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결은 피고의 상고에 의하여 대법원에서 1995. 7. 14. 선고 94다40147 판결로 파기(破棄)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원고와 갑 사이의 도박채무 부담행위 및 그 변제약정이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 무효라 하더라도 그 무효는 위 변제약정의 이행행위에 해당하는 이 사건 부동산을 무에게 처분한 대금으로 도박채무의 변제에 충당한 부분에 한정된다 할 것이고, 위 변제약정의 이행행위에 직접 해당하지 아니하는 부동산처분에 관한 대리권을 갑에게 수여한 행위부분까지 무효라고 볼 수는 없으므로, 위와 같은 사정을 알지 못하는 거래 상대방이 무가 원고로부터 그 대리인인 갑을 통하여 위 부동산을 매수한 행위까지 무효가 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환송(還送)한 것이었다.
순전히 법률판단의 차이로 인하여 제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다르게 되고, 상고심 또한 다른 견해에 서서 원심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그리고 항소심의 법률적 견해는 대법원 1999. 9. 17 선고 98도2036 판결과 일치하는 것으로써 그 판단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 판단의 각도가 비틀어졌다는 이유로 상고심의 지적을 받은 것이다.
사건이 환송되어 항소심에서 다시 심리(審理)를 하게 되었는데, 원고는 지난번 재판에서 판단을 받지 못한 여러 가지 주장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제주지방법원 1996. 5. 2. 선고 95나887 판결은 제1심판결대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갑이 원고로 하여금 사기도박에 의한 도박채무를 보담하게 하고 이 사건 부동산의 처분대금에서 그 채권을 변제받기로 원고와 약정한 것은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하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원고가 갑에게 위 부동산의 처분권을 위임한 것은 궁극적으로는 이를 처분하여 그 대금에서 도박채무를 변제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서는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하고, 현저히 공정을 잃은 행위로서 무효라고 하는 주장에 대하여서도, 「대리권수여행위는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로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를 가리켜 급부와 반대급부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불공정행위에 속한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당시 궁박, 경솔, 무경험의 상태에 있었다거나 갑이 이를 이용하여 대리권을 수여받은 것이라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하여 배척했다.
그리고 원고로부터 무를 거쳐 피고에게 전전매도된 것임에도 원고와의 중간생략등기(中間省略登記)의 합의 없이 곧바로 피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으므로 그 등기는 무효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는 「전전매매의 경우에 중간생략등기의 합의가 없이 최종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더라도, 이미 그 등기가 마쳐진 이상 그 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로서 단순히 중간생략등기의 합의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무효가 된다고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원고가 갑에게 그 매수인을 특정함이 없이 처분을 위임하고, 나아가 직접 법무사 사무실에 출석하여 무로부터 전전매수한 피고 앞으로의 이전등기를 위하여 원고와 피고 사이의 매도증서에 서명 날인하는 등으로 그 등기절차에 협력까지 한 이상 피고 앞으로의 중간생략등기에 승낙을 한 것이라고 볼 것」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원고는 또한 갑이 원고의 인장을 임의로 조각하여 원고명의의 토지거래허가신청서를 위조한 후 이를 제주시장에게 제출하여 허가를 받은 것이고, 무와 피고 사이의 실제 매매가격이 2억 3,000만 원임에도 그 매매가격을 1억 3,984만 4,000원으로 허위기재하여 허가관청을 속여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형사사건의 공소장, 피의자신문조서 등의 증거에 의하여 「무가 토지거래허가신청서를 작성함에 있어 임의로 원고의 도장을 조각한 후 신청서에 날인하고 그 거래가격도 실제와 달리 기재하여 제주시장에게 제출하여 허가를 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원고는 갑으로부터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하는데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고 토지거래허가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아 인감도장과 함께 그에게 교부하였고, 갑은 무가 인감도장은 필요 없다고 하자 인감증명서만을 교부하여 그에게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하게 한 사실, 무가 그러나 신청서에 날인할 원고의 도장이 없자 임의로 조각하여 이를 날인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이에 의하면 「원고는 갑이나 무에게 토지거래허가신청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한 것이라고 볼 것이므로, 신청서에 원고의 인감도장이 아닌 도장이 찍혀 있다거나 원고가 직접 이를 날인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것이 위조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고, 토지거래허가신청을 함에 있어 그 거래가격을 실제와 다르게 기재하여 허가관청을 속여 허가를 받은 것은 국토이용관리법 제31조의2 소정의 사위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를 받은 경우에 해당하여 처벌을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러한 신청에 기하여 이미 허가가 이루어진 경우 위와 같은 사유만으로 그 허가가 당연무효의 처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원고의 주장은 모조리 허사로 되어 항소기각의 판결이 선고된 것이었다.
대법원의 환송판결 때문에 원고가 승소하리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무가 선의(善意)의 거래상대방이라고 한 사실인정부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증거에 나타난 것을 보면 무는 갑과 친한 사이이고, 재산이라고는 1억 5천만 원 정도라고 자인하는 터인데, 그는 원고를 대리한 갑으로부터 이 부동산을 2억 3천만 원에 매수하고, 한 달 남짓 지난 뒤 같은 가격으로 피고에게 매도했던 것이다. 상고심 판단 가운데 갑에 대한 도박채무의 변제와 그 변제를 위한 부동산처분권의 위임이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이해한 점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항소심법원에서 원고의 주장대로 도박꾼들이 원고의 도장을 마음대로 새겨 토지거래허가를 받은 사실을 인정받으면서도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되고 만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여기에는 법적수단을 통해서 재산을 찾고 말겠다는 원고 부인의 악착같은 집념과 노력이 개입되어 있다. 부인은 토지거래허가신청서에 찍힌 인장이 막도장이고 원고가 평소 쓰는 인장이 아닐 뿐만 아니라 남편으로부터 인장을 날인해 준 일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갑 일당이 인장을 위조하여 행사한 것으로 확신하고 그 증거를 확보하는 행보를 개시했다.
무엇보다도 부인이 할 일은 원고의 인장을 조제한 도장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부인은 제주도 내의 도장포를 찾아다니면서 원고이름의 막도장을 파 주도록 부탁하고, 거기에 새긴 글체에 의하여 거래허가신청서에 찍힌 인장의 제조업자를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부인은 모두 48개소의 도장포를 찾아다녔던 것인데,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걸어 10군데를 찾았는가 하면, 어느 날은 피곤해서 겨우 2군데만 찾는데 그치기도 했다.
나를 찾아 온 부인은 항소심의 패소판결이 상고심에서 바로 잡게 될 것이라고 확신이라도 하는 투로 심한 제주방언을 쓰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부인이 건네주는 원고명의의 막도장을 위임장에 찍고 돌려주었더니 이런 도장은 집에 마흔 개나 있다면서 웃었다. 위조의 증거를 잡기 위해 도장포를 부지런히 찾아다닌 일이 재미있기도 해서 어떻게 원고의 도장을 만든 업자를 알아냈느냐고 물었더니 인장협회라던가 그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 인장업자는 장부의 비치의무를 게을리 한 죄로 벌금 10만 원을 물었다는 말까지 했다(인장업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둔 인장업법은 실효성이 없는 규제라는 이유로 1999. 1. 21. 폐지되었다).
두 번째 대법원의 심판은 피고 명의의 토지거래허가가 적법했느냐 하는 또 다른 법률문제로 옮겨졌다. 대법원 1997. 3. 14. 선고 96다22464 판결은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이렇게 판단했다.
「국토이용관리법상 허가구역 안에 있는 토지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당사자는 공동으로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바, 원심이 적법하게 인정한 바와 같이 이 사건 토지를 그 소유자인 원고가 무에게 매도하고 이어 무가 피고에게 순차 매도하였다면 위 각 매매계약의 당사자는 위 각각의 매매계약에 관하여 즉, 원고와 무는 원고를 매도인, 무를 매수인으로 하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아야 하고, 무와 피고는 무를 매도인, 피고를 매수인으로 하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위 당사자들 사이에 최초의 매도인인 원고로부터 최종 매수인인 피고 앞으로 직접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기로 하는 중간생략등기의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중간생략등기의 합의란 부동산이 전전 매도된 경우 각 매매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함을 전제로 그 이행의 편의상 최초의 매도인으로부터 최종의 매수인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기로 한다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불과할 뿐, 그러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여 최초의 매도인과 최종의 매수인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므로 원고와 피고 사이에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고, 설사 피고가 자신과 원고를 매매당사자로 하는 토지거래허가를 받아 피고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더라도 그러한 피고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적법한 토지거래허가 없이 경료된 등기로서 무효라고 할 것이다.」
상고이유로서 「원고와 피고 사이에 토지거래허가만 받으면 되고 원고와 무 사이의 매매계약에 관하여 토지거래허가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허가 없이 체결된 중간매도인들의 매매행위를 유효한 것으로 취급하게 되어 결국 중간매도인들의 투기행위를 용인하는 것이 되고, 이는 국토이용관리법의 입법정신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위 법에 의하여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토지거래계약이 처음부터 허가를 배제하거나 잠탈하는 내용의 계약인 경우, 허가 여부를 기다릴 것도 없이 무효라고 하는 판례에도 배치되는 것」이라 하여 선례(대법원 1996. 6. 28. 선고 96다3982 판결)를 원용한 것이 적중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