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성당에는 대개 성모상이 있다. 흔히 마당에 서 있다. 성당 안에 있기도 한데 제대 쪽에 있을 때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명동성당이 그 예다. 성당 마당에 성모상이 없으면 왠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우리나라에만 그런 것은 무언가 까닭이 있을 것 같다. 주보성인이 성모님이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떻든 전국 어딜 가나 교회 안에는 성모상이 있는데, 교회에 성모상이 없으면 개신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성모공경을 빼놓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예전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모형을 가져다 다량으로 복제해 보급했기에 여기저기 비슷한 성모상이 있었지만 요즈음에는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제작되는 수가 많아져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예수님도 그렇지만 성모님은 2천 년 전에 사셨던 분이다. 훗날 아무도 그분을 본 일이 없다. 그렇지만 성모님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다르게 만들어진다. 성모님은 한 분이다. 그런데도 만드는 사람마다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똑같은 성모님은 하나도 없다 할 만큼 몇 천 년을 그렇게 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천주교 전래 이후 성모님상은 서양 사람 모습으로 되어왔다. 그것은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성상들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신자들 마음에 성모님은 이렇게 생겼다 하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40년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떤 친구가 성모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성당 사람들이 성모님을 닮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성모님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상본을 갖고 와서 이렇게 생겼다 했다는 이야기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성모님이 한국 사람 얼굴을 하고 한복을 입고 있다면 성모님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미국 흑인인권운동가 맬컴 엑스는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는데도 나중에 유명인사가 되어 미국 각지에 연설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한번은 어떤 대학에서 “예수는 백인이 아니다.” 하는 연설을 했는데 학생들이 어찌나 놀랐는지 고정관념을 단칼에 박살낸 것이다. 실제 예수님은 백인이 아니다. 성모님도 백인이 아니다. 그런데 왜들 모두가 백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리스도교 성상들이 서양 사람 얼굴을 하게 된 것은 길게 잡아 600년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중세 성당에 있는 성모상은 서양 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성상들을 보면서는 아무도 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왜 한국 교회에서 한국 사람 성모님을 만드는 걸 이상하다고 보는가.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성상예술을 만들며 자기네 것으로 만든 것인데 그것이 옳은 일로 평가되었기에 전 유럽으로 번진 것이다. 그 서양미술의 영향을 오늘날 우리가 받은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600년 전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이른바 우리에게 맞는 토착화를 이루어야 한다. 토착화라는 말에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 있다. 제자리에 선다는 뜻이다. 진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예술은 진실을 바탕으로 한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한쪽 모습이라 한다. 진정한 미(美)가 현현(顯現)되었다면 거기에 하느님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성상이 하느님의 음성을 담게 되려면 예술화해야 한다. 상징에 생명을 더해야 한다. 사실 어느 누구도 성모님을 본 이가 없다. 누구나 바라는 것은 성모님을 만나는 것인데 그 상징이 되도록 성모님다웠으면 하는 것이다. 성모님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이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난 30년 동안 많은 성모상을 만들었다. 만들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된다. 예술로서 확실하며 성모님의 품성을 유감없이 찾아 형상화되길 바란다. 할 때마다 바라지만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없다. 언젠가 진정한 모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성상은 대개 놓일 장소를 보고 만든다. 환경과 형태는 상호작용한다. 환경은 주어진 것이고 그 환경에 상관성을 갖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더러는 주어진 장소 없이 만드는 일이 가끔 있다. 왠지 문득 만들고 싶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여인상을 만들면서 이리저리 고심하다 성모상으로 귀결되는 때도 있었다. 그럭저럭 놓일 것을 전제로 하지 않은 성모상이 여러 점 있다. 한번은 언젠가 좋은 환경을 만나면 돌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만든 게 있다. 뒷날 정말로 그런 장소를 만나 지금 잘 서 있다.
한번은 무심코 만든 것이 성모상이 되었다. 뒷날 어떤 경당을 손보는 과정에서 그곳에 놓이게 되었다. 예정에 없던 자리에 우연한 일이 생겨 서 있는 두 성모상이 특별히 자주 생각난다. 경상도 어디에도 성모상이 있다. 가까이 있다 해서 내가 자주 가 보는 것도 아닌데 멀리에 있으면 왠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절반은 보는 이들이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성상은 시대가 만든다. 그 시대에 그 형상이다. 이제는 한국에서 가톨릭 성상들이 걸출한 모양으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성상예술은 신앙의 성쇠와 함께한다. 신앙이 성(盛)한 시대에 교회예술이 번성(繁盛)했고 신앙이 쇠(衰)할 때 교회예술이 퇴락(頹落)했다.
신앙이 성한 시대에 성상예술도 따라서 성한 것이다. 한국 땅에서 가톨릭 종교 미술이 성한 시대가 지금 당도했다. 가장 성모상다운 성모상이 이 땅에서 나올 것이다.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성한 시대에 아름다운 성상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