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나는 내 형태 속에 한(恨) 이야기가 끼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전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고 아마도 철이 들면서 인생과 예술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에 대해 피부로 접하게 된 그 이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 그것은 눈의 형태에서 비롯했는데 눈을 만들면 어쩐지 슬픈 눈이 되곤 하는 것이다. ‘모딜리아니’의 눈이 그랬다. 동자 없는 눈, 금방이라도 이슬이 맺힐 것 같은 눈, 마치 슬픈 가을 하늘과도 같은 눈….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래서 나는 그의 환경과 생애, 그런 것과 연관시켜 보면서 예술이란 인생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런데 내가 그냥 선(線)으로만 눈을 그리는데도 슬프고 한 맺힌 눈이 된다. 세월이 지나면서 온몸 구석구석까지 수(愁)의 빛이 가득 번진 것을 알고 나는 크게 반성했다. 여기서 탈출해야 하겠다는 큰 결의였는데, 지금 몇 해가 지났는데도 제자리걸음만 하면서 오히려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낀다.
나는 늘 희(喜)도 수(愁)도 아닌, 저 끝없이 광활한 하늘이 그립고 마냥 그렇게 있는 나무와 풀이 부러웠다.
희로애락의 차원을 넘어 온전한 자유가 내게 오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때 가서는 나의 예술도 끝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과의 만남일 것 같은데 실현 불가능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는 데 나의 고통이 있다.
석굴암 불상이 좋은 것은 그 초월성에 있고 이집트의 상(像)들이 좋은 것은 그 영원성에 있으며, 그리스의 조형들이 좋은 것은 그 조화와 균형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요즘 나도 모르게 진정이라는 말과 정성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진실에 따라 진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첩경이라 믿는다. 나를 가꾸는 것이 세상을 가꾸는 것이고 세상을 가꾼다는 것은 바로 진리의 실현이 아닐까. 모든 것을 하나로 집중시켜 그 하나를 추구하는 것으로 해서 총체를 행위하게 되기를 바란다.
미켈란젤로도 말했듯이 나의 모든 것이 정 끝머리에 집약되어 전력으로 순간이 살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 생의 온전한 자유를 위해, 또 새로운 역사의 올바른 형성을 위해 순간을 실현하며 영혼의 품에 정착되길 바라는 안타까움은 오직 나의 하느님만이 알리라.
사람의 양심은 세상의 거울이다. 오늘도 내 마음은 흔들리고 저 먼 산에 흐드러진 나무들, 저 들녘에 우거진 풀들이 부러워 그 충실성으로 풍요한 곳, 내 이상의 실현을 위해 몸부림친다. 그래서 내 형태들은 그런 나의 싸움터에서 희생된 시체들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가을 찬바람과 더불어 내 예술의 한계 같은 것이 절실하게 느껴져 인생도 한(恨)의 예술로, 한스러운 이 두터운 벽을 넘어서고자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