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
‘당신은 왜 그림을 그리시오?’ 하고 묻는 것은 ‘당신은 왜 사시오?’ 하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생을 알고 사는 사람이 없듯 그림을 알고 그리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것이다. 살면서 답이 얻어지는 것이고 그림도 그리면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종교란 것도 이 종교 저 종교 기웃거려 보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알고서 어떤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서 찾는 것이었다. 하느님을 알고 천주교로 가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을 알고 나서 불교로 가는 게 아니었다. 들어가는 것은 입문이고 가서 찾는 것이다. 못 찾아도 할 수 없다.
이 지구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육십억이라고 한다. 그중에 궁극의 가치를 찾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찾고 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아름다움이란 것도 사실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름다움이란 것을 확실하게 알았다면 그것을 그림으로 딱 한 장만 그리면 될 일이 아니었을까. 인류가 몇 만 년 동안 그리는 일을 했지만 완전한 미(美)라는 것은 아무도 그려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해야 소용없는 것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불가지(不可知)의 세계이기에 그만큼 할 일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추사가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체를 다 한 것은 아니었다. 전체란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른바 무한(無限)인데 무한을 어떻게 사람이 다 볼 수 있겠는가. 이슬람교에서는 하느님을 그리지 말라고 했다. 사실 무한세계를 유한의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해가 나올 테니 아예 그리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직관 훈련이랄 수도 있다. 철학자들이 말하길 직관이란 일은 건너편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했다. 직관으로는 둘 또는 셋을 하나로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그림은 일일이 재서 그리는 게 아니다. 단번에 전체를 휘어잡아야 한다. 누가 말했던가, 순간과 영원이 하나라고 했다.
예술과 종교와 인생, 그 모든 것이 산다는 것, 지금 여기서 이렇게 산다는 것인 것 같다. 화가는 하루 종일 그림 생각을 한다. 스님이 하루 종일 화두(話頭:불교에서 참선하는 이에게 도를 깨치게 하기 위하여 내는 1700가지 과제)를 들고 있듯. 영원으로 통하여 하나 되는 것. 개체와 전체가 하나 되는 것. 너와 나라는 분별이 깨지는 것, 내 그림은 곳 나다. 이것은 다만 지금 내 생각일 뿐이고 내일 내가 어떤 생각에 이를지는 나도 모른다. 냇물은 마냥 흐르는 것이니까.
슬픔의 미학
파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와서 둘러보더니 내 작품에 슬픔이 묻어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일찍이 그걸 알고 지우려는 노력을 십여 년 하면서 이제는 다 사라졌는가 싶었는데 형태 속에 그대로 침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줄 선(線)으로 눈을 그려도 슬픈 눈이 되곤 했다. 정리가 된 줄 알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이길래 이토록 깊이 형태에 슬픔이 묻어 있는 것인가. 한이 맺혀 형태에 절절한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다시 보니 전시장이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또 세월이 흘렀다. 어떤 젊은 시인이 왔다. 나중에 보니 시 한 수를 남겼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다.
눈물이 그냥 뚝 떨어질 것 같다.
작게 오므린 입보다도 그녀의 슬픈 두 눈엔
눈물이 분명 가득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 끝을 이렇게 마감하고 있었다.
태연한 척하는 눈이 더욱 슬프다.
그 시인이 오랜만에 또 나를 건드렸지만 그걸 본 시인의 감성에 나는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그토록 슬프게 했을까. 나는 지금 슬픔을 넘어 기쁨의 세계를 갈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