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란 장대높이뛰기와 같다고 생각한다. 제조업은 제조업대로, 서비스업은 서비스업대로 끊임없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 장대높이뛰기에서 3~4미터까지는 많은 선수들이 성공한다.
그러나 세계 신기록에 다가갈수록 10센티미터, 아니 1센티미터에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그리고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선수라 하더라도 잠시만 방심하면 뒤처지게 된다. 육상대회 중계에서 내가 유난히 장대높이뛰기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이다.
1950년대에 한국에 등장한 플라스틱 산업은 던져도 깨지지 않는 생활용품이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미국의 듀폰(Dupont)사에서 나일론이라는 신소재로 스타킹을 만들어 냈을때만큼이나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단순 공법으로 찍어내는 플라스틱 바가지, 양동이는 합성수지 제품 생산의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 물론 그 몇 가지 아이템으로 ‘찍어 내면 돈’이라고 할 만큼 한 때 재미를 보았고, 그게 삼영화학의 출발이 됐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내야 했다.
6.25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1970년대를 지나는 동안 대한민국일반 가정의 생활수준과 라이프스타일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이에 따라 견고성보다는 디자인이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로 변해갔다. 그 추이에 민감하게 대처하다 보면 삼영화학의 다음 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해답이 나왔다. 이를테면 5.16 이후 전국적으로 퍼졌던 국민주택 테라스의 초록색 플라스틱 지붕도 ‘선 라이트’라는 삼영화학 제품이다.
비닐장판 시장에 획기적인 황금색 꽃무늬 장판을 내놓아 히트를 치기도 했다. ‘후로링’이라고 부르던 비닐장판 시장의 선발 주자는 럭키화학과 동신화학이었다.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역시 디자인과 칼라로 승부해야 했다.
나는 그때까지 시장에 없었던 황금색을 써서 승부수를 던졌다. 소비자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삼영화학의 꽃무늬 장판 물량을 확보하려는 사람들이 현금을 들고 공장 앞에 줄을 설 정도였다.
멋진 디자인의 물건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기업은 이 인간의 본성을 겨냥하며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근래에 전자제품 회사들은 ‘디자인에 맞춰 부품을 구겨서라도 넣는다’는 말을 신봉할 정도라고 들었다.
젊은 층 소비자를 의식하는 회사일수록 경박단소(輕薄短小)를 디자인의 중심으로 삼는 추세다. 디자인이 기술 발전을 이끄는 시대, 나아가 기술이 디자인의 시녀인 시대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디자인이 좋아서’ 쓰던 것을 내버리고 새 것을 사는 요즈음 풍조에는 찬성할 수 없다. 즐겁게 디자인을 향유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디자인에 끌려 다니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디자인을 가지고 놀아야지 디자인이 사람을 가지고 놀아서야 되겠는가. 안 깨지는 플라스틱 바가지에 물결무늬만 살짝 넣어도 색다르다고 각광을 받던 삼영화학 초창기를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는 앞에서 말했듯이 포장용 필름 쪽에서 여러 차례 기술적 도약을 하며 생산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필름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합성수지업을 기반으로 하여 뻗어나갈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삼영화학은 선도적으로 기술 개발을 했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앞에서 말한 섬유제품용 반투명 필름에서 시작해서 과자 포장지라면 포장지, 투명 포장지 등으로 고난도의 합성 포장재 생산에 도전했다. 국내에서 식품 포장용 랩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삼영화학이다.
랩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냉장고 문화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접시에 음식을 담은 채 이 밀착성이 좋은 비닐로 밀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주부들이 크게 반겼다. 마른 반찬보다는 진반찬이 많은 나라에서 랩이 없을 때는 그 많은 반찬들은 다 어떻게 포장했었을까. 그만큼 식품류 유통에서 랩은 없어서는 안 될 포장재로 각광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