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4라운드의 민사사건. 갑남은 건물의 1층(점포)과 2층(다방)을 사용하고 있는 두 사람을 걸어 명도소송을 제기했는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1994. 4. 29. 패소하고(92가단5731, 9979), 항소심인 광주지방법원에서 1996. 9. 13. 승소했다(94나4482, 4499, 96나3254). 위 건물은 원래 원고가 그 부모로부터 증여 받은 것이므로, 을녀로부터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가 「그 절차에 있어 부적법한 제소전화해조서에 의한 것으로서 다소의 흠결이 있으나, 명의신탁재산의 실질소유자에 대한 환원이라 할 것이어서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는 이유였다.
항소심에서 병녀는 반소(反訴)로서 위 건물 3층은 병녀가 신축하여 원시취득(原始取得)한 것이므로, 원고는 병녀에게 위 3층 부분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하라고 청구했으나, 항소심에서의 반소 제기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데, 원고가 이에 동의하지 아니하여 부적법한 소라고 판단하고 반소청구를 각하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의 1998. 8. 21. 상고기각의 판결(96다4507845086, 96다45092)에 의하여 확정되었다.
또 이번에는 준재심(準再審)사건. 을녀가 갑남을 상대로 한 1991. 12. 13.자 화해조서의 취소를 구하는 것.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1994. 4. 29. 준재심원고의 신청을 받아들였으나(92재자1), 항소심인 광주지방법원은 1996. 9. 13. 을녀의 준재심청구를 기각했다(94나4376).
위 부동산에 대하여 갑남 앞으로 마쳐진 소유권이전등기가, 비록 화해를 위하여 대리인의 선임권을 상대방에게 위임할 수 없다는 민사소송법의 규정을 어기고, 갑남이 을녀의 대리인을 선임하여 화해를 성립케 한 것으로서 부적법한 제소 전 화해신청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인 이상 유효하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는 대법원 1998. 10. 9. 선고 96다44051 판결에 의하여 파기되었다. 「민사소송법 제355조 제2항은 ‘제1항의 화해를 위하여 대리인의 선임권을 상대방에게 위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제소전화해절차의 일방 당사자가 반대 당사자를 위한 대리인의 선임권을 위임받아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였다고 하더라도 반대 당사자의 추인이 없는 한 그 소송대리인의 소송대리권으느 흠결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제소 전 화해에 있어서는 종결된 본안소송이 계속되었던 것이 아니고, 종결된 것은 전구절차인 제소 전 화해 절차뿐이므로, 이러한 제소 전 화해 절차의 특성상 민사소송법 제431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제소전화해조서를 대상으로 한 준재심의 소에서는 민사소송법 제430조가 적용될 여지는 없고, 재심사유가 인정되는 이상 그 화해의 내용되는 법률관계의 실체관계의 부합 여부를 따질 수도 없어 화해조서를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파기 환송 후의 판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료가 없지만, 보나마나 준재심청구를 받아들여 그 화해조서를 취소하는 판결이 선고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화해조서에 의하여 경료된 갑남의 소유권이전등기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 해답은 아래의 사건에서 나온다.
이제 제6라운드. 병녀가 을녀와 갑남을 상대로 건물에 대한 을녀의 소유권보존등기와 갑남의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라는 소를 제기한 것이다. 청구원인은 위 건물은 병녀가 신축 또는 증축하여 원시취득한 것인데, 갑남이 서류를 위조하여 을녀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치고, 이어 그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했다는 것인데,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은 1998. 11. 18. 을녀에 대하여서는 불출석으로 자백이 간주되어(민사소송법 제150조) 승소판결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갑남에 대하여서는 원시취득에 관한 원고의 입증이 없다고 하여 기각했다(96가단6282). 을녀에 대하여 이겨보았자 최종 등기에 대하여 패소판결이 되었으니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갑남명의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의 기초가 된 화해조서가 취소되었으니 을녀로서는 한번 싸움을 걸만 하게 되었다.
을녀는 같은 지원에 그 부동산에 대한 갑남의 등기를 말소하라고 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위의 지원은 1999. 1. 29.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96가합2584). 제소 전 화해는 일응 부적법하다고 할 것이나, 그 소유권이전등기는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이므로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판례(대법원 1996. 3. 22. 선고 95다14275 판결)는 「제소 전 화해에 있어서는 종결된 소송이 계속되었던 것이 아니고 종결된 것은 화해절차뿐이므로 재심사유가 있어 준재심 소에 의하여 제소 전 화해를 취소하는 준재심판결이 확정된다 하여도 부활될 소송이 없음은 물론 그 화해절차는 화해가 성립되지 아니한 것으로 귀착되어 그 제소 전 화해에 의하여 생긴 법률관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같이 되는 것뿐이므로, 이러한 준재심 확정판결에 의해 실효된 제소 전 화해에 따라 이루어진 소유권이전등기 또는 이에 터 잡아 경료된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 이행을 구하는 소송에서, 그 소송 피고는 위 소유권이전등기가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유효한 등기라는 주장을 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주장이 준재심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어 허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하는 것이니, 앞의 화해조서를 취소하는 판결도 실속이 없는 일로 되고 만 것이다.
하나 더, 그러면 7라운드인가. 갑남은 앞의 지원에 을녀를 상대로 사정변경을 이유로 처분금지가처분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2001. 2. 20. 가볍게 승소했다(2000카합789).
지금까지 이야기한 사건은 형사, 민사, 행정, 준재심 등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판결건수만 해도 파기 이후의 것을 제외하고 열여섯 쯤 되는 것 같은데, 몇 건 패소한 것도 있지만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확보하는 소송에서는 갑남이 승소하여 목적을 이룬 셈이다. 별로 값나가는 재산도 아닌데 동기간에 왜 그렇게 사생결단으로 싸우는 것일까. 쌍방의 소송대리인들은 왜 화해를 부치지 못했을까. 그들 남매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알기나 할까.
싸움은 계속된다. 맨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상고심의 최종판결(2000. 11. 27 선고 2000다51780)로서 끝날 줄 알았던 분쟁은 몇 달도 가지 아니하여 재연된다. 갑남이 어느 날 을녀가 제출한 소장을 들고 찾아왔다. 을녀가 갑남을 상대로 건물의 2층(다방)과 3층(주택)을 명도하라는 소송이었는데, 청구취지(請求趣旨)는 피고는 병녀에게 위 건물부분을 명도하라는 것이었다.
을녀가 위와 같이 주장하게 된 근거는 을녀가 갑남을 상대로 부동산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를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한 광주고등법원 2000. 8. 23. 선고 99나1085 판결의 이유 한 구절 때문이다. 그 판결은 갑남의 소유권이전등기가 증여에 의하여 실체관계에 부합한다고 하면서 을녀의 주장을 배척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에 「위 증여를 병녀로 하여금 건물 2‧3층을 계속 사용하도록 하는 부담부 증여로 볼 여지도 없지 아니하나, 이에 대하여는 을녀가 어떠한 주장도 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판단하지 아니한다」라는 괄호 속의 방론이 그만 불씨를 제공한 것이었다.
실제 증여의 문서에는 어디에도 그런 부담에 관한 특약의 기재가 없었지만, 변론 전체의 취지에서 그런 사실관계를 은근히 암시하여 야속한 막내를 상대로 권리주장을 유도하는 의미가 없지 아니했다. 결론적으로 갑남의 주소지 관할법원인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은 2001. 10. 11. 을녀의 청구 그대로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2001가단18029). 제3자인 병녀가 직접 원고가 되어 낙약자(諾約者)에게 명도를 구하는 것이 정도지만, 기판력(旣判力)의 저촉이라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요약자(要約者)가 제3자에게 이행할 것을 청구하는 보기 드문 형태의 소송이었다.
법원은 변론을 재개하면서까지 몇 차례나 화해할 것을 종용했지만 갑남의 완강한 거부로 무산되고 결국 판결을 하고 만 것이었다. 열 셋의 승소판결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왜 양보를 해야 하는가, 갑남은 담당변호사는 물론 법원에게도 원망하고 항의했지만 미움만 샀던 것 같다.
항소심에 올라간 그 사건은 결국 조정(調停)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종결된 것은 물론 아니다. 항소심에서도 준비서면의 진술에 이어 바로 조정을 시도하게 되었다. 을녀는 병녀가 갑남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후 건물에서 쫓겨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인정에 호소했고, 갑남으로서도 그동안 많은 법정싸움으로 인하여 파렴치한으로 몰려, 물적‧심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너덧 차례 조정을 하는 동안 금전의 수수로 타협할 때, 병녀가 요구하는 금액은 8천만 원, 갑남이 제시하는 금액은 2천5백만 원임을 겨우 이끌어냈다. 이어 법원은 4천만 원의 선을 찾아내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민사조정법 제30조)을 했다.
갑남의 변호사는 법원의 결정에 응할 것을 강력히 종용했다. 그러나 갑남은 대리인 몰래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대리인은 사임을 고려했다. 다시 변론이 개시되었으나 갑남에 대한 조정의 압력은 안팎으로 거세어 외톨이 신세가 되기 십상이었다. 결국 조정은 성립되었다. 2002. 11. 29. 이었으니까, 갑남이 등기를 한 때로부터 11년 만이었다. 갑남은 같은 해 12. 16. 까지 병녀에게 4천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고,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모든 분쟁을 종식키로 한 것이었다. 그동안 쌍방의 변호사와 법원이 왜 화해를 부치는데 실패했을까 궁금해 한 것도 알만 했다.
이제 그들 가족은 수많은 재판을 통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남은 것은 딱딱한 판결서(判決書)들 뿐, 거기에는 되돌아보기 싫은 아픈 기억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언젠가 다 잊고 그 집안에도 옛날 같은 평화가 오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