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 때 (35화...

쉰이라는 나이가 있다. 내가 살아온 길을 통틀어 볼 때 가장 힘든 시절이었다. 공자는 그 나이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지천명)] 했다. 글자 그대로를 풀이해 보면 “하늘이 내게 명하는 바를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 말로 들린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한테 그 뜻을 물었다. 그러나 속 시원히 풀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40에 불혹하고, 50에는 천명을 알았다.” 지금도 내 가슴속에 큰 숙제로 남아 있다.

나는 그 쉰 살 나이 때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조각이란 무엇인가. 자나 깨나 그 생각이었는데, 하룻날 아!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단히 시원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통쾌한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왜 그때 그렇게 좋았는지 알지 못한다.

4학년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오늘은 내가 중대 발표를 하겠다 하고 선언했다. “조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을 내가 확실하게 알았다.” 학생들이 와하고 웃었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 좋았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왜 그렇게도 좋았을까.

그림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모든 것이 다 알 수 없는 것. 우주의 시원과 창조주라는 것,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

그런 궁극의 문제에 대한 의문이 일시에 모른다는 것으로 풀린 것이다. 다 모른다면 허망한 일이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가 않았다. 허무(虛無)가 아니라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충만감이 있었다. 이상한 기쁨이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모든 의문을 일시에 모르게 된 것인데 그게 왜 그렇게도 통쾌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 것들을 누가 알겠는가? 당연한 것을 내가 알았다는 것인데. 그게 쉰이라는 나이였다는 것이다.

내가 그림 그리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것도 우리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사는 사람이 없듯이 그림이 무엇인지 알고서 그리는 사람은 없다. 당신은 왜 글을 쓰시오 하는 물음에, 그것을 알기 위해 쓴다고 답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떤 이는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심각한 독백을 한 사람도 있다.

효봉 스님이 열반하실 때 옆에서 한 말씀 가르침을 청했는데, 답인즉 ‘무(無)’였다. 유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뜻을 누가 알겠는가. 하느님이 셋을 만드셨다고 창세기 첫머리는 말한다. 어떤 복음서에는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도덕경」 서두에 누구나 다 아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이다. 형언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이럴진대 내가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가 위대한 작품을 남겼지만 그림이란 이런 것이라고 답을 낸 사람은 없다. 수없이 많은 철학자가 있었지만 삶의 근본 물음에 대한 정답을 만든 사람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 알 수 없는 세상을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산다. 철 따라 꽃은 피고 땅과 바다에는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다. 구름이 가고, 비가 오고, 하늘에 별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세월은 무궁하고 우주는 무한하며 그 모든 것은 영원에서 나왔다 하는 것이다. 무궁이라는 말, 무한이라는 말, 영원이라는 말, 모두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자체가 신비다. 지금 이 자체가 축복이다.

나는 그림이란 무엇인지 모르면서 오늘도 그림 일을 한다. 아름다움이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서 오늘도 일을 한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아름다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 아름다움이란 것은 있다. 이 세상 일에 대하여 사람들이 아는 범위가 얼마나 될까? 큰 사막에서 그중 모래알 하나만큼은 될까? 가까운 에로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내가 얼마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른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숨 쉬듯 일한다.” 숨이 끊어지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숨을 쉬는 것은 아니다.

공리를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쓸데없이 일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한 스승이 말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데 웃음이 절로 난다. 참으로 명담(名談)이다. 쓸데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나는 숨 쉬듯 일한다. 내게는 마치 염불 소리처럼 들린다.

쉰의 나이 때였다. 무질서가 보였다. 나의 가슴 안마당이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듯 어질러져 있는 풍경을 보았다. 무서운 세월이 지나간 것을 보았다. 폭풍우가 끝나고 맑은 햇살이 먹구름을 뚫는 것 같은 풍경도 보았다.

두 개의 ‘나’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이며, 또 하나의 나는 멀리 세상 밖으로 무언가를 찾으러 나갔다 내게 다시 돌아오는 나였다. 저 하늘 끝에서 내게 돌아오는 ‘나’가 있었다. 굉장히 반가웠다. 어서 와서 하나가 되자. 돌아오는 것이 보인다는 것은 전에는 먼 데를 향해 달려갔다는 것이다. 분리되었다 다시 하나로 합치려 하는 것 같았다. 그 밖에 말로 할 수 없는, 참으로 진기한 일도 보았다. 그런 여러 사건이 쉰의 나이에 있었다.

T.S. 엘리엇의 <제4의 계단>이란 시가 있다. ‘네 번째 계단은 구원의 계단’이란 한 구절이 잊히질 않는다. 반세기 전에 읽어서 정확한지는 의문이다. 쉰의 나이에 여러 진기한 일들을 겪으면서 그때 내가 제3의 계단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찾음새의 일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 모를 홀가분함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찾음새의 일들이 일시에 무너졌을 때, 그때처럼 좋은 일이 또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제4의 계단’인지도 모른다. 잿더미에서 움이 돋아나는, 그런 조용한 기적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