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눈에 까만 눈동자로 가득 찬 천사의 그림이 있다. 이콘[聖畫像(성화상)] 그림을 설명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눈이 그렇게 큰 것은 하느님을 본 이가 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여러 날을 성화 강의를 했는데 그 한마디, 하느님을 본 이가 되어 눈이 그렇게 크다는 대목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명쾌하다 할까, 그야말로 똑떨어진 표현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눈과 입의 모양에 대해 늘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초승달같이 그리고 싶을 때도 있고 어쩌다 보면 슬픈 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어떤 눈을 그릴까, 어떤 입을 만들까 늘 고민스럽다. 예를 들면 ‘이 여인이 왜 웃고 있어야 하나?’ 하는 의미가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예를 들자면 부처님 얼굴이 파안대소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말이다. 불교 그림이나 그리스도교 그림에서 그러하다. 형태에 내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작과 표정이 그리고자 하는 내용을 여실하게 표현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뜻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그림들을 보면 인상파 시절부터 그림에서 내용과 의미를 제거하는 일에 큰 노력을 해왔다. 그리하여 색채만 있고 형상이 없는 캔버스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까지 간 듯 하더니 요즈음은 사정이 달라지는 것 같다. 물결이 굽이를 만들고 반전하는 느낌이 있다. 이런 시절에 천사의 눈이 큰 것은 하느님을 본 이가 되어 그렇다 한 그림 설명이 나한테는 큰 감명으로 들린 것이다. 그림이란 것이 의미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을 제거해야 할 것인가 하는 혼돈이 생긴다.
완당의 세한도가 중국에 건너갔을 때 의미의 있음과 없음이 참으로 절묘하게 표현되었다고 격찬을 받았다. 그림이 어떤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문제이고, 또 내용이 없는 것도 문제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뜻에 형상이 지배당해서도 안 되고 뜻을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 하는 것이다.
어떤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정리한다. “뜻이 성했을 때 예술은 쇠퇴하고, 또한 뜻이 약화되었을 때도 예술은 쇠퇴한다.”
박수근의 그림이 사랑받는 것이 그런 ‘치우침이 없음’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집트의 조각에는 강한 생명력이 있다. 지극히 추상화된 형태이면서도 그냥 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로마 시대 조각들은 인체를 설명하는 데 너무 열심한 탓인지 형태의 생명력에 있어 약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토의 경건성과 바로크 화가들의 자유분방함은 극단의 대조(對照)다. 우리는 거기서 득(得)과 실(失)을 알아볼 수 있다.
김종영의 조각과 장욱진의 그림은 매우 대조적이다. 그런데 나는 그 양쪽을 다 좋아한다.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단정되지 않는 데 그림의 오묘함이 있다. 세상이 한 가지 종류의 나무로만 가득 찬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이 한 가지 꽃으로만 가득 차 있다고 가정해 본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원리에서 나왔지만 세상에는 백화가 난발하고 있다.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간다. 만일 강물이 반듯하게 흘러간다면…. 물론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연은 본래 그렇게 생성된 것이다. 백화가 난발하고 물은 굽이굽이 흘러간다.
뜻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이라는 방법을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뜻이란 무엇이며 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자고로 동서 간에 성현들이 말씀하셨다. 진선미는 하나다. 갈라놓을 수 없는 성질이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진리라고 말한다. 참된 이치는 하나로 돌아간다. 원래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근래의 문명은 사방으로 갈라놓는 일에 열심이었다. 사회는 투철한 전문가를 요구했다. 그것은 지금 인간 상실의 큰 오류를 범하려 한다. 모두가 그것을 염려한다.
<실낙원>이라는 마사초의 유명한 그림이 있다. 나는 그 그림 앞에서 복낙원(復樂園)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낙원에서 쫓겨난 것은 사실이다. 다시 낙원에로의 귀향이 절실한 때다. 종교와 예술과 학문이 하나인 근원을 향해 총력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에의 추구다. 우리 모두가 흩어져 제각기 어떤 길을 찾고 있다. 낙원으로 가는 길은 우리 내면에 있다고 한다.
그림은 왜 그리며, 누구를 위해 그리는 것인가.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앞서 나는 왜 예술을 해야 하는가를 되묻는다. 결말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되묻는다. 인생의 호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을 진실로 본 사람은 그림을 안 그릴 것이다. 유사 이래 진실로 아름다움을 본 이는 한 사람도 없다. 예술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것을 풀어내는 일이 영원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이 절규와도 같은 한 마디가 오늘도 내 가슴을 울린다. 사람은 완전한 그림을 만들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적 숙명이 아닐까 싶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완전한 무엇을 만들 수 있겠는가? 다만 성숙한 표현을 바랄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일수록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안다. 나의 스승 한 분은 팔십을 훨씬 넘기고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지금 백 리 길 가운데 구십 리 길을 왔는데 나머지 십리가 온 길보다 더 멀구나!”
가신 지 몇 십 년이 되었지만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뜻과 쓸모와 아름다움을 한 몸에 가질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한다. 그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그중 하나의 문제만도 성취하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뜻과 쓸모와 아름다움은 한 나무의 여러 뿌리다. 뜻의 미술, 쓸모의 미술, 순수미를 위한 미술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예술일진대 분리되어서는 온전하지 못할 것 같다.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도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라치면 만감이 교차하는 것을 느낀다.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은 해 진 뒤에도 하얗게 빛난다. 산이 아니라 영적인 놀라운 형상을 보는 것 같다. 교(巧)가 졸(拙)을 넘어설 수 없다 한 소동파의 말이 자주자주 생각난다. 태박(太朴)이란 말을 도덕경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분화와 종합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미가 의미의 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의미를 잃어버렸을 때도 허전한 일이다. 가브리엘 천사의 눈이 커다란 것은 신의 모습을 본 이가 되어 그렇다는 말이 산울림처럼 자꾸만 메아리친다.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은 하나의 몸체라는 것이다. 참됨과 선함의 표정이 미(美)라는 형태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