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교육재단인가?-3 (4회)

-나의 재산 출연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2017년 초 현재 1조 원 (8억 9천만 달러 상당)을 넘어섰다. 2002년 새 출범 때 3천억 원의 세 배가 넘는다. 그리고 그것은 내 전 재산의 95퍼센트 정도가 된다 -

여섯째로는 산업화 과정의 현장 경험 때문이다. 지난 60년 간 플라스틱과 자기 애자 제조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새로운 기술 개발과 우수 인력 확보 문제였다. 우리나라처럼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수출 주도의 산업 체계를 유지하려면 인적 자원밖에는 기댈 곳이 없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여 현장 기술능력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좋은 제품을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길만이 국부(國富)를 창출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기업인이 국가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산업보국이라 믿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산업 규모가 커지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짐에 따라 남이 개발해 놓은 기술을 들여와서 저가의 제품을 만들어 팔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치열한 국제 경쟁력 속에서 살아남아 세계 산업계를 선도하려면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자연계ㆍ이공계ㆍ기술계 쪽에서 큰 인물이 나와야 한다. 즉 우리나라에서도 과학노벨상을 받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진학생 중 우수한 학생들이 의과대학ㆍ법과대학ㆍ상경대학 쪽으로 몰리고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고 있다. 나라의 발전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로 많이 몰려야 한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대학 교육의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평생 산업 현장에서 살아왔고 나름대로 상당한 성공도 거두었다. 나는 평생 모은 재산을 던져 이런 시급한 문제를 풀어 나가기로 결심했다. 관정교육재단이 수능 성적이 가장 우수한 의과대학ㆍ법과대학ㆍ상경대학생들을 외면하고 이공계 학생 중심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명예와 이익 또는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보다는 우리나라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과학 기술 개발을 연구하는 이공계가 더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960년대, 스위스 제네바의 레만 호반에서 롤렉스 본사를 배경으로 / 이때부터 세계 1등 인재 육성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가 인류 문명과 인류 생활의 기본 틀을 바꾸어 놓지 않았는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정장학생들에게 세상을 바꾸고, 국가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해 보라고 늘 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꿈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현재 성공한 사람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공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출세란 말은 불교에서 득도한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나서는 것을 말한다. 성공이란 의미도 인간이 자기수양을 통하여 목표한 바를 이룬 후 사회에 베푸는 자기 실천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경남 의령의 시골 마을에 태어나 일제 식민지 시대에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을 맛보며 고등교육을 받았다. 또한 소ㆍ만(蘇滿) 국경의 살인적인 혹한 속에서 동상 걸린 발을 동동 굴러 가며 일본군 생활을 견뎌 냈다. 해방된 조국에서는 ‘제조업이 국력이다’라는 신념으로 기업 경영 활동을 해 오면서 남들로부터 성공했다는 얘기도 듣고 출세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과 경쟁을 통하여 얻은 명예와 재산은 타인의 질투와 시기, 탐욕 등으로 늘 무너질 위험을 안고 있다. 따라서 나는 쌓고 모으는 성공(成功)의 행진을 계속하되 성공이 가지는 원래의 뜻대로 그동안 모아 놓은 것을 남에게 베푸는 성공(成空 : 비울 공을 이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참된 자기 성취라고 생각해 왔다.

요즈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그동안 자기가 이룬 부와 지식과 전문성 등 자기의 가치를 활용해서 일반 국민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시대가 되었다. 서양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높게 평가한다. 특히 최근 빌 게이츠 등 몇몇 갑부들은 전 세계의 갑부들을 대상으로 각자 자기 재산의 50%를 쾌척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제의하고 있다. 물론 예전의 우리나라에서도 이웃 간의 나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을 담장 너머로 주고받던 손이, 끼니 때 손님이 찾아오면 수저를 한 벌 더 놓아 함께 하던 밥상이,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고 힘든 일은 서로 거들던 마음씨가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떡을 들고 이웃을 찾던 그 발걸음과 밥상 한 자리를 내어 주고 이웃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던 어른들의 마음을 떠올리면서 나는 기업 활동을 통해 모은 재산을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에게 베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 일은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다. 내가 먼저 발을 들여 놓으면 나를 따라 올 뒷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