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자네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반드시 듣고 싶네.”
나를 찾아오는 관정장학생을 배웅하면서 늘 잊지 않고 하는 말이 다. 우리 관정장학생 가운데서 학문, 특히 자연과학 분야의 한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에서이다. 나뿐만 아니라 재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들을 대할 때 “열심히 해서 노벨상 받으세요”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윈 더 노벨 프라이즈(Win the Nobel Prize), 노벨상 받으세요”가 관정교육재단에서는 어느덧 최상의 인사말로 굳어졌다.
“관정장학생 여러분,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관정교육재단 소개 책자를 새로 만들 때마다 나는 재단 설립자로서 이러한 기원을 권두언에서 빼놓지 않는다. 말이나 글로 노벨상에 대한 당부를 거듭하니 장학생들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들 또한 관정교육재단에 오면 “노벨상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들을 수 있어서 즐겁다니 나의 진심이 통했나 보다.
오늘도 관정장학생들은 노벨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하나의 중요한 목표점으로 삼아 각 분야에서 면학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날엔가 틀림없이 낭보가 들려올 것이다. 매년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세계 각지로 떠나보내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린다.
‘노벨재단’과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직접적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 이상과 목표는 같다. ‘노벨재단’은 잘 알려진 대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큰돈을 번 알프레드 노벨이 1896년에 사망하고 그 유언에 따라 1900년에 세워졌다. 이때 제정된 노벨상은 1901년부터 시상된 이후 이미 100년을 훌쩍 넘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상이 됐다.
그 긴 세월 동안 해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를 각각 결정했고, 스웨덴 왕립캐롤라인의학연구소가 생리 . 의학 수상자를, 스웨덴 왕립아카데미가 문학상 수상자를 그리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평화상 수상자를 각각 결정해 왔다.
1968년 스웨덴 국립중앙은행이 만든 노벨 경제학상은 1969년부터 스웨덴 왕립과학위원회가 수상자를 결정하고 있다. 시상 일은 매년 노벨 사망일인 12월 10일로 하고 시상 장소는 스웨덴과 노르웨이(평화상) 두 군데로 하고 있다. 노벨상은 당초 물리, 화학, 생리. 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부문이었으나 1969년에 경제학상이 추가 돼 지금은 6개 부문으로 늘어났다, 각 부문 상금은 120만 달러 정도이다.
2015년말 현재 노벨상 수상자는 모두 1,070명이며 미국인이 355명으로 제일 많고, 그 다음은 영국이1 16명, 독일 101명, 프랑스 67명, 스웨덴 31명, 러시아 28명, 스위스 26명, 일본 24명, 오스트리아 21명, 이탈리아 20명, 네덜란드 19명, 덴마크 13명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은 노벨상이 유일하다. 2006년 우리나라가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일대 홍역을 치른 것도 따지고 보면 ‘노벨상에 대한 갈증’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당초 사이언스(Science)지의 발표대로라면 누가 보아도 황우석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눈앞에 다가온 듯 했다. 그의 거짓이 밝혀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려 했던 것도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아쉬움 때문이라 할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도 노벨상을 이렇게 갈망하는데 20세기 내내 일본에게 눌려 살아야 했던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멀쩡한 국립중앙박물관을 폭파해 버림으로써가 아니라 일본보다 노벨상을 더 많이 받는 나라 대한민국이 될 때 비로소 우리의 가슴 속 응어리가 풀리지 않겠는가?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넣어 교육재단을 만들고 장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벨상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나의 교육재단 설립 결단이 어리석고, 노벨상 수상자의 배출 집착이 지나치다고 비판해도 좋다. 그러나 과학 분야에서의 노벨상을 하루빨리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평화상이나 문학상, 경제학상도 물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현실적 가치가 있는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인이 반드시 정복해야 할 당면 고지이다. 한국인이 노벨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는 날, 그 의미와 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명예를 넘어 자연과학을 발전시키고 우리나라가 초일류 국가의 반열에 오르는 데 강력한 모멘텀(Momentum)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길은 분명하다. 더 많은 이공계 및 자연과학 분야의 걸출한 인재들을 잘 길러내는 것이다. 관정교육재단은 그 배양소 역할을 할 것이다.
“관정교육재단에 들르면 신이 납니다. ‘노벨상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언제나 들을 수 있어서요.”
2007년 여름의 국외 유학 장학생 워크숍에 참여한 한 학생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관정교육재단은 다른 재단과는 달리 장학생들에게 아무런 의무나 옵션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로지 노벨상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만 하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를 앞날의 유력한 노벨상 후보처럼 대접해 주니 기분 좋은 자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사람을 경영하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면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 사람에게 높은 투자를 하면 그 사람의 능력이 몇 배로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투자를 미래의 노벨상 후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워크숍에서 장학생 대표로 답사를 한 미국 듀크대학의 김현섭 군은 이런 말을 했다.
“노벨상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상, 내 능력 밖의 상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관정교육재단의 격려와 희망은 늘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된다고 믿을 때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다. 성공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