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담배와 인생 (10화)

인생 육십을 환갑이라 하고 옛날에는 큰 잔치를 했다. 내가 실제 그 나이가 되었을 무렵 웬일인지 지나간 세월이 자꾸만 머리에 떠올랐다. 잘못한 것만 많고 잘한 일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모질게 결단하고 바르게 한다고 했지만, 그러한 일일수록 대개는 더 잘못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헛살았구나 하여 그 착잡함에 마음 가누기가 어려웠다. 참으로 잠깐이었다. 백 년을 산다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내 일찍이 인생이 이렇게 짧은 것이란 걸 알았더라면! 그 뒤 여러 해를 더 살았건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걸 보면 다 부질없는 생각인 듯하다.

내가 술을 끊은 것은 그해 일이었다. 누가 권유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서 되겠는가 하는 자각지심에서였다.

내 술은 보통이 넘는 아주 소문난 술이었다. 그런 것을 하루아침에 딱 끊어놓으니 주변에서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은 내가 독해서가 아니었다. 조금 더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대로 술을 더 퍼마셨다가는 곧 죽을 것이 뻔한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배가 아프면 병원을 찾아 약 먹고 며칠 빤하면 또 술 먹고 하기를 10년을 하다 보니 속이 어떻게 헐었나 내시경 검사를 자주 해야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끊고 잘 살아보자, 사람답게 사는 노력을 한번 해보자, 그런 작정으로 결단하고 단숨에 술을 놓아버린 것이다. 마음을 모질게 먹으니 미련이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동요됨이 없었다. 그야말로 원수 보듯 술이 미웠다.

한 달 가량 기운이 없어 비실비실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른바 금단현상이란 게 그런 것이었다. 한동안 지나 무력증도 없어지고 술도 잊어버렸다. 내가 언제 술을 먹었던가 싶게 말끔히 지난날을 잊어버렸다.

내가 담배를 끊게 된 것은 두어 해 뒤의 일이었다. 술을 떼고 나니 몸도 가볍고 우선 밥을 잘 먹으니 체중이 좀 늘었다. 평생을 50킬로그램 미만으로 살다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은 살찌는 게 소원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담배가 원수였다. 워낙 줄담배라서 두 갑이 넘어갔는데, 가래가 문제였다. 보통 가래가 아니라 똘똘 뭉친 것 같은 기분 나쁜 것이었는데, 하루는 세수하다 탁 뱉어보니 선혈이 묻어나왔다. 늘 다니는 병원이 있어 갔더니 목 안에 충혈기가 있으니 담배를 반으로 줄여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내 조부께서 환갑 전 해에 돌아가셨는데, 후두의 무슨 질환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병원 문을 나와 이화대학 시절의 제자를 만났다. 흔히 하는 습관이 사람을 만나면 먼저 담배부터 꼬나무는 것인데,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라이터를 꺼내 들었을 때 반으로 줄이는 것 보다 아예 끊는 것이 쉽겠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담배를 갑 속에 집어넣고 라이터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서 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담배를 꺼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

사람이란 참 변덕스러운가 보다. 우리 집엔 언제부터인가 재떨이가 없어지고 손님 접대에도 술이 슬그머니 빠지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아내인데, 과부 되는 생각을 덜하게 되었을 터이니 말이다.

담배를 떼고 나서는 무력현상이 6개월이나 갔다. 술을 떼고 나서는 한 달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담배가 더 독한 것 같다. 체중도 늘어 남들이 이제는 적당하다고 한다. 그 좋아하는 술 담배를 다 놓고 심심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더 하는 일도 없건만 전혀 심심함이 없다. 그렇다고 좌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더 하는 것도 아니고 술자리에 안 가기에 시간은 더 남을 터이지만 심심함을 느낄 새가 없다.

나는 평생에 두 번 큰 반성을 했다. 한번은 환갑을 당하여 술을 끊을 때였고 한번은 오십 살 나이 때 큰 참회의 날이 있었다. 그 두 번의 반성 시간에 가장 절실하고 공통된 점이 있었는데,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존재라 할 만큼 그렇게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있나.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떳떳함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저 허공에서 하루만 살다 없어지는 날파리만도 못한 것으로 보였다.

육십의 반성은 죽음을 앞에 두고 하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재산도 명예도 권세도 다 쓸데없는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몇 달 뒤에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런 것은 계산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진짜 삶이 있는데 다 놓쳤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그래서 초조하고 당황스러웠다.

이 나이 되도록 늘 가슴에 품고 다닌 숙제가 있었다.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그림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그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할 적에 그중 한구석도 풀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헛살았구나! 내가 내 모습 보는데 한없이 불쌍했다.

먼저 오십 살 때 큰 반성의 시간이 찾아왔는데, 살아온 전체가 한눈으로 보였다. 또 내가 둘로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 앉아 있는 내가 있고 나한테서 떠나간 내가 또 하나 있는 것이다. 그 떠나갔던 내가 아득히 먼 곳에서 여기로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럴 무렵이었다. 한 찰나, 무의식 상태에서 생긴 일인데, 내가 살아온 과거지사가 또렷하게 다 보였다. 그때 보인 것은 다 내가 잘못한 일뿐이었다. 그 순간 또 신비로운 일이 있었지만 접어두고, 나는 그때 큰 참회의 눈물을 맛보았다. 그것은 큰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 나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랑 말고는 모두가 헛된 것이다.

육십에 술을 끊고 또 담배를 끊고 하면서 죽음 앞에 당면하여 내가 너무나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오십의 어떤 날 영적 체험 가운데 모든 것은 내가 다 잘못했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무슨 일이든 사랑이 없으면 헛된 것이다. 참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사랑의 일일 것이다.

내가 지금 별 볼 일 없이 살고 있긴 하나, 허무한 것과 허무하지 않은 것이 분별되는 것만으로도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