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예술의 의미를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알고 싶은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포기했다. 그림을 통해 옳은 삶을 찾는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인데, 그것은 무한을 호흡하는 것이다. 무한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공기처럼 있다.
모든 것은 무한 자체다. 또한 그것은 영원을 호흡하는 것이다. 영원은 우리와 별개의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영원 자체다. 무한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영원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해방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삶을 포기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반 고흐가 들판에서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베르나르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대(大)천재이시고 대(大)화가이십니다.”
그 말을 듣고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저 나무의 살아 있음에 비해 내 그림 속 나무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나는 지금 이 작은 캔버스를 놓고 싸우는데 예수님을 보라. 그는 세상을 만들고자 일생을 바쳤다.”
예수님의 캔버스는 세상이라는 대(大)황야였던 것이다.
나는 젊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믿어 왔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행실이 나쁘고 고약한 사람일지라도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 수 있다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예술이 삶과 별개로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나쁜 사람도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냐 하는 기준도 함부로 설정하기는 어려운 일 같다. 세상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학생들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어떻게 만들어진 작품이 좋은 그림이냐는 것이다.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한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구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보시기에 마음에 들었다!’ 하는 형태일 것이다.
이 거두절미한 나의 답변이 그때 주효했던 것 같다. 절대란 곳을 향해 열심히 찾아가는 형태란 뜻이다. 예술가는 신념이 앞서 있다. 향(向)이 잘못되어 있을 때 잘못된 그림이 되는 법이다. 진인사(盡人事)하고 대천명(待天命)이다. 잘못된 신념에 진인사했다면 크게 잘못된 일을 하게 된다. 믿음은 계산 이전의 것이다. 나이 들수록 믿음이란 하늘의 뜻을 얻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날의 예술은 종합 형태였다. 삶의 문제를 기조로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 모든 것이 종합되며 어우러져 있다. 삶과 예술과 종교가 한 덩어리로 융합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전문적으로 분화되어 있다. 예술도 여러 가지로 분화되어 미술 또는 조형예술이라 하고 그 안에서 그림‧조각‧공예 등으로 분류되고 또 그림도 여러 유형과 효용별로 나뉘어 있다. 그러노라고 그림에서 영혼을 잃어버렸다. 색채가 강화되고 지적활동이 강화되고 감정 또는 사상이 강화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건강을 찾았지만 인간 정신의 핵, 곧 영혼의 빛이 퇴락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여기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에는 여러 종교가 있고 거기에 따른 종교 인구가 몇 십 억이나 된다. 그중 종교인으로서 예술가가 부지기수로 있다. 오늘날의 세계를 보자. 신앙생활 따로, 예술 생활 따로다. 거기에다 가정생활 따로, 직장생활 따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분화의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얼굴이다.
백발가, 회심곡, 부모은중경이 구수하게 들린다. 구구절절 심금을 울린다. 웃어른들은 모두 저세상 가시고 남아 있는 이가 없다. 세월은 참으로 총알같이 빠르다.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수평선을 그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하늘을 그리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높은 곳에 있는 별들과 무한을 분명하게 느끼는 것.
저 위에 있는 그 무엇인가의 존재.
저 무한을 향한 동경.
나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 없이는 살 수 없음.
이것은 반 고흐가 편지에서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외침이다. 초월(超越)에의 처절한 갈망이 있었다. 반 고흐의 지평선에는 그런 강력한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는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때에 그려진 그의 그림을 보는 현금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천재의 위력을 발견하고 감격한다. <까마귀 나는 보리밭 풍경>은 그렇게 그려진 것이다. 거기에는 이승과 저승, 절망과 기쁨, 충직한 그의 영혼이 아낌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런 모순, 그 아픔, 거기서 위로받는 사람도 있다. 나와 같은 사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