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야성(野性)-1 (48회)

19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통령선거 때다. 나는 비록 경상도 출신이지만 당시 선거에서 호남 출신으로 여야 정권 교체가 한 번 이뤄진 다음이라야 우리 정치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대통령후보 토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가 상당히 밀리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잘 아는 김 후보의 측근을 통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한다는 공약을 내걸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하도록 했다.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상당한 모험이었다. 꼭 그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김 후보가 3차 후보토론에서 그런 공약을 내놓았다. 여당인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는 그린벨트를 풀려면 61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면서 반대했다. 그때 문만은 아니겠지만 선거는 김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취임식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김 후보의 일산 자택을 방문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니 김 당선자는 취임식을 앞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갔다면서 이희호 여사가 대신 맞았다.

“뭐 건의할 것이 없느냐”고 했다. 나는 일본 하마구치 내각(27대 내각, 1929~1931)이 상대 당 출신 인사를 대장상에 기용한 선례를 상기시키고 그런 과감한 인사를 해야 국민의 지지를 널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어느 날 동네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는데 이발사가 “종로구에는 20개 동이 있는데 새 정부에 들어서서 3명만 빼고 모두 호남 사람으로 동장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즉각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 그 부당성을 전달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그 얼마 뒤 그런 인사를 지양하라는 발표가 나온 것을 보았다. 이어서 종로구 내 동장들도 상당수 다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1999년, 민주평통 간부위원과 기념촬영. 앞줄 가운데가 김대중 대통령, 그 왼편이 필자

그 전의 제 14대 김영삼 대통령 때도 뭔가 건의를 하러 홍인길 총무수석비서관을 찾아갔다가 큰소리를 친 적이 있다. 그 후 “청와대에 와서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더라”는 말을 홍 수석이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취임식 참석도 하고 금탑산업훈장도 받고 대통령 중국 방문 수행 경제사절에도 들어가는가 하면 청와대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를 가까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음에 나오는 것과 같이 노 대통령 정부의 검찰에 기소된 고려애자 사건에 대해 법정 싸움에서 무죄 판결을 얻어내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도 특별초청을 받기는 했지만 내가 잘 알아서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일반 국민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청와대에서 나에게 친히 수여하였지만 그것은 내 전 재산의 사회 환원과 공익사업을 높이 평가한 결과였을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누가 집권하든 늘 야성인 편이다. 특히 무슨 일이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끝까지 굴하지 않고 대응한다. 그리고 거의 다 이겼다.

‘3심 승소’라는 극적인 승부를 올린 전적이 있는데 이때의 상대는 정부였다. 마산의 고려애자 공장 앞에 4천 평의 국유지가 있는데 1996년 어느 날 그 땅을 무단으로 사용했으니 7억 원의 임대료를 물라는 고지서가 날아왔다. 그 땅은 예전에 고려애자 소유 땅을 정부가 경지 정리하면서 그 비용으로 기부채납을 받아 간 것인데 법정 비율과 달리 과도하게 받아 갔다.

그러나 고려애자에서는 그 과도하게 받아 간 부분의 땅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땅에 대하여 임대료를 물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자세한 내막은 여기서 생략하고, 아무튼 정부 발행의 고지서에 납부 자체를 거부하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일단 억울함을 참으며 임대료를 물었다.

‘정부가 민간인에게 이렇게 할 수 있나.’ 오로지 그 분한 마음 하나로 마산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자그마치 11년을 굴하지 않고 소송으로 맞선 덕분에 소송비용만 3억 원을 썼다. 3심 상고 때 나는 긴 세월 내가 겪은 시간적・물질적 손해를 포함하여 60억을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