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의 말씀은 모두 같다. 언어가 다르고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그분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딴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바로 여기라 하지만 내가 외면하고 있어 안 보이는 것이다.
‘반야심경’ 맨 끝머리에 이런 말이 있다. “가세, 가세, 어서 가세(아제 아제 바라 아제).” 그 나라로 어서들 갑시다, 라는 격려사다. 진리의 나라, 자유의 나라, 사랑의 나라, 아름다운 나라, 평화의 나라, 생명의 나라, 행보의 나라다. 눈앞에 볼 수만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참답게 사는 길, 행복의 길이 명백하게 있다는데 알고서 안 갈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들어도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나니, 그런 이들이 하늘나라를 볼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기괴한 뉴스를 들었다. 무당굿하고 점치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다면 모를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주교‧불교‧개신교 등 기성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 속에 많다면 요행을 바라는 나라가 될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 성선설과 성악설로 대논쟁이 있었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다. 천지창조의 원리가 악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선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온전한 사람이 되자고 하는 것이다. ‘아제 아제 바라 아제’도 그 잃어버린 진리의 나라를 찾아 서두르자고 하는 말이다.
하이데거는 고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본래 있던 곳,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될 때 하늘나라를 볼 수 있다 했다. 어린이는 아직 죄에 물들지 않았다. 어떤 시인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다. 불가에서 노상 하는 말씀 중에 탐(貪)‧진(瞋)‧치(痴)라는 대목이 있다. 스님들의 강의를 들으면 ‘탐진치’라는 말이 빠지는 날이 거의 없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마귀가 하는 짓이다. 생명을 잡아먹는 악귀라 하는 말이다. 이는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다. 순진의 불이 꺼지면 죽은 나뭇가지와 같다. 지혜의 불이 꺼지면 사람은 짐승의 차원 아래로 떨어진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끝없는 반성, 끝없는 되물음이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있는가!
견성(見性)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본체를 확실하게 꿰뚫어 본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를 알면 하느님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선과 악, 천당과 지옥, 좋은 것과 나쁜 것, 예쁜 것과 미운 것, 진리의 나라와 아수라의 나라,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육과 영 등. 그렇게 이분법으로 보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한 발은 저쪽 나라를 딛고 있다. 그런데 몸의 중심은 이쪽 나라에 있다. 그래서 늘 갈등이 있다. 동풍, 서풍, 바람 잘 날 없다.
‘바람을 잠자게 하여주시고 탐진치로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털어주시고 머리를 덮고 있는 구름을 벗겨주시고, 그리하여 당신의 빛, 생명의 빛 속으로 저를 불러주소서.’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나는 한동안 설악산에 있었다. 날마다 이 계곡, 저 계곡을 기웃거렸다. 입춘이었다. 그날따라 갑작스럽게 계곡 물소리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얼음 속을 뚫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그날따라 부드럽고 따뜻한 합창으로 들렸다. 아, 봄이 왔구나!
양달진 곳에는 눈이 녹아 새파랗게 쑥이 돋아나고 있었다. 단풍나무 싹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름 모를 산새들도 바쁘게 날고 지저귀는 소리도 한결 명랑했다. 머지않아 설악산 계곡은 생명의 대합창이 울려 퍼질 것이다. 잠자는 어린 생명들이 기지개를 펼 것이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참 소식이 아닐까!
환희의 노래가 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비 오듯 흐르는 것 같았다. 한겨울에 봄이 오고 있었다. 땅은 비록 얼어붙고 짐승들은 모두 움츠리고 있었지만, 봄의 햇살은 남모르게 설악의 계곡을 비추고 있었다.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천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활의 봄, 생명의 봄이.
고향 가는 길 멀다 하지만
내 기필코 찾아가리
고향 가는 길 어둡다 하지만
내 기필코 헤쳐가리
고향 가는 길 험하다 하지만
내 기필코 이겨내리
고향 가는 길 멀고 어둡고 험하다 하지만
그렇지만 고향 가는 길은 사랑의 길
그렇지만 고향 가는 길은 아름다운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