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몇 십 년만의 추위라고들 크게 놀랐다. 내가 느낀 바로는 아마도 난생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북방의 추위 소식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몽골 지방 짐승들이 대량 동사한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여기저기서 대지진이 생기고 있다.
여태까지 들어보지 못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광우병이란 것이 생겼다. 그 여진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과거엔 드물던 독한 질병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엄청난 기세로 번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 희대(稀代)의 재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이 인간의 수습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데 문제가 있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과학의 한계를 보는 것이다. 과학이 못하는 것이 없는 줄 알았더니,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이 재앙에 대해 그야말로 속수무책임을 실감한다. 때문에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대해 회의가 생기는 것이며, 그로 인해 불안심리가 만연되는 것이다.
도덕이란 것이 흔들린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인륜이 파괴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간 복제는 둘째 치고 언제부턴가 아기를 체외에서 키워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낙태는 상습이 된 일이고 법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우리나라에 이혼율이 세 쌍 중 하나라고 한다. 하루에 100쌍이 결혼을 한다면 그중 33쌍이 이혼을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결혼하면서 혼인서약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깨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소용없는 설교에 불과하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잊힌지 오래다. 종교의 힘이 거기에까지 미치지를 못한다. 과학은 과학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독립되어 고독하다. 정치라는 것도 본연의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기업이란 것도 그렇다. 모두가 이른바 ‘꾼’으로 전락했다.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이다. 상호 간의 믿음이 없어졌다.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벽이 자꾸만 두터워지고 높아진다. 믿음을 상실한 세상에는 무한 경쟁만 있다. 긴장에 따른 조바심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어린 학생들은 놀 틈이 없다. 조금 크면 대학입시 준비에 전력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간다 해도 지식에만 편중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꿈을 키울 여지가 없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어디에서 배우는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은….” 하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도 바빠 마음이 가난할 새도 슬퍼할 여유도 없다. 진리에 목마른 빈 공간이 없다. 오늘날 종교와 학문과 예술이 과연 진리 탐구에 그 초점을 두고 있을까? 진리에 목이 타서 한탄하는 사람들, 가슴속 진리의 집이 가나하여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
세상은 참으로 삭막한 광야다. 풀 한 포기 없는 산과 들을 보는 것 같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 사막을 보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울어라.” 하시는 십자가의 길 풍경이 생각난다. 오늘날 어디에서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늘나라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가.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했다. 그런데 세상을 만든 이는 어디 계시며 어떻게 생겼는가.
도(道)를 말로 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라고 도덕경 첫머리에 있다. 성현들은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라 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라 하고, 손에 쥐고서도 보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 한다면 황당한 일이다. 그 황당한 것과 메마른 광야 사이에 내가 있다.
연전에 어떤 신부가 도(道)를 하느님이라 번역했다. 그렇게 믿는다면 도통한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보는 것과 같다. 건너편 언덕[道彼岸(도피안)]이란 것도 그렇게 본다면 같은 뜻이 될 것이다.
한번은 어떤 신부가 중국에 가서 노자 공부를 하고 왔다기에 강의를 청했는데, 칠판에 길 도(道) 자를 써놓으면서 도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기에 내가 그걸 알면 그림을 안 그릴 것이라 해서 웃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하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성경에도 비유로만 있지 설명이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이고 또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 한다. 모두 비유로 되어 알아듣는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여기가 바로 하늘나라이고 하느님은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다. 내가 외면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도 그분은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