웅(李明雄) 헌법연구관과 남복현(南福鉉) 교수는 「헌법재판에서는 어떤 법률규정이 복수의 규범해석가능성들, 즉 일부는 위헌적인 결과를, 일부는 합헌적인 결과를 낳는 적용영역이나 해석들이 있다면, 합헌적인 적용‧해석을 제거하여 법률규정 자체의 효력을 존속시켜야 할 요청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경우 단순합헌을 선고한다면 상위규범에 어긋나는 위헌적인 적용‧해석을 살리고 위헌적인 적용‧해석을 제거하여 법률규정 자체의 효력을 존속시켜야 할 요청이 매우 강하다.
이러한 경우 단순합헌을 선고한다면 상위규범에 어긋나는 위헌적인 적용‧해석이 존속하게 되고, 단순위헌을 선고하면 법률조항을 하나의 부분적인 요소로 인하여 전체를 위헌으로 폐지시키는 결과가 되므로, 법적 혼란과 공백상태가 초래된다. 그러므로 규범통제제도에 있어서 한정위헌‧한정합헌과 같은 결정 유형은 헌법재판기관이 재량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헌법재판제도에 당연히 내제하는 필수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한정위헌결정을 변호했다.
그리고 최완주(崔完柱) 부장판사와 홍기태(洪起台) 재판연구관은 「공무원연금법 제64조 제3항에 대한 대법원의 해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한, 위 조항에는 아무런 위헌적 요소가 없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합헌선언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함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굳이 한정위헌결정을 한 이유는, 당해 사건이 이미 확정된 상태여서 합헌결정을 하면 청구인이 구제 받을 길이 없게 되자, 한정위헌결정을 함으로써 재심을 통한 구제의 길을 열어주려 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반박했다.
여벌로 하는 말
이제 오늘날까지의 두 헌법기관의 충돌양상을 살펴보았다. 그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재산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생긴 것은 물론이나, 무엇보다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적인 위상 다툼이란 인상을 주게 될 때 국가적인 체면까지 문제된다. 대법원이야 그렇다 치고 헌법재판소도 일천한 역사에 비해서 얼마나 빛나는 업적을 남겼는가. 독립된 헌법재판기관이 없는 나라에서 우리 헌법재판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연구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필경 두 기관의 이런 갈등문제에 관하여서도 해결책을 모색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외국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연구자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씁쓸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두 기관이 앞으로 서로의 기능과 역할을 존중하면서 잘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말은 옳지만 주례사(主禮辭) 같은 이야기에 지나지 아니한다. 생각해 보라.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한 조치가 보통 사건인가. 어찌된 이론적 근거이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상위기관(上位機關)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잠복되어 있다.
일반사람들은 대법원에서 종국적으로 패소한 후 혹시 헌법재판소로부터의 구제의 길이 없는지 변호사에게 묻기도 한다. 대법원판결이 취소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실패한 상고인은 너도나도 헌법소원의 길을 모색할 것이고, 사법최고기관의 위신과 권위는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헌법개정(憲法改正)일 수밖에 없다. 간단한 말로 헌법을 개정하여 미국이나 일본처럼 최고법원 하나로 통합하거나, 독일처럼 헌법재판소를 대법원의 상위에 두든가 하지 않는 한, 지금의 형태로는 그 마찰을 해소할 길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