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백 년, 이른바 20세기 세계미술사를 총별할 적에 주목할 만한 현상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백 년간 인간의 형상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림에서 자연의 형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속단해서 말하자면 자연과 인간의 문제가 20세기 그림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극소수의 몇몇 예술가를 빼놓고는 작품 주제에서 자연과 인간이란 것은 관심 밖의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어떤 화가는 거리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인체는 더러 등장하지만 그림의 도구로 쓰였지 인간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나 예술에 인간 부재 현상이 일어난 것은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하는 반성이 생긴다. 아름다움은 있으되 인생이 없다.
조각가로는 자코메티가 있고 화가로는 루오와 프로이트의 손자로 더 잘 알려진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Freud)가 있다. 루시안 프로이트는 최근 90세 나이에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큰 전시회를 한 일이 있다. 이들은 인생과 예술을 하나로 보고 끝까지 투쟁했다. 둘 다 고뇌에 찬 인간상을 처절하다 할 만큼 그 핵심을 찾아 끝까지 추구한 예술가다. 어찌 보면 순교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다 어디로 갔는가. 19세기에 이미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성이라든지 종교라든지 하는 미 이외의 것은 무엇이든 다 제거했다. 사람을 그려도 사과나 그릇을 그리는 것과 동일한 생각으로 오직 색채와 형태의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 뒷날 ‘다다’라는 일단의 그룹이 생겨나고 그들에 의해 그림 냄새 나는 것까지 박살났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오로지 일념으로 ‘아름다움’ 하나만을 위해 헌신했다.
그것으로 인해 유사 이래 찾아볼 수 없는 순수미의 대파노라마가 만들어졌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인간 부재의 예술 세계를 형성한 것이다. 여기에 역행하는 예술가들은 철저히 소외당했다. 그중에는 프랑스에 드랭이라는 이가 있고, 미국에 벤 샨이라는 이가 있다. 발붙일 한 치의 땅도 없었다. 자코메티가 살아남은 것은 기적과도 같다.
그는 20세기의 기적이다. 그는 자기가 마지막 화가라는 예언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은 맞았다. 마침내 세기 말에 와서야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술이 진리 탐구의 일환이라 할진대 어찌 삶의 문제를 외면할 수 있는가 하는 반성이 시작된 것 같다. 이른바 순수미를 탐구하는 모더니즘 시대는 종말을 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생과 사[生死], 인간과 환경, 하나의 지구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사회에서 정(情)이란 게 옛말이 되어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거래만이 있다. 국제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잘 살려고 자연을 무자비하게 훼손했다. 편하게 잘 사는 것이야 좋은 일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연이 파괴된다.
최근 텔레비전 뉴스에 이상한 보도가 나왔다. 물새들이 김 농장을 망가뜨렸는데 어민들이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새들이 배 농사를 망친다고 야단이 났다. 공기총을 쏘아대고 허수아비를 세워놓아도 소용이 없다. 얼마 전에는 독수리들이 굶어 죽었다. 멧돼지가 마을로 내려와 감자밭이랑 모두 망쳐놓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데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섭지 않을 수 없다. 짐승들이 먹을 것을 사람들이 차지한 것이다. 새들의 땅을 사람들이 망가뜨려 놓았다. 그러니 그들은 어찌 살란 말인가.
그림이 오로지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하고자 노력하는 동안 세상은 세상대로 나만을 생각하는 삶을 산 것이다. 어찌 이 지구상에 사람들만 잘 살고 다른 생명체들은 없어져도 될 일이란 말인가. 공생공존 원리가 무너지면서 사람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에 눈뜨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림이 미(美)만을 추구하는 동안 사업가들은 돈만 생각하고 권력자들은 권력을 누리려고만 생각했다. 우리는 지난 백 년간 숱한 전쟁을 겪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 그럴 때 철학자는 무슨 역할을 했으며, 종교는 또 어떤 일을 했는가?
지난날 일본인들은 아시아 천지를 짓밟아 놓고서도 도무지 반성하는 빛이 없다. 자꾸 감추려고만 한다. 살기 위해서는 올바르게 반성해야 함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새들의 땅을 빼앗아 놓고 농사를 망친다고 새들만 나무란다. 새들이 김 농사를 망치고 배 농사를 망쳐놓는다는 뉴스를 보면서 자연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 불길한 징조를 보면서 다들 건너편 동네 불 보듯 남의 일같이 생각한다. 이 불감증이 사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나만의 우려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