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빙고였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몇 시간에 걸쳐 별것도 아닌
질문들을 되풀이했다.
1987년 11월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제5공화국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앞선 6 . 29 선언으로 민주주의도 회복될 듯 보였기 때문이다. 약간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국민들은 어렵게 되찾은 자유를 만끽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로 내세운 노태우 후보로 하여금 세 김 씨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게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나 같은 기업인이야 상황의 변화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상공회의소 건물에 전세 들어 있던 삼영화학 사장실로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일본에서 북한과 연계하여 석탄 관계 무역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일본에 사는 내 동창 아무개를 통해서 나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동창이라고 해 봐야 동창회 모임에서 한두 번 만난 일이 있어 이름 석 자 정도나 겨우 기억하던 친구였다.
동창의 이름을 판 이 사람이 공연히 이 소리 저 소리 해대며 내 근무시간을 축내고 앉아 있었지만 차마 가라고 할 수 없어 대충 응대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불쑥 엉뚱한 쪽으로 운을 뗐다.
“갈수록 세상이 진보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기업 하는 분들도 진보 세력에 협조 좀 하셔야죠. 다른 분들도 다들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간첩?’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따지듯이 물었다.
“진보 세력이 다 무슨 소리요? 나는 정치라면 전혀 상관을 안 하는 사람이오. 그런 이야기라면 여기서 꺼내지 않는 게 좋겠소.”
내가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딱 끊으니 좀 더 뭉기적거리다 할 말이 없는지 돌아갔다. 또 별 이야기를 나눈 게 없으니 신고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뒤 한밤중에 집으로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김일성 직계 간첩이 체포됐는데 며칠 전 낮에 이 사장 사무실에서 접촉이 있었다고 불었소. 함께 가서 그 사람이 맞는지 얼굴을 좀 확인해 주셔야겠소.”
나는 ‘일본에서 왔다던 사람이 문제의 인물이구나’ 직감했다. 어쨌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안 됐으니 다시 보고 그 인물이 맞다 아니다 판가름이야 못 해 주겠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잘못한 게 없으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다만 잠자리에 들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따라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對共) 수사에 협력하라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졸지에 눈을 가리고 끌려갔기 때문에 거기가 말로만 듣던 남산이었는지 서빙고였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아무튼 정보부(안기부) 대공 분실쯤 되는 곳이었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조심스레 지하실을 둘러보니 몽둥이며 밧줄이 준비되어 있었다. 욕조에는 물이 철렁철렁 넘칠 만큼 채워져 있었다. 그 해 봄에 박종철이라는 서울대 학생이 물고문으로 죽은 것이 뒤늦게 밝혀져 세상이 발칵 뒤집힌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용도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나를 네모난 탁자로 데려가더니 의자에 앉히고 옆자리에 한 사람, 맞은편에 두 사람, 모두 세 사람이 앉았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몇 시간에 걸쳐 별것도 아닌 질문들을 되풀이했다. 상처가 안 나는 곳만 골라서 몽둥이로 내려치기도 했다. 나를 욕조 가까이로 끌고 가서 내 머리통을 거기 처박겠다는 듯한 기세로 겁을 주기도 했다. 아무튼 왕조 시대 국문(鞠問)을 하듯이 사람을 못 살게 굴더니 새벽 3시에 이르러서야 이제 누워서 자도 된다고 인심 쓰듯이 말했다.
내 나이 그 때 예순다섯 살, 되지 않는 소리로 들볶아대던 세 사람은 삼십 대 젊은이들이었다. 순간 착잡함이 밀려왔다
‘이게 뭔가? 일제시대도 아니고 평생토록 기업에만 힘써온 사람에게 명색이 민주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이래도 되는 건가?’
긴 시간 시달리면서 눈꺼풀이 내려앉을 만큼 잠이 쏟아지기도 했고 그만 자리에 눕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었지만, 막상 그들이 몸을 뉘라 하자 잠이 싹 달아났다. 잠시 바닥에 등을 댔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도저히 분을 삭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내가 언성을 높여 분노를 터뜨렸다.
“정보부면 다냐? 내가 너희들 아버지 되고도 남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한밤중에 사람을 불러다 앉혀 놓고 무슨 쓸 데 없는 짓들이냐? 내가 무슨 일을 해 왔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꼭 이 시간에 붙들어다 조사해야 알 수 있느냐? 내가 해방 후부터 사업을 해 왔고, 직원만 해도 3~4천 명이 되는 기업체를 이끌고 있다. 정보 전문가라는 너희들이 지금껏 그것도 모르냐? 도대체 이게 사람 다루는 법도란 말이냐? 정말 너희들 하는 짓이 터무니가 없구나.”
그때 느닷없이 옆에 앉았던 젊은 사람 하나가 “여기가 어딘데”라며 욕설을 거칠게 내뱉으면서 내 얼굴에 손찌검을 했다. 귀 언저리에 손바닥이 철썩 와 붙었다가 떨어졌나 했는데 얼얼한 충격이 왔다.
28시간 만에 풀려 나와 집에 누워 있는데 귀에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렸다. 종로경찰서 앞에 있는 정 이비인후과로 갔다. 믿을 만한 친구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좀 봐 줘. 어떤 놈이 딱 한 대 여기 손을 댔는데 그 뒤로 줄곧 ‘띠이’ 하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소리는 잘 안 들려.”
“귀에 이상이 생겼어. 말하자면 이명(耳鳴)인데, 치료 방법이 별로 없어.”
며칠 지나자 반대쪽 귀에서도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청각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에 말할 수 없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게다가 내 부주의도 천재지변도 아니고,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한 심정이 되어 일본으로 미국으로 귓병을 잘 고친다는 의사를 찾아 다녔다.
미국 LA에 있는 귀 전문병원에 가면 고칠 수 있다고 해서 그곳까지 찾아갔다. 오로지 귀 고치는 의사만 열댓 명이 포진해 있는 굉장한 병원이었다. ‘이제 여기에서 귀를 고치고 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곳 의사의 진단 결과도 정 이비인후과 원장과 똑같았다. 고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보청기 신세를 지게 됐다. 겪어 보니 청각을 기계에 의존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늘 그런 답답함과 불편함의 고통을 견디며 살 수밖에…….
그들은 나를 집에 돌려보내기 전에 입단속을 시켰다. 밖에 나가더라도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고 다니면 처벌을 받게 되리라는 어마어마한 협박성 경고였다. 그렇게 겁을 주지 않았더라도 ‘거기’ 들어갔다가 나오면 국회의원이고 누구고 할 것 없이 다시 큰 화를 당할까봐 함구할 수밖에 없음을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사업에만 전념했다고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