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잘못한 일은 부모에게 효를 못하고 형제들을 거두지 못한 것이다. 만일 누가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림(예술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가장 기뻤던 때는 첫 손자를 볼 때였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전쟁 후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희망이 있어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리운 것은 철없던 시절 어린 날들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놀던 때였다. 작은 어머니(숙모님)가 두 분 있었고 고모가 있었다. 이모도 한 분 있었는데 가끔 찾아왔다. 자주는 못 뵈었지만 늘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게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상을 많이 받았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과 추천작가상을 받았을 때였다.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장 섭섭한 일은 자녀가 장성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었고 슬픈 것은 부모나 형제와 이별하는 일이었다.
행운이 있었다면 스승을 잘 만난 것이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나는 친구들을 통해 용기를 얻었고 스승이 살아가는 것을 잘 보고 본받으려 했다. 교육자로서는 성심껏 했다.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싶었다. 성현들의 가르침대로 살고 싶었지만 현실 앞에서 번번이 꺾였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살고 있다. 외국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일을 서둘렀다.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닌데 쉽게 본 것이 잘못이었다. 알 만하자 나이가 다 된 것이다.
나는 별로 무서운 것을 모르고 산 사람인데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는 당황했다. 죽음이 현실로 닥쳐왔는데 하기야 예비한다고 될 일인 것 같지도 않다. 늘 마음 쓰이는 것은 자식과 형제들이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나는 직장에서 파면이라는 것을 두 번 당했다. 이른바 권고사직이다. 군대를 기피한 것은 아니다. 5‧16을 전후해서 그런 일이 두 번 있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결혼 전이었기에 다행이지 처자가 있었더라면 그야말로 큰 불행이었을 것이다. 누가 칼을 가지고 대든다면 모를까 무서울 게 없었다.
나는 누구한테든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나 이롭자고 남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혹 나로 해서 불편을 당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결코 본의가 아니었음을 믿어주기 바란다. 젊었을 때 한 판단은 부정확한 게 많았을 것이다. 많이 보고 넓게 보고 크게 소화해서 판단을 잘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고 ‘그렇다, 아니다.’를 확실하게 해야 하지만 함부로 할 일은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많이 받고 살았으니 늙으면 주면서 살아야 한다. 받을 생각을 다 포기하면 좋을 것 같다. 주는 것이 기쁨이다. 받기만 하면 결국 빚이 된다. 보태는 것보다 더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