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4월 나는 읍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와 삼촌이 동행했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은 아버지의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셨다. 나는 난생 처음 가슴에 이름표를 달았다. 하얀 천에 붓으로 썼는데 아마 삼촌 글씨였을 것이다. 창씨개명을 당한 내 이름 ‘江本(강본) 鍾泰(종태)’위에 일본 가나 글씨로 카와모토 카네야스(かわもと かねやす)라고 특별히 일본식으로 썼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도 입학하던 날의 운동장 풍경이 생생하다.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고 맨 처음 입학생이 된 것이다.
그전 어느 날 마루에 있었는데 멀리 논산에서 일가 어른이 할아버지를 찾아오셨다. 무언가 심각한 말씀을 나누셨는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했다. 우리 최(崔)씨네가 개명(改名)을 해야겠는데 강화가 본(本)이니 후손들이 기억하게 좋게 ‘강본(江本)’이라 하고 부르기를 ‘에모토’라 했다. 거기다 내 이름 종태를 일본식 음독으로 발음하면 쇼타이. 그리하여 해방되던 날까지 내 이름은 에모토 쇼타이였다. (앞에서는 카와모토 카네야스라고 하셨는데 왜 뒤에서는 에모토 쇼타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쪽 다 한자는 같지만 읽는 방법만 다름)
그해 12월 8일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해 이른바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 시작되었다. 내 위 학년까지는 조선어 시간이 있었다는데 우리 때부터 그 시간이 없어졌다. 일본말 책으로 배웠는데 어떻게 수업을 했는지 그때 형편을 기억할 수 없다. 2학년부터는 학교에서 조선말을 쓰면 선생님한테 크게 주의를 받았고 그 뒤 언젠가부터 조선말은 학교에서 절대 금지였다. 어쩌다 말실수를 해서 혼나는 수가 부지기수였다. 나는 6년 동안 조선말을 해서 혼난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말을 잘 안 하는 나의 성품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쟁은 점점 위급해지는 것 같았다. 신문 방송은 날마다 승전보만 울렸지만 우리 학교 교사는 일본 군인들의 숙소로 쓰이게 되었다. 우리는 향교(鄕校)로, 그 밖에 창고 같은 데를 전전하면서 칠판을 가져다 놓고 공부라는 걸 했다. 전교생이 군대식으로 편성되었고 목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했다. 애국소년단을 만들고 식량증산 퇴비 모으기 등 아침저녁으로 바빴다. 소나무 광솔을 따서 기름 만드는 데 동원되었다.
어느 봄날 학교 앞 보리밭 밟기를 했다. 어쩌다 이른 뱀이 나왔던 모양이다. 어떤 친구가 “뱀 봐라!”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조선말을 했다고 그 친구가 불려 나갔는데 일본교장(당시는 군인 장교였다)이 학생들 보는 앞에서 낫으로 머리를 때려 피가 철철 흐르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우리 집은 시골이 다 그렇듯 농사를 했다. 벼 심고 타작하고 각종 농사일을 안 해본 것이 없이 다 했다. 영을 엮어 지붕에 올리고 짚신도 삼았다. 여름과 겨울 농한기에 우리 할아버지는 붓을 만드셨는데 나도 가끔 옆에서 붓 만드는 일을 재미 삼아 했다. 이상하게도 할아버지는 그것을 말리지 않으셨다. 실수도 했을 테지만 쳐다보면서 일절 말이 없으셨다. 털 고르기부터 대나무를 잘라 또르르 털 들어갈 구멍 만드는 일도 재미있었다.
한번은 가을 농사가 끝났는데 우리 집 소달구지에 벼 가마니를 가득 싣고 면사무소 마당에 가져다 바쳤다. 이른바 공출이라는 것이었다. 농사한 것을 얼마씩 나라에 바치는 제도였는데 면사무소 마당에는 벼 가마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공출하는데 어린 내가 따라간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들의 심사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면사무소 마당은 여기저기서 싣고 오는 벼 가마니를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러고서 식량배급이라는 게 있었는데 만주에서 가져온 콩‧깨‧묵이었다.
지금도 냇가 모래밭에 가면 쇠비름이라는 게 있다. 억세게도 잘 자라는 풀이다. 삶아서 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참으로 맛이 좋았다. 요즘은 그걸 먹는 사람들이 없다. 왜 그렇게도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혀 끝에 그 맛이 삼삼하다. 궁하면 오히려 통한다는 궁즉통(窮則通)이라고 워낙 어려운 시절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싱가포르가 함락되었다고 고무공도 선물받고 일본 떡도 얻어먹었고 우리는 날마다 군가를 부르며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에 의기양양해했다. 교육헌장을 외우느라 진땀을 뺐다. 학교 문 옆에 신사(神社)를 만들어 놓고 등교하거나 퇴교할 때 절하고 손뼉을 세 번 치는 예를 바쳤다. 빼먹었다가 들키면 또 기합이었다. 학교 문 밖에만 나오면 약속이나 한 듯 조선말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신작로를, 때로는 산길을 타고 놀면서 동네로 돌아왔다. 그럴 때면 우리는 완전한 조선 사람이었다.
미국 사람과 영국 사람은 귀신 도깨비라 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훗날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왔는데 좀 이상하기는 해도 귀신 도깨비처럼 생긴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점점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마을마다 부인네들이 모두 나가 소방 훈련을 하고 흰 저고리에 검은 바지(몸뻬라 했다)를 입고 물동이를 들고 훈련하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일본군 부대가 자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야마모토[山本] 장군이라 했는데 나는 습자(習字) 시간에 시키지도 않은 야마모토 장군을 추모하는 글을 멋지게 썼다. 나는 붓글씨를 잘 써서 상도 받았기에 우리 학교에서는 모르는 학생이 없을 만큼 유명했다. 위문 그림도 그리고 위문편지도 쓰고 그런 일을 해마다 몇 번씩 했다. 학도병이란 것은 몰랐지만 이웃에 징용 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웃집 누나들을 서둘러 시집보낸다고 수군수군했다.
학교 운동장은 온통 고구마 밭으로 바뀌었다. 워낙 넓어 학년마다 구역을 나누어 담당했다. 우리 반의 몇몇 친구는 일본 군인들과 잘 놀았다. 그네들은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훈련을 독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뭘 하고 지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떤 군인은 뱀도 잡아먹고 어떤 군인은 마늘을 먹고 온몸이 빨갛게 되기도 했다. 한 군인은 애를 낳았다고 자랑했는데 우리 학교에 온 지 일 년이 넘었는데 부인이 어떻게 아들을 낳았을까 이상했다. 듣고 보니 고국에 동생이 있는데 형이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동생이 자식을 낳아주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1945년 8월 15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우리는 6학년이었다. 마침 운동장 고구마 밭에 물을 주는 당번이 우리 반 담당이었다. 우리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 물 주기에 열심이었다. 그날 12시에 중대방송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12시 가까이 되었는데 일본 군인들이 모두 숙소(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무더운 날인데도 창문을 모두 닫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 모든 유리창이 열렸다.
군인들이 웅성거렸다. 무슨 방송일까 우리는 궁금했다. 더러는 군인들이 교실 밖으로 나왔다. 한 친구가 알아보고 말하기를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덤덤했다. 조금 있다 조선인 선생님이 나오더니 우리를 다 모이게 손짓하고 “오늘은 일 그만한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우리는 좋아라 하고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갔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처음 들어보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었는데 더울 때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 그늘 아래 낮잠을 잤다. 그날은 유난히도 많은 사람이 나무 밑에 모여 있었다. 모두가 흰옷이었다. 푸른 나무 밑에 마을 사람들이 하얗게 모여들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가 마당에 계셨다. 나는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철난 소리를 한번 했다. 일본이 졌다는데 그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더 알고 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분명 일본은 전쟁에서 진 것이다. 우리 동네에 살던 일본 사람이 본국으로 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조선이 일본제국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해방된 조국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확실히 뒤바뀌었다. 일본인 선생들은 자기네 나라로 돌아갔다. 몇몇 조선인 선생은 마을 청년들한테 얻어맞았다고 한다. 이웃 동네 면장 집도 혼이 났다고 들었다. 학교가 새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가갸거겨를 배웠다. 참으로 신기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조선말 책을 좔좔 읽을 수 있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작문(作文) 수업을 자주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거의 날마다 우리한테 작문 훈련을 시켰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종례가 끝나고 책보자기를 들고 일어서는데 내 이름을 부르면서 선생이 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한 말씀 “너는 글을 참 잘 쓰는데 네 글이 아니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나는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은 대로 해방의 감격, 일제 36년 암흑과 고통을 유창하게 써 내려간 것이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하는 걸 느꼈다. 암울하던 일제(日帝) 36년 압박과 설움. 민족의 자주독립…. 그렇게 신나게 글을 써 나갔던 것이다. 선생님은 내 맘을 잘 아시고 그 점을 꼭 집어낸 것인데, 사실 일본의 식민지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고 독립운동을 하는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를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그때보다 뒷날 또 뒷날 나는 두고두고 반성했다.
먼 훗날 내가 조각을 하면서 진실이란 것에 당면하게 되고 그 진실이란 것을 어떻게 형태로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전(苦戰)할 적에 “네 이야기를 써라.” 하신 선생의 그 한마디 충고 말씀이 내 가슴속에 천둥처럼 울렸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 천둥 같은 소리가 문득문득 내 가슴을 흔든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고 대한민국이라 했다. 미군들이 이 땅에 들어오고 백인도 보고 흑인도 보았다. 자유당과 민주당이란 것도 보고, 6‧25전쟁과 피난살이도 겪었다. 3‧15부정선거와 4‧19학생혁명! 5‧16군사사건, 10월 유신, 대통령의 시해, 민주화의 봄, 5‧18광주항쟁, 전두환 군부정권의 재등장…. 그런 속에서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되고 정년퇴직을 하고 그 후 또 10년을 더 이렇게 살고 있다. 번번이 어려운 사건 앞에서 나는 고민했다.
나는 언제나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해방되던 날 일본이 절대로 질 리가 없다고 확신한 오판. 그 두 달 뒤 글쓰기 시간에 일제 36년 압박과 설움을 읊었던 실수. 다시는 그런 오판과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함께 후배들이 나와 같은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늘 관심을 가졌다. 참 어려운 시절을 용케도 살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세상은 험하고 목숨은 질기고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있고 즐거움과 기쁨도 있었다. 이것이 인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