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정장학생뿐만 아니라 그 부모님들로부터도 많은 감사의 편지를 받고 있다. 그분들이야 부모로서 못해 주는 것을 내가 대신해 준다고 생각해서인지 감사와 칭송의 글 일색이다. 그래도 한결 같이 진솔한 마음을 정성 들여 표현한 것을 대할 때는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생활 형편이 나아 보이는 학부모보다는 못해 보이는 학부모의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더욱 송구스럽다. 우리 사회에는 머리 좋은 자녀를 두고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데 극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장학혜택이 돌아가는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관정교육재단은 설립할 때부터 국가와 세계의 장래를 이끌 세계 1등 인재의 육성이라는 목표 아래 지원자의 경제 형편보다는 성적과 인성 위주의 선발을 고수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철학이기도 하다. 장학 정책은 엘리트 장학 정책을 주로 하고 사회복지적 장학 정책은 특수한 경우에 국한해서 하고 있다. 사회복지적 장학 정책은 국가가 주로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일반 우편 봉투가 아닌 고풍 어린 두루마리 편지 한 통이 배달되어 왔다. ‘아직도 이런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구나’ 감탄을 하며 열어 보았다. 한 장학생(김태영 군)의 어머니(최영순 씨)가 보낸 것이었다. 한지에 펜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눌러 적어 내려간 기나긴 사연에는 장학생의 부모 세대와 조부모 세대가 어렵게 살아온 지난날의 애틋한 장면들이 영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혼자 보기에는 그 사연이 너무 아까워 부분적으로 소개한다.
“옛 선인의 말씀에 머리카락을 잘라서 짚신을 삼아드린다는 얘기를 아시죠? 바로 제가 회장님께 그것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글을 씁니다. 경상도의 어느 가난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미는 지방 국립대학교에만 들어가도 온 동네가 잔치를 하고 동네 어귀에 현수막을 걸던 그 시절, 서울대학교는 남의 나라 학교처럼 위대해 보였습니다. 어렵게 키운 제 아들이 바로 그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을 땐 그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이들이 관정장학생까지 되다니요. 관정 선생님은 우리에겐 하느님과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정장학생 선발에 서류를 접수하고 합격자 발표 나기까지 일주일 간 저는 어미로서 성당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일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정말 초조하고 긴 일주일이었답니다. 1 . 4 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빈 몸으로 피난선을 타고 부산항에 오셔서 몸뚱아리 하나 재산 삼아 노동으로 칠순이 넘게 세 아들을 키워 오신 태영이 친할아버지는 요즘 날마다 장손 자랑을 낙으로 삼고 계십니다.
마치 새 삶을 사는 것같이 행복하시답니다. 아들이 못하는 효도를 손자가 다 한다나요? 그 행복을 누가 주신 건가요? ‘장학금이 입금됐으니 어머니 꼭 쓰실 데 쓰세요’ 하는 태영이의 말을 듣고 은행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통장을 가슴에 안고 또 한 번 울었죠. ‘아들아! 너의 꿈을 알고 있는 이 어미가 어떻게 이 돈을 쓸 수 있단 말이냐? 어릴적부터 미국으로 유학 가서 우리나라로 돌아올 땐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던 너의 그 야무진 포부 그 꿈을 잘 알고 있는데……’ 우선 학비모자라는 것 메워 주고 학부 마치고 유학 갈 때 쓰도록 그냥 묻어 두기로 했답니다.
행여 포항에 왕림하시는 일 있으시면 꼭 저희에게 연락 주십시오. 제가 따끈한 한방차 한 잔이라도, 아니 친정어머니에게서 배운 된장국 한 뚝배기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태영이의 사랑받음이 다음에 또 다른 사랑이 되어 사회에 수만 배의 꽃으로 피어나는그 날이 올 때까지 아니 영원히 관정 선생님의 큰 뜻을 꼭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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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회 장영실 과학문화상 시상식 / 세계 1등 인재 육성에 이바지한 공로로 장영실 과학문화상 본상을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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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주인공 태영이는 모든 자연과학 분야의 기초가 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한 대기업으로부터 그 기업 산하의 의대에 입학하면 장학금을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먼저 받았지만 결연히 거절했다고 한다.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관철하기 위해서였다.
법학이나 경영학을 비롯한 인문 . 사회 . 예능 .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이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한 인재들이고, 그들 중에도 관정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관정교육재단은 이공계 특히 자연과학 분야 학생들에게 장학금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영이는 관정교육재단이 가장 역점을 두고 지원하는 인재 그룹에 들어 있는 장학생이다. 태영이뿐 아니라 재단도 태영이를 만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태영이와 같은 학생들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의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MIT, 스탠포드대학, 중국의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독일 베를린공대와 하노버 국립음대,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일본의 도쿄대학 등 세계적 일류 대학에 보석과도 같은 관정장학생들이 이미 나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들도 따라가야 하고 다른 나라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는 세계 1등 인재로서의 힘도 빨리 길러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을 위해 돈을 계속 묻어두기보다 그 힘을 충분히 기르는 데 우선 쓰기 바란다. 관정교육재단이 한 해 150억 원 가까운 금액을 장학금과 그 관련 사업에 계속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절약할 때는 절약하되 학업을 위해 쓸 때는 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