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거주하는 원고는 그 소유의 대지 330 제곱미터에 관하여 어떤 건설회사를 상대로 제주지방법원에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제1심에서 원고가 패소했으나 항소심에서 결론이 뒤바뀌어 원고가 승소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원심판결이 파기되어 사건은 다시 제주지방법원 합의부에 환송되었고, 환송 후 항소심에서는 원고의 청구를 배척한 제1심판결을 지지하여 항소를 기각했다. 한 번 더 상고장(上告狀)을 제출한 다음 원고의 부인은 기록보따리를 들고 나를 찾아와 상고이유서의 작성을 부탁했다. 요행으로 대법원은 또 다시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원고의 뜻을 관철케 했다. 위의 부동산은 원고의 유일한 재산이었는데 도박꾼에게 담보로 잡혔다가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이었다.
원고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학력의 소유자로서 택시 운전도 해보고 식당도 경영했으나 몇 년 전부터 당뇨병이 있어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지 못하고 요양하는 방편으로 낚시를 하면서 날을 보내고 있었다. 1990년 12월부터 원고는 낚시점을 드나들면서 낚시동호인들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갑, 을 형제와 병, 정 등 노름꾼들이 있어 이들로부터 포커, 고스톱, 훌라 등의 노름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만 원 내외의 용돈을 가지고 노름을 해 왔는데, 갑, 을 형제와 그 일당들은 모두 도박 전과자였고, 이들은 지능이 다소 모자란 원고가 이 사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그 기회에 재산을 가로채기로 작당했다.
이듬 해 8. 20. 갑은 그의 집에서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원고를 유인하여 그날 오후 2시부터 일당들과 함께 새벽 3시까지 포커를 했는데 원고는 초반에 용돈 10만 원을 잃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갑이 돈을 빌려줄 터이니 판을 키워서 한판 해보라고 권유했고,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로 부추겼다. 이에 마음이 동한 원고는 갑에게 2천만 원의 차용증서(借用證書)를 써주고, 100만 원 권 자기앞수표 1매, 10만 원 권 자기앞수표 10매, 200만 원 내지 500만 원 권 가계수표(家計手票)를 받아 노름을 계속했으나 끝내 모두 날리고 말았다.
한 달 뒤 갑의 집에서 도박판이 벌어졌는데, 잃은 돈 본전 찾기가 소원이었지만 밑천이 없어 풀이 죽어 있는 원고에게 갑, 을 형제가 집요하게 접근했다. 돈을 빌려줄 터이니 크게 한판 해 보라, 그렇지 않으면 차용증의 빌린 돈을 즉시 갚아야 한다고 몰아 세웠다. 원고는 갑으로부터 100만 원 권 자기앞수표 10매를 비롯하여 200만 원 내지 1,000만 원 권 가계수표 합계 6,300만 원을 빌려 일당들과 함께 포커도박을 했다. 노름판에서 기능도 신통찮은 것이 명백한데도 운과 실력이 어울려 스스로 꼭 딸 것이라고 믿는 상대가 가장 물 좋은 고객이라고 한다.
원고는 노름꾼 일당에게 간단한 먹잇감이었던 것이고, 결과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였다. 갑은 원고에게 제의하기를 오늘은 운이 좋지 않으니 이만 끝내고, 1억 원짜리 차용증을 작성해주면 빚 8,300만 원을 제한 1,700만 원을 빌려줄 터이니 그 돈으로 내일 한번 벌려보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일당들이 모여 다시 노름을 했는데, 그날 원고는 놀랍게도 3,300만 원을 따는 개가를 올렸다. 갑은 원고가 소지한 5,000만 원 상당의 수표 등을 자기에게 맡기고 내일 다시 도박을 할 것을 종용했다. 이런 추세로 잘 하면 노름빚으로 건넨 차용증도 회수하고 또 누가 아나 뭉칫돈도 만질 수 있을지 이런 생각으로 다음 날 5,000만 원의 밑천으로 도박에 끼어들었으나 허무하게도 일당에게 모두 날렸다. 전 날 딴 것은 미끼이지 결코 실력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원고는 결국 네 번의 도박으로 갑에게 1억 원의 빚을 지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런데 갑 일당의 목표는 원고소유의 부동산을 가로채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원고로 하여금 더 많은 채무를 지게 하여야 했다. 그래서 40대의 어떤 남자를 끌어들여 좀 더 고도의 수법으로 사기도박판을 벌이기로 공모하고 장소는 낚시하는 추자도로 정했다. 1991. 10. 30. 원고와 도박꾼 일당은 낚시를 가는 모양을 갖추어 여객선을 타고 가는데, 배 안에서 어떤 사람이 일당에게 “추자가 초행길인데 일행에 합류시켜 주면 경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접근하여 승낙을 받아 함께 민박집에서 묵게 되었다.
둘째 날 저녁, 심심하니 점 당 500원짜리 고스톱이나 치자는 갑의 제의로 판이 벌어졌다. 원고는 가지고 있던 밑천 15만 원을 잃었다. 갑은 원고에게 전번처럼 돈을 빌려줄 터이니 크게 한판해서 본전을 찾든지 아니면 빚진 돈을 갚든지 하라고 다그쳤다. 고스톱 도박은 편을 셋으로 갈라 하기로 하여 원고는 병과, 을은 정과 조를 이루되, 한 사람은 도박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금관리를 하여 손익(損益)을 반분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원고와 정, 그리고 처음 만난 남자 셋이서 화투를 쳤는데, 갑은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고 옆에서 판을 키울 것을 계속 종용하는 일과 자기앞수표와 가계수표를 빌려주는 일만 했다. 처음에는 점 당 500원으로부터 시작하여 2,000원, 10,000원, 50,000원까지 오르다가 새벽녘에는 10만 원까지 올라가 한판에 승패의 금액이 1억 원이 넘는 현상이 벌어졌다. 원고의 짝이 된 병은 원고의 옆에서 몰래 화투의 패를 상대방에게 교묘히 알려주었던 스파이였고, 상대방 두 사람은 서로 내통하여 패를 던지는 판인데 어리숭한 원고가 그것을 눈치 챌 리가 없으니 타짜꾼들에게 원고의 돈 먹기는 식은 죽 먹기와 같았다.
결국 이름도 모르는 남자가 4억 1,000만 원을 따고, 을과 정조가 나머지 2,000만 원을 땄으며, 원고와 병조가 그 전액을 털렸다. 위 남자는 원고에게 개평으로 2,000만 원을 돌려주어 4억 1,000만 원을 잃은 꼴이 되었는데, 원고와 병은 각자 2억 500만 원의 손실분담금을 갑에 대한 빚으로 남게 된 것이었다. 그 돈은 모두 갑이 빌려준 것으로서 약간의 자기앞수표를 제외하고는 모두 액면금 1,000만 원 내지 5,000만 원의 가계수표였고, 그것은 나중에 갑에게 반환되고, 적은 금액으로 정정되어 지금 제시되기도 했다. 도박판에서 엄청나게 딴 그 남자는 갑의 가계수표를 거의 다 가져갔으면서도 한 번도 그의 손에 의한 지급 제시가 없었음이 밝혀졌고, 그 후로 다시 모습을 나타낸 일도 없었다.
위에서 1억 원이 넘는 판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뒤에 경찰에서 조사한 바로는 점 당 10만 원짜리로서, 원고는 세칭 「피박, 광박, 쓰리고, 나가리, 흔들고, 멍텅구리」를 당해 38점이 난 한 판에서 무려 1억 2,160만 원을 잃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를 「따따따따따 블」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기성도박으로 인하여 원고는 갑에게 2억 9,500만 원의 채무를 지게 되었고, 그 후 원고로부터 위 부동산의 처분 및 그 대가의 수령과 등기에 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취지의 문서를 교부받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갑은 무라는 사람에게 위 부동산을 2억 3,000만 원에 팔고, 원고가 한꺼번에 도박채무를 갚았다는 이유로 나머지 6,500만 원을 탕감해 주는 적선까지 베풀었다. 무는 이를 피고회사에게 되팔았고, 갑과 무는 원고와 피고회사 사이에 직접 매매계약이 있은 것처럼 서류를 꾸며 1992. 3. 30. 피고회사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던 것이다.
원고의 부인이 남편의 도박행각을 눈치 채고 혹시나 하여 등기부를 열람하고 나서는 까무러칠 뻔했다. 남편으로부터 자초지종 고백을 듣고 사기도박임을 확신하고는 남편의 희생을 각오하고 그 낚시동호회의 노름꾼 일당의 신분을 알아내어 경찰에 고발했다.
이때부터 도박으로 빼앗긴 재산을 찾기 위한 부인의 눈부신 활동이 전개되는데, 형사사건과 함께 7년에 걸친 민사법정의 투쟁이 병행되는 것이다. 부인의 고발로 갑, 을 형제를 비롯하여 그들 상당수가 구속되고 상습도박(常習賭博)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는데, 원고도 비록 재물을 잃었으나 상습도박의 죄책을 면할 길이 없어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았다. 도박꾼 일당에 대한 사기도박(詐欺賭博)에 대해서는 뒤에 보는 바와 같이 민사재판에서는 그 사실이 인정되었으나, 엄격한 증거를 필요로 하는 형사재판에서는 심증만으로 어려웠던지 그냥 상습도박죄로 끝나고 만 것이었다.
만일 사기도박죄가 성립되었다면 원고는 사기의 피해자로만 남게 되고 도박죄로 처벌받지는 아니했을 것이다. 판례(대법원 1960. 11. 16. 선고 4293형상743 판결)에 의하면, 「도박당사자의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 승패의 수를 지배하는 경우에는 사기죄만이 성립되고 도박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사기도박의 경우에는 도박에 있어서 필요한 우연성(偶然性)이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원고의 부인은 피고회사를 상대로 하여 남편명의로 있던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이제부터 억척같은 아내가 과연 법을 통하여 남편이 저지른 손재(損財)를 회복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불법원인급여(不法原因給與)와 토지거래허가(土地去來許可)에 관한 간단치 않는 법률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사건이기도 한데 이를 한번 따라가 보기로 한다.
원고는 갑에게 위 부동산의 처분권한을 위임하고 그 처분 대가로써 도박채무의 변제에 갈음하기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무효이고, 이에 터 잡아 이루어진 갑과 무 사이의 매매계약은 물론 무와 피고회사 사이의 매매계약 역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갑에 대하여 위 부동산의 처분권을 양도한 것은 민법 제746조 즉,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해당하여 부동산을 도로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다시 원고는 가사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갑은 사기도박에 의하여 원고로부터 부동산의 처분권을 취득한 것이므로 위 조문 단서 소정의 「불법의 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본문을 적용할 수 없다고 재항변했다. 첫 라운드의 공방전은 이런 법률상의 쟁점이 관건이었다.
제1심(제주지방법원 1993. 8. 17. 선고 92가단16058 판결)은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제주지방법원 1994. 7. 15. 선고 93나1152 판결)은 결론을 달리하여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원고의 갑에 대한 위 부동산의 처분권부여행위가 도박채무의 변제를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위 도박은 갑의 주도로 원고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하여 이루어진 사기도박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급여자인 원고에 비하여 수익자(受益者)인 갑에게 보다 큰 불법성이 인정되므로, 이와 같은 경우에는 불법의 원인은 수익자에게만 존재한다고 보아 원고가 갑에 대한 처분권부여행위의 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해석함이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